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국가정보원, 경찰 등이 6년 전 KBS 도청 의혹과 관련해 김인규 사장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고발 사건을 무혐의로 처리하고 비판 기자와 PD의 인사조치 등 인적쇄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특별위원회(위원장 박범계 최고위원, 적폐청산위)가 28일 공개한 KBS 관련 문건 2건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얼마나 치밀하게 KBS 내부를 감시하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이 문건은 국정원과 경찰청에서 생산된 것으로 적시돼 있다고 적폐청산위는 설명했다. 적폐청산위는 문건을 두고 “이명박 정부의 집요한 관건선거개입 활동은 물론, 공영방송인 KBS에 대한 언론탄압과 민주당 도청수사 개입 등의 정황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번에 열람한 문건은 김효재 전 이명박대통령 정무수석의 보좌관 김성준이 유출한 문건으로 김성준은 이중 일부 문건에 대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 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적폐청산위는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가 유출한 기록물들은 국가정보원, 경찰청에서 생산된 문건임이 적시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위원회가 공개한 ‘KBS 관련 검토사항’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문건은 2011년 9월27일 ‘홍보/홍보기획’이 작성한 것으로 돼 있어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및 홍보기획비서관실에서 함께 작성한 문건으로 추정된다.

이 문건은 당시 KBS 상황에 대해 “국회(민주당 최고회의) 도청 의혹 사건과 이로 인한 수신료 인상 추진 지지부진으로 김인규 사장의 리더십 동력 상실과 입지가 약화(됨)”에 따라 “김 사장은 ‘사장 평가’를 주장하는 노조 눈치보기에 급급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문건은 “시사·교양 PD들을 축으로 한 KBS 내 좌파세력들의 활동 강화”라고 기재했다. 당시 추적60분 등이 한진중공업과 (반값)등록금문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민감한 현안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했고, 환경스페셜은 ‘4대강 사업이 강과 생명을 파괴시킨다’는 점을 부각해 방송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문건은 이에 따른 대응방안으로 “수신료 인상안 처리가 지지부진한 상황을 지속하면 당정청간 입장을 조율해 조속한 시일 내(가급적 정기국회내) 분명한 매듭을 지을 필요”가 있다면서 “수신료 인상을 추진 및 추진하지 않을 경우 ‘이슈화하지 않으면사 자연스럽게 사장시키는 방안’ ‘여권의 분명한 입장 표명방안’을 검토”한다고 적시했다.

이와 함께 김인규 당시 KBS 사장에게는 “인사개혁조치 및 내부정비를 요구”하도록 제안했다. 문건은 “최근 KBS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정부비판 보도 증가, 좌파노조 반발 및 도청논란 무마를 위한 정치적 행보 경고 등)와 함께, 내부 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하라며 특히 도청의혹 사건의 경우 “경찰수사 발표(무혐의 처리)를 통해 부담을 경감”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김 사장에 대해 “내년 초 대대적 인사 개편을 통해 건전보수세력들을 전면에 배치, 좌파세력들의 공세차단 필요”를 주문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문건은 “보도국‧시사제작국‧교양국 등에 대한 획기적인 인적쇄신 필요”를 제시했다.

▲ 민주당이 지난 2011년 8월25일 오후 국회본청 앞에서 KBS 도청의혹 3개월째를 맞아 KBS를 포함해 경찰과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민주당
▲ 민주당이 지난 2011년 8월25일 오후 국회본청 앞에서 KBS 도청의혹 3개월째를 맞아 KBS를 포함해 경찰과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민주당
김인규 사장의 교체까지도 검토한 것으로 나온다. 문건은 “김 사장으로는 KBS 정체성 확립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사장 교체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으로 KBS 정상화 추진” “다만 청이 직접 나서는 것은 신중 접근,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역할”이라며 당시 최 위원장을 통해 추진하는 것을 검토했다.

적폐청산위원회는 “해당 문건에서 충격적인 내용은 김인규 사장에게 인사개혁조치와 내부정비를 요구하는 계획에서 김 사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도청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건의 첨부자료로 들어있는 ‘인사개편자료 <KBS 내 좌파성향 주요간부>’라는 제목의 문건에서는 KBS 보도본부, 콘텐츠본부, 기타 등에서 근무 중인 특정 간부들의 이름과 정치성향, 출신지 및 학교 등을 명시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보도본부

○ 보도국장 이00 : 호남, 전 정권하 국제부장, 친 민주당

○ 시사제작국장 강00 : 호남, 전 정권하 청 출입·정치부장

※ 좌파PD들의 비판프로 방치·동조, 4대강 오프닝 행사(10.22) 관련 길환영 부사장의 ‘VIP 참석 중계준비’ 지시를 거부

○ 편집주간 윤00 : 호남, 전 정권하 정치부 차장, 노골적인 좌파

○ 취재주간 김00 : 친 민주당, 좌파성향

○ 국제부장 김00 : 친 민주당, 노골적인 좌파

○ 정치부장 이00 : 호남, 친 민주당

※ 정치부 기자 대부분을 친 민주당 성향의 호남출신으로 교체해 영남족 기자들의 원성을 받고 있음(김인규 사장 대학 후배)

○ 시사제작1부장 김 0 ; 전 정권하 사장(정연주) 비서실장

※ <추적60분> 담당자로, 해군기지·4대강 등 국정부담 이슈 지속비판 보도

■ 콘텐츠 본부

○ 교양국장 김00 : 84년 총학생회장 특채로 입사, 전 정권하 요직 섭렵(편파방송 주도)

※ 현재도 PD협회 집행부와 교감하며 정부비판

○ 드라마부장(드라마국 EP2) 이00 : 전 정권하 PD협회장, 친 민주당

※ 좌파적 시각의 방송프로 제작 획책

○ 다큐멘터리부장(다큐멘터리국 EP2) 황00 : 친 민주당, 좌파성향

※ 정연주 전 사장 퇴진 반대운동 참가 전력

■ 기타

○ 정책기획본부장 이00 : 전 정권하 사회부장·광주총국장, 친민주당

○ 심의실장 박00 : 민주당·KBS 야측 이사 인사 청탁으로 간부 보임

○ 노사협력주간 이00 : 호남, 좌파성향, 노골적인 친 노조

※ 4대강·해군기지 등 정부정책 비판 일변도

○ 기획예산국장 오00 : 전 정권하 요직 섭렵, 노무현 탄핵방송 주도

※ 김인규 사장 고교(경기고) 후배

○ 1TV 편성부장 정00 : 호남, 친 민주당

이밖에도 두 번째 KBS 문건인 ‘KBS, 정부 비판보도 증가’에는 KBS의 보도 방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조치 고려사항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과 좌파성향 기자‧PD‧간부에 대한 인사조치를 담았다.

이 문건은 KBS가 당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방송이 느는 추세라며 추적60분(강정마을, 9.7)·환경스페셜(4대강, 8,.17)·소비자고발(미쇠고기, 8.12) 등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정부를 비난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한진중 사태·통신요금·등록금 등 민생관련 비판적 주체의 프로그램의 경우 제작이 다른 방송사에 비해 증가했다는 점도 비교 분석해 놓았다. 문건은 “7.1~8.23간 KBS ‘추적 60분’ 5건, MBC PD수첩 1건, SBS 현장21 3건”이라고 썼다.

이 같은 논조가 도청 논란으로 인한 민주당 ‘눈치보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라고 이 문건은 분석했다. 문건은 “사내 보수성향 간부들 사이에서는 KBS 도청 의혹이 제기된 이후 정부비판 보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민주당 환심사기 용으로 방송을 제작하고 있고, 이 시점을 이용해 좌파성향 기자·PD 들의 세가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평가했다.

▲ KBS기자협회 민주당도청의혹진상조사위원회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차현아 기자
▲ KBS기자협회 민주당도청의혹진상조사위원회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차현아 기자
특히 김인규 사장은 최근 수신료 인상 문제·도청논란 해결을 위해 박지원·손학규·천정배·정동영 등 민주당 의원들과 지속 접촉 중이라는 설이라는 ‘풍문’도 문건은 덧붙여 놓았다.

이 같은 요인을 두고 문건은 ‘게이트키핑 무력화 등으로 정부비난보도 지속 우려’라고 판단했다. 문건은 “보도본부 내 핵심 보직에 좌파성향 인물들이 포진, 제2노조 소속 PD·기자들의 정부비판 방송 제작을 방치”했다며 “이선재 보도국장·강선규 시사제작국장·이강덕 정치부장 등”을 들었다. 문건은 “우파 성향인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도청 의혹으로 인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 방송 사전 검증이 악화”됐다며 “좌파언론·제2노조는 KBS가 지난 대선 전부터 ‘관제방송, 정권의 나팔수’가 되었다며 KBS에 대한 압박을 지속했다”고 썼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한 고려사항으로 문건은 “김인규 사장 상대, 보도프로그램 제작 사전 모니터링 강화 및 좌파성향 기자·PD 및 간부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사조치 권고” “제2노조 반발 및 도청논란 무마를 위한 정치적 행보 경고” 등을 제시했다. 또한 문건은 “방송의 객관성·공정성 확보를 위한 개혁 지속 돌격, 공정방송 위상 정립 후 수신료 인상 재논의 가능성 검토 주문” 등도 기재했다.

이를 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28일 오후 성명을 내어 “이명박의 청와대가 당시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라고 경찰에 지시한 정황이 확인된 것”이라며 “경악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고 비판했다.

도청의혹 고발사건 수사가 무혐의 처리된 것과 문건에 나온 ‘김인규 부담경감(무혐의처리)를 두고 KBS본부는 “당시 경찰은 청와대가 문건을 작성한 지 한 달 남짓이 지난 11월 2일 문건대로 사건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리했다”며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이 아무런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채 묻힌 뒷배는 이명박이었다는 사실이 6년만에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김인규 사장과 보도본부장이던 고대영 현 사장은 민주당 최고회의 도청 의혹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KBS 정치부 기자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야당의 비공개 회의를 몰래 녹음해 녹취록까지 만들어 여당에 건네줬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에 고발되는 사건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KBS본부는 “이제 검찰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즉각 이명박과 고대영을 출국 금지하고 소환 조사해야 한다”며 “민주당 최고회의 도청의혹 사건도 이제는 진실을 밝혀내 가담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릴 때가 됐다”고 밝혔다. KBS본부는 “고대영 사장은 청와대까지 개입한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의 ‘핵탄두급 진실’을 즉각 고백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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