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최근 며칠 노벨문학상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은(84) 시인은 올해도 어김없이 불려나왔다. 그는 2002년을 시작으로 15년째 ‘단골 후보’다. 언론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 고은 시인, 오늘 수상 쾌거 이룰까?” “발표 앞둔 노벨문학상, 고은 시인 이번엔?”등의 제목은 물론이고 “노벨문학상 D-1, 케냐 시옹오·한국 고은 등 ‘경합’” “노벨문학상에 고은 시인 배당 4위…‘하루키 바짝 추격’”등의 경마식 보도도 눈에 띤다.

하지만 고은 시인이 실제 후보에 올랐는지 여부를 아는 언론사는 없다. 스웨덴 한림원은 후보자를 공개하지 않는다. 각국 문학단체의 추천 후보 숫자만 공개한다. 수상자도 전화 통보 전까지 비밀이 유지된다. ‘4위’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서의 순위다.

노벨문학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아야만 작품의 문학적 가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노벨문학상의 수상 여부는 작품성 외에도 작품을 생산한 국가의 국제정치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 고은 시인. 사진=노컷뉴스
▲ 고은 시인. 사진=노컷뉴스

문학평론가 이명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실현가능한 목표가 된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비례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에서야 전쟁과 분쟁, 휴머니즘을 다룬 한국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이명원은 <사회비평> 38호에 “노벨문학상이 세계문학의 표준이라는 생각을 결코 해본 적이 없다”며 “노벨문학상이 시작부터 유럽 중심주의를 견지했을 뿐 아니라 문학적 성과보다는 당해의 정치사적 영향에 크게 좌우되는 현상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급부상한 캐나다 출신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다. 1985년 발표된 <시녀이야기>는 기독교 근본주의 정권이 들어선 가상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여성이 출산하는 노예로 취급되는 세상을 그렸다.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을 고려하면 가장 시의적절한 작가라는 분석이다.

래드브록스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케냐 출신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는 어떤가. 시옹오는 탈신민주의 문학운동을 주도해 온 아프리카 문학의 거장이다. 그렇지만 그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타게 될 것이라고 점쳐지는 이유 중 하나는 2003년 이후 아프리카에서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노벨문학상’ 경마보도에 앞서 한국인의 독서량을 짚어봐야 할 듯싶다. 한국인은 노벨문학상에 대한 ‘짝사랑’만큼 책과 가까이 하고 있을까. 2016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에 따르면 10세 이상 국민의 평일 기준 독서 시간은 6분이다.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10명 중에 1명도 안 되며 3명 중 1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문학 평론가 마이틸리 라오는 지난해 1월 <뉴요커>에 “한국 작가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시점에 고은 시인이 거론되고 있으나 정작 고은의 시는 한국에서 많이 읽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오늘 오후 8시(한국시간) 발표된다. 작품성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고은 시인의 시는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훌륭하다. 1958년부터 지금까지, 반세기를 문학인으로서 살아온 삶 역시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제 고은 시인을 놓아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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