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이런 게 조직적으로 유포되는 것 같고 누군가 사주하는 거라고 느꼈지만, 심증만 있었지 사실 아무 단서나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역시 내가 의심해온 대로 결국 (나와 참여연대 등을) 심리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게 충격적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전 사무처장)은 지난 이명박 정부 국군 사이버사령부(사이버사)의 ‘블랙리스트’였다. 지난 26일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군 사이버사 심리전단에서 만든 민간인 대상 비방 공작 이미지에는 이태호 위원장이 ‘북한 권력 옹호 전문가’로 나와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국방부 조사결과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해서 했는데, 사이버사는 천안함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주된 시민단체와 개인들까지 사이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 외에도 사이버사 요원들의 ID 활동을 보면 공지영 작가와 김미화 방송인, 진중권 교수, 김지윤씨(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 정부 정책에 비판적 의견을 냈던 유명인들에 대한 욕설을 포함한 비방 이미지들을 만들어 온라인상에 유포했다.
최근 국가정보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한 김미화씨를 희화화한 이미지에는 김씨의 트위터 프로필과 함께 ‘순악질 여사의 거짓눈물!’이라는 문구와 “이번 총선에서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라면 눈물, 콧물쯤이야”라고 말풍선이 그려져 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활동을 했던 공지영씨와 김지윤씨도 사이버사 ‘블랙리스트’로 찍혀 보수언론의 표적 보도와 보수·우익 세력들에게 무분별한 비방과 인신공격을 당했다.
지속적인 ‘악플’ 공격으로 자녀가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고 호소한 공씨는 SBS와 인터뷰에서 “(자녀가) 우울증을 호소했는데 그 이유가 엄마의 사회적 활동으로 그런 댓글이 달리고, 그걸 아이들이 보고 공격하는 수단으로 썼다”면서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정말 살인행위”라고 질타했다.
사이버사 비방 대상에는 민간인들뿐 아니라 한겨레·부산일보·미디어오늘·아시아투데이·참여연대 등 언론사와 시민단체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군사 정책을 비판했던 곳이 심리전단 요원들의 공격 타깃이 됐다.
사이버사 공격을 받았던 이태호 위원장은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나뿐만 아니라 그때 정부의 대북 정책이나 안보 관련 정책을 비판한 사람은 ‘한 방에 훅 간다’라는 등 공식적 유인물도 나왔고, 북한과 연관해 굉장히 조잡한 비방 콘텐츠를 사이버사에서 만들었다”며 “군의 심리전은 군사행위인데 민간인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했다는 것은 매우 중대 사태”라고 지적했다.이 위원장은 “당시 군이 시민에 대한 군사행동을 제대로 수사 안 하고 얼버무린 것과 같은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독립적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당연히 검찰이 수사해야 하고 필요하면 특검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비밀의 장막을 걷어내고 군이 시민을 상대로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 분명히 밝힐 수 있는 합당한 방법을 정부가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과 참여연대 측은 차후에 유사한 피해자들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고, 이들과 함께 민·형사상 법적 소송을 비롯해 여러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해영 의원 측 따르면 사이버사의 이 같은 비방 공작은 2011년경부터 2013년 초 무렵까지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커뮤니티, SNS 등 전방위로 이뤄졌다. 인터넷 댓글뿐 아니라 만평과 유튜브 동영상 등 콘텐츠 제작 작업에도 심리전단 요원들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군에서 일반인과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비방 목적의 이미지를 제작해 유포한 행위는 대단히 부적절한 것으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제44조(정보통신망에서의 권리보호 및 명예훼손) 또는 군 형법 제94조(정치관여) 혐의로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활동비 25만 원은 △댓글 대응 6만 원 △블로그 포스팅 8만 원 △트위터 트윗 9만 원 △인터넷 회선비 2만 원 등으로 나눠서 지급됐다. 글 종류에 따라 소요 시간을 고려해 댓글 1건에 625원, 블로그 포스팅 1건에 8,000원, 트위터 트윗 1건에 682원을 책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