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도발 계속하는 김정은에 … 노벨상까지 경고 메시지.’

지난 8일 조선일보 2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조선일보 보도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군사적 대응’에 힘을 싣고, 자체 핵개발 필요성을 역설한 신문이 조선일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대표적인 언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더구나 9개 전국단위종합일간지 중에서 8일자 신문을 발행한 곳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뿐이었습니다!

조선일보 10월8일자 2면
조선일보 10월8일자 2면
오늘자(9일) 한겨레가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반핵운동단체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받기로 한 건, 최근 북핵 위기로 충돌 위험이 높아진 한반도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일입니다.

노벨위원회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최근 북한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베아트리세 핀 ICAN 사무총장이 수상소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둘 다 멈춰야 한다”며 자제를 촉구한 것도 주목해서 봐야 할 대목입니다. 그만큼 현재 한반도 상황이 전세계 평화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ICAN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이 같은 불안감 조성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책임이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신과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선정 배경에 ‘북핵 문제’를 적시한 것도, 북미 양국 지도자의 ‘말전쟁·말폭탄’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사태가 치달을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이거든요. 특히 핀 ICAN 사무총장은 북한을 비판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그에게 핵무기 사용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트럼프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한겨레 10월9일자 사설
한겨레 10월9일자 사설
관련 내용은 이미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보도가 됐고 네티즌들 반응 역시 뜨거웠습니다. 이미 관련 내용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주요 외신들이 어떻게 보도했는지까지 국내 언론을 통해 대략 ‘드러난’ 상황 아닙니까. 문제는 이런 상황인 데도 조선일보가 대단히 ‘무모한 시도’를 했다는 점입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입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선정된 것은 핵 도발 위협으로 전 세계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북한에 대한 경고라는 분석이 나온다 … 주요 외신들도 이번 노벨평화상이 북한을 겨냥한 것이란 점에 주목했다. AP통신은 ‘북핵 당사자들에게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고,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북한의 교착 상태로 냉전 이후 핵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심각한 가운데 수상자 선정이 이뤄졌다’고 했다. CNN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움직임으로 국제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이 (수상자 선정에)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 10월8일자 2면)

조선은 이번 노벨평화상이 ‘북한에 대한 경고’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요외신들도 이번 노벨평화상이 북한을 겨냥한 것이란 점에 주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경고’ 부분은 굳이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주요 외신 관련 부분도 ‘이상한 대목’이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자의적 해석’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멀리 가지 않아도 조선일보 기사에서 ‘확인’이 됩니다.

‘북핵 당사자들에게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AP통신)

‘미국과 북한의 교착 상태로 냉전 이후 핵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심각한 가운데 수상자 선정이 이뤄졌다’ (뉴욕타임스)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움직임으로 국제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이 (수상자 선정에) 반영됐다’ (CNN)

한겨레 10월9일자 6면
한겨레 10월9일자 6면
조선일보는 이 같은 외신보도를 소개하며 ‘주요 외신들도 이번 노벨평화상이 북한을 겨냥한 것이란 점에 주목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정말 ‘북한을 겨냥한 것’인가요? 그렇게 해석이 되십니까?

AP통신은 ‘미국과 북한 모두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고, 뉴욕타임스와 CNN 보도 역시 최근 북핵 사태로 인해 국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수상자 선정이 이뤄졌다는 점을 언급한 정도입니다. ‘북한을 겨냥한 것이란 점에 주목했다’는 건, 조선일보의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보기엔 오늘자(9일) 경향신문이 2면에서 보도한 내용이 더 정확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AP통신은 7일(현지시간) ‘노벨이 북핵 당사자들에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위기가 올해 노벨 평화상 선정 배경에 있었다고 전했다. 한반도의 핵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설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사태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빠지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10월9일자 2면
경향신문 10월9일자 2면
백 번을 양보해 ‘조선일보식’ 해석을 인정한다(?)고 하지요. 도대체 조선일보는 ICAN이 김정은·트럼프를 둘 다 비판한 내용을 왜 배제한 것일까요? 아! 있군요. 기사 말미에 “ICAN의 베아트리체 핀 사무총장은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핵무기 보유는 물론 핵무기 사용 위협도 불법’이라며 ‘둘 다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언급을 했습니다. 부제에도 ‘살짝’ 언급을 했네요.

하지만 노벨위원회가 ICAN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 그리고 ICAN이 트럼프·김정은에게 ‘둘 다 자제하라’며 강한 메시지를 던진 점 등을 감안하면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는 사실상 왜곡에 가깝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핵 도발 계속하는 김정은에 … 노벨상까지 경고 메시지’라는 조선일보 8일자 기사를 노벨위원회와 ICAN이 본다면 과연 제대로 수긍할 지도 의문입니다.

뭐라 그럴까… 그냥 독자와 네티즌을 상당히 우습게 보는 태도라고밖엔 생각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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