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통신사찰’ 의혹이다. TV조선이 지난 8일 문재인정부에서 대대적인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졌다고 단독보도한 데 이어 홍준표 대표가 직접 사찰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과거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정부의 통신자료 수집을 ‘사찰’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며 민주당을 걸고 넘어졌지만 두 사안의 본질은 엄연히 다르다.

TV조선은 8일 “현 정부 출범 직후인 5월과 6월 두 달 동안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이 수집한 ‘개인 통신자료’가 100만 건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민주당도 야당 시절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열람을 ‘대국민 사찰’이라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홍준표 대표는 9일 “검찰, 경찰, 군이 내가 사용하는 수행비서 명의의 핸드폰을 통신조회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강효상 대변인은 “추가로 확인이 된다면 야당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이 아니냐는 의심을 합리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언뜻 보면 통신자료는 도청이나 감청과 같은 조치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용자의 이름,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정보를 말한다. 통신자료 조회는 통신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감청이나 상대방의 통화시간을 확인하는 통신사실 확인과는 다르다. 관련법상 통신자료 조회의 경우 수사기관이 당사자에게 통지해야할 의무는 없다.

자유한국당이 공개한 문재인 정부의 수집내역은 월 50만 건 정도로 이전 정부 때와 규모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홍준표 대표 수행비서에 대한 통신자료 제공 내역 6건 중 4건은 이전 정부 때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현 정부 군과 검찰이 수집한 자료도 있지만 홍 대표가 이 시기 군부대를 방문하고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사찰 목적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자유한국당은 이전 정부 때는 야당이던 민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의 통신자료 수집을 ‘사찰’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은권 자유한국당 의원은 TV조선과 인터뷰에서 “과거 정부 잘못했다고 몰아세웠던 그런 부분 그럼 사과를 해야죠”라고 말했다. TV조선과 자유한국당은 유기홍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대 국회 때 자신에 대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수집을 사찰이라고 주장한 점을 언급했다. 민주당이 이중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전 정부의 통신자료 수집과 지금까지 밝혀진 현 정부의 통신자료 수집은 질적으로 다르다. 박근혜 정부 때 시민사회와 야당이 ‘사찰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단순히 통신자료 수집 자체만 문제 삼은 게 아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한 시기에 대대적인 통신자료 수집이 이뤄진 게 문제의 핵심이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민중의소리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민중의소리

자유한국당과 TV조선이 민주당의 이중성을 꼬집는 근거로 이용하는 유기홍 의원의 사례는 사찰로 볼만한 정황이 있다. 국정원이 유기홍 의원의 통신자료를 수집한 시점이 유 의원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TF조직이 있다는 폭로를 한 바로 다음 날이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을 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한 통신자료 수집도 이뤄졌다. 민주노총 관계자 94명이 통신자료 제공내역 사실 확인서를 청구한 결과 2015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제공된 통신자료 조회의 75%는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리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체포가 이뤄졌던 2015년 11월과 12월에 집중됐다. 

만일 자유한국당 관계자나 보수단체 회원들이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시기 대대적인 통신자료 수집이 이뤄졌다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자유한국당이 밝힌 주장에는 사찰이라고 볼만한 정황근거가 없다.

자유한국당이 이 같은 차이를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과 군의 댓글 여론조작이 수면위로 드러나자 정진석 의원이 참여정부 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과 유사한 사안이다. 실상은 참여정부 때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정책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보도된 기사에 실명으로 댓글을 쓰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몰래 이뤄진 여론조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의혹제기 자체만으로도 이 같은 주장을 인용하는 기사가 쏟아지면서 ‘물타기’가 이뤄졌다는 게 중요하다. 이번 사찰 논란도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서 알맹이 없는 주장을 쏟아내면서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대국민 사찰 의혹에 대한 ‘물타기’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수집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영장을 청구하지 않아 정당성을 파악하기 힘들고,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가 노출된다는 점에서 사찰을 위한 도구로 쓰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수사기관이 무분별한 통신자료 수집을 자제할 필요성은 있다.

이 같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난해 신경민·이재정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통신자료 제공 요청 때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한 바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협조했다면 한국당이 주장하는 ‘사찰’ 위협이 사라졌겠지만 한국당이 협조하지 않아 법안은 논의되지 못했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은 국정원이 지정한 위험인물에 대한 통신이용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또한 19대 국회에서 박민식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는 휴대전화 감청 허용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3월3일 TV조선은 “통신사 ‘전전긍긍’, 수사기관 ‘난감’” 리포트를 보도했다.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시민사회의 법적 대응이 이어지자 수사기관에 협조할 수 밖에 없다는 통신사의 입장과 통신자료 수집이 불가피하다는 수사기관의 주장에 비중을 둔 보도다. 자유한국당과 TV조선은 ‘사찰’이라는 주장을 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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