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모처럼 방송국에서 TV 대담 요청이 들어왔다. 나를 섭외해봐야 방송출연이 안될 것이라고 응대하자 방송작가는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교수님. 사장은 이제 프로그램 제작에 간여할 경황이 없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반신반의하면서 서울의 상암동 방송사에 도착해서 맞상대가 누군가 봤더니 작가가 “우리 프로그램의 에이스”라고 소개했다. 생방송 들어가기 전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알고 보면 얼마나 정의감이 높고 대단한 분인가”를 알게된다며 그를 극찬했다.

자신을 세명대학교 교수라고 소개하며 명함을 준 그를 잊고 있었는데, MB문건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놀랐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박범계 위원장이 간담회에서 공개한 ‘대통령실 전출자 총선출마 준비 관련 동향’(2011년 12월 작성)을 보면, “대통령실 전출자 중 행정관 이상 11명이 내년 총선출마 준비 중인데 대통령실 차원의 직·간접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며 “‘브이아이피 국정철학 이행과 퇴임 이후 안전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당선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이들에 대한 동향파악 및 지역 민원과 애로사항을 취합·청취할 대통령실 내 지원창구를 설치해 총선 전까지 한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지원책을 제시했다. 문건에는 당시 2012년 총선출마를 준비한 이들을 정리한 명단에 박형준 시민사회특보와 정진석 전 정무수석, 이성권 전 시민사회비서관, 김희정 전 대변인, 정문헌 전 통일비서관 등이 포함됐는데 여기에 그의 이름이 함께 올라있었다. 그는 이상휘 전 홍보기획비서관이었는데 7명의 MB 비서관 중 한 명으로 특혜불법지원 대상자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

그가 처음 만난 나에게 왜 그렇게 MB를 홍보했는지 이해가 갔다. 이제 세명대 교수로 명찰을 바꿔 종편 등을 휘젓고 다닐 정도로 그는 MB맨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 연합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 ⓒ 연합뉴스
청와대가 법으로 규정한 선거중립을 어기고 MB 퇴임 이후 안전판을 위해 측근 참모들을 대거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했고 실제로 그 특혜 당사자가 된 이들이라면 지금쯤 자중해야 되는 게 아닐까.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가 돼 실질적으로 선거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실행에 옮긴 서류가 드러났고 그 특혜대상이 됐다면 원천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건에 등장하는 또 다른 시사평론가, 박형준 동아대 교수(당시 청와대 시민사회특보)는 JTBC 썰전에 출연하고 있다. 그 역시 관권 선거 지원 대상으로 적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누리꾼들이 JTBC 썰전에서 박 교수를 하차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이 단순히 MB 측근이었기 때문에 물러나라는 주장이 아니다. 문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불법행위 의혹을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데 그들이 앞장 서며 여론을 교묘하게 분산,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나라당 공동대변인을 지낸 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위 인수위원,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과 시민사회특보, 국회 사무총장 등을 지낸 대표적인 MB맨이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2008년 ‘MB 방송장악’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는 MBC PD수첩 불법 탄압과 정연주 전 KBS 사장 강제 해임 국면에서 청와대 홍보기획관이었던 박 교수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함께 ‘이명박의 입’이었다고 한다. ‘썰전‘에서의 발언이 유체이탈 화법으로 비판받는 이유다.

홍보기획관으로 임명된 직후인 2008년 7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교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처럼 위에서부터 언론 통제를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또 그럴 의사도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해 8월 MB 정부의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과 관련해선 “KBS 사장은 지난 정부에서 코드 인사로 선임됐고 그런 문제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고 미디어오늘은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박 교수가 언론 통제 ‘몸통’으로 떠오른 적도 있었다“면서 “2009년 2월 용산참사 국면 때였다. 청와대 홍보기획관실 행정관이 ‘용산 사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홍보하라’는 내용의 전자우편 지침을 경찰청에 내렸던 것. 당시 민주당은 이를 ‘홍보 지침’으로 규정하고 행정관의 지휘책임자인 박형준 홍보기획관을 직권 남용죄로 형사 고발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사건은 결국 유야무야 끝이 났다“고 보도했다.

적폐청산 대상자들, 수사대상자들이 주요 방송사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면서 여론 물타기를 하고, MB 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그의 입노릇을 하는 현실은 비정상적이다. 당사자는 사과하고 자숙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방송사는 구색맞추기식의 출연자를 찾기 전에 그가 시사평론가로서 보다 객관적이고 책임감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적격자인가에 대한 검토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최근 MB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국민 추석 인사’라는 제목 아래 ‘적폐청산은 퇴행적이고 국익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수사망이 좁혀오자 불안감을 드러내며 ‘국익’을 내세웠다. 이를 신호탄으로 MB의 입들은 종편을 비롯한 각종 방송프로그램에서 ‘안보, 국익, 민생경제’등을 내세우며 교묘하게 MB 옹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각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인 이명박근혜 참모들을 이제 그만 보고 싶지 않은가. 그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뒤 이제와서 정당화, 미화에 앞장 서고 있다. 객관적인 시사평론가의 위치를 원천적으로 상실한 그들의 발언은 이미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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