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방송(iFM) 선배 기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같은 회사 후배 A기자가 최근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인방송 측은 성추행 사건과 정규직 전환 평가는 무관하며 업무 역량만을 평가해 계약 종료하기로 했다는 입장이나 성추행 사건이 정규직 전환 여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만한 정황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A기자가 경인방송에 제출한 경위서 등을 통해 미디어오늘이 파악한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지난달 3일 시작해 4일까지 3차례에 걸쳐 진행된 회식 자리에서 선배 B기자는 후배 A기자의 무릎과 어깨 등을 만졌고 술을 강권했다.

B기자는 3차 술자리로 ‘남자는 여자(접대부)를 불러주고 여자는 남자를 불러주는 주점에 가자’고 했다. A기자를 포함해 총 4명은 수원의 한 단란주점에 갔다.

노래를 부르며 놀던 중 B기자는 또 다른 기자 C와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행동을 A기자 앞에서 했고 A기자에게 “나랑 오늘 같이 자자”고 말했다. B기자는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 여성인 A기자를 제외한 3명은 모두 남성이었다. A기자는 4일 오전 2시30분 경 귀가했다.

A기자가 언급한 사건은 또 있다. 경위서에는 지난 6월17일 회사 워크숍 자리에서 B기자가 A기자가 쓰고 있는 마스크를 벗기며 손찌검을 했다고 쓰여 있다.

▲ 경인방송 본사
▲ 경인방송 본사

경인방송 경기총국 소속 A기자는 4일 오전 변아무개 경기총국장에게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이날 오후 A기자의 아버지와 변 국장이 사건 처리 문제를 놓고 만났다. 대화 녹취 등에 따르면 A기자 아버지는 “왜 ‘남자는 여자 불러주고 여자는 남자 불러주는 단란주점’에 데리고 갔냐”는 질문에 변 국장은 “기자가 돼 정보를 얻기 위해 배우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이에 A 기자 아버지가 “퇴폐한 문화 속에서 정보가 나오나 보죠? 지금도?”라고 묻자 변 국장은 “퇴폐라기보다 서로 격이 없어져야, 경계를 허물어야”라고 답했다.

이날 오후 B기자와 변 국장은 각각 A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B기자는 “정말 미안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차마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안해”라고 보냈다. 변 국장은 “총책임자로서 정말 면목 없고 미안하다. 그리고 네 입장에서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거 또한 미안하다”며 “그냥 덮을 생각은 아니었고 B기자가 나오면 너한테 먼저 사과하도록 한 뒤 네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 처리할 생각이었다”고 보냈다.

A기자는 ‘회사가 B기자를 처벌하고 이 문제를 사내에 공론화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A기자와 온도 차를 보였다. 다음날인 8월5일 A기자와 변 국장의 통화 녹취 등에 따르면 A기자는 “(B기자가) 사직하겠다는 얘기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B기자는) 충분히 (회사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던 사람”이라고 말했고 이에 변 국장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까지 됐으면 B기자는 두 번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지”라고 말했다.

8월6일 A기자는 B기자를 경찰에 신고했다. 미디어오늘은 7일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당시 경인방송 관계자는 8일 미디어오늘에 “B기자 인사위원회가 열렸고, 중징계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A기자는 같은 날 미디어오늘에 “취재하지 말라”고 했고, 미디어오늘은 취재를 중단했다. B기자는 이후 회사를 떠났다. 당시 A기자는 수습 5개월 차, 정규직 전환 심사가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A기자는 지난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당시(8월8일) 회사 선배가 ‘미디어오늘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왔는데 복귀를 하려면 기사를 막는 게 좋아 보인다’며 ‘네가 직접 말해볼 수 있겠냐’고 말해 (미디어오늘에) 취재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A기자는 “(수습) 마지막 달이었으니까 기사만 막으면 정규직이 되겠다 싶었다”며 “막내기자였고 평가를 앞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A기자는 사건 이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으며 회사에 병가를 냈다. 그러던 중 8월 말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B기자는 해고됐고 8월31일 인턴 종료에 따른 심의 면접이 있다는 것. 경인방송은 1년 계약직 기자 채용 공고를 내어 A기자를 뽑았지만, 근로계약서상 계약 기간은 6개월(3월~8월)이었다.

A기자는 “심의 면접 때 국장·팀장급이 아닌,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기자의 평가서도 있었는데 점수가 꽤 낮았다”며 “난 6개월을 경인방송에서 일했는데 어떻게 나보다 더 늦게 들어온 사람의 평가를 참고할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경인방송은 이날 ‘본인 의견’, ‘경기총국 부서장 외 기타 평가자의 A기자 업무수행과정 및 조직적응력’ 등을 평가해 정규직 전환이 불가하다고 결론 내리고 8월31일자로 인턴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인방송은 이틀 전인 8월29일 이미 기자 채용 공고를 낸 상태였다.

이에 경인방송 관계자는 지난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당시 (성추행 사건과 정규직 전환이) 겹쳐서 그렇게 비쳐진 것이지 결과적으로 기자 소양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전환이 안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변 국장은 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인턴을 처음 시행하다보니까 선배 기자들의 의견도 필요해 다면평가를 진행했다. 고난을 이겨내는 게 수습기자들이 넘어야 할 산인데, A기자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해 중간에 ‘병가 아닌 병가’ 식으로 몇 번 쉬었다. 그런 편의를 봐줘서 나는 나대로 선임들에게 핀잔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추행 사건과 계약 종료의 연관성에 대해선 “공교롭게 그 시기가 도래해서 그럴 뿐이지 (성추행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답했다.

A기자는 성추행 사건 이후 회사가 본인을 쫓아내는 방식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는 입장이다. A기자는 6개월 수습 생활이 끝나면 정규직 전환이 될 것으로 기대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경인방송은 A기자에게 그의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한 고정코너를 맡기기도 했다. 코너명에도 ‘인턴’이 아니라 ‘수습’이라고 표현했다. A기자는 근무 기간 동안 경찰서 3곳 등 출입처를 담당하며 평일 오전 6시45분부터 오후 11시30분까지 1시간마다 선배 기자에게 보고를 했다. 첫 4개월간은 일요일에도 오후 7시부터 오후 11시30분까지 근무했다.

A기자가 작성한 수습일지를 보면 하루 최대 18시간 이상 근무한 날도 있었다. A기자는 “경찰서를 돌며 수습 기간을 지내면 정규직이 된다고 들었으니 승용차도 산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취재를 위해선 차가 필요하다는 말에 승용차를 구입했다. 그의 임금은 세후 월 140만 원 수준이었다.

경인방송 경기총국은 최근 채용 공고를 냈다. 오는 10월9일까지 PD, DJ, 작가 등을 프리랜서 또는 계약직으로 채용한다는 내용이다. A기자는 “내가 잘못한 사람이 아닌데 왜 그만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피해자를 쫓아내는 회사에선 또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B기자 징계 해고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인방송 관계자는 “B기자가 사표를 내긴 했지만, 인사위원회가 열린 날(8월8일) 해고 조치를 담당자가 B기자에게 문자로 통보했다”면서도 “사안이 민감해서 사내에 공고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B기자 해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보여 달라는 미디어오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B기자는 현재 성추행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시비를 떠나 도의적 차원에서 사표를 낸 것이고 그쪽(A기자)에서 강력하게 요청하니까 인사위원회를 연 것”이라며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나오면 보도한 언론사들을 법적 조치 하겠다”고 말했다. B기자는 미디어오늘에 기사화하지 말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는 사표가 수리돼 회사를 떠났는지 아니면 징계 해고를 당했는지에 대해선 확인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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