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지난달 18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권고안을 발표한 후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법안 통과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박범계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은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수처, 왜 필요한가’라는 토론회에서 “공수처 법안이 어떤 형태든 기본 골자를 크게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과가 안 되면 (공수처 설치를 바라는) 국민 80% 이상의 민의를 외면하는,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공수처 설치가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공수처 집행 조직 설치가 가능하다는 게 현재적 의미의 삼권분립”이라면서 “만약 이것 때문에 공수처 법안 통과가 안 되면 나는 법무부에도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금까지의 법무부는 사실상 검찰 조직이 장악한 구조였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가 탈검찰화돼가고 있고, 소속만 법무부일 뿐 법무부 장관 등 모든 지휘·종속 관계를 단절한 공수처 형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박 위원장의 설명이다.

박 위원장은 또 공수처의 우선수사권 등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와 관련해서도 “검찰·경찰의 구속·압수수색 영장 등 강제처분 과정에서 고위공직자의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수사 효율성 관점에서 당해 수사기관이 계속 수사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며 “고위공직자에 대해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이 공수처장에게 보고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온 검사 출신의 임수빈 법무·검찰개혁위원(변호사)도 “내가 20년 가까이 검사로 있다가 나와 변호사를 하고 보니 검찰이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며 “지금의 검찰은 반드시 개혁해야 하고 공수처 설치는 검찰을 살리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위원은 공수처와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를 규정한 법무·검찰개혁위 조항(제20조)에 대해선 “기업 범죄 등 수사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혐의가 나오면 검찰이 마음대로 하지 말고 공수처에 통지해서 공수처가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 하면 공수처에서 이첩 요구를 할 수 있고, 기관 간의 갈등보다는 건전한 긴장 관계 속에서 적절하게 운용의 묘가 이뤄질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법무·검찰개혁위가 만든 공수처 법안 제22조(기관 이첩)를 보면 공수처장은 다른 기관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공수처 사건을 다른 기관에 이첩할 수도 있다. 임 위원은 법안 20조와 22조가 맞물려 기관 간 적절한 수사 배분이 가능하고, 각 기관이 분발해 더 적극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지난달 1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사진=노컷뉴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지난달 1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사진=노컷뉴스
한편 국회에 공수처 설치법에 관한 청원을 제출한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은 검찰로부터 공수처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현직 검사나 5년 이상 검사 경력자,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검사는 공수처장과 차장, 특별검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처장 자격도 민주당과 법무·검찰개혁위 법안과 달리 변호사 경력 제한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대한민국 법조인들은 과거 사법시험을 통해 같은 기수 연수원 동기들과 엄청난 동료 의식으로 묶여 있다”며 “공수처장은 검찰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법원과 검찰 등 외부 권력으로부터 압력을 막아줄 소신을 관철할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영훈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도 “현재 법무부 장관도 변호사 자격이 없는 법학 교수 출신으로 그 업무를 수행함에 지장이 없으며, 외려 법조 카르텔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며 “기존 검찰을 대체하고 견제할 기관의 수장인 공수처장에 검사 출신이 임명될 수 있게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에 법무부 장관 등 법원 구성원들과 사법 관료들이 관여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 교수는 “법무부나 법원 혹은 변호사협회 등이 가진 권력과 정보 그 자체가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공수처장 추천위는 전적으로 국회의 책임 하에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며 “국민이 공수처의 업무 과정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공수처가 매년 업무 결과를 국회를 통해 국민에게 보고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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