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MBC 기자들은 5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가만히 있던 것처럼 보이다) 지금 와서 ‘공정언론’을 외치고, 다시 파업을 하나?”
“그동안 보도국에 있던 기자들, 5년 동안 망가진 MBC에 부역한 것 아닌가?”
“공정 방송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면 ‘뉴스타파’ 등 다른 언론에 가서 하면 될 것 아니냐?”
“결국 MBC에 남아있었던 것, MBC 기자라는 타이틀과 ‘좋은 대우’라는 기득권을 놓기 싫은 것 아닌가?”

임명현 MBC 기자의 책 ‘잉여와 도구’는 어쩌면 현재 뜨겁게 달아오른 공영방송 파업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5년 만에 다시 이뤄진 MBC 파업을 바라보면서 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질문’을 가감 없이 던진다. 그는 어쩌면 궁금해 하기도 미안한 질문을 동료들에게 던진다. 하지만 MBC의 기자들 역시 가감 없이 대답한다.

Q. 뉴스타파 같은 데는요?

A. 뉴스타파 같은 데 가는 사람들은 정말 정의감이 넘치는 기자예요. 근데 전 그런 류의 기자는 아니에요. 더러운 꼴 보느니 거기 가서 하고 싶은 뉴스를 하겠다 하기에는 전 아직도 제도권 안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고. / MBC 기자, 현재 비보도국 소속. (116p)

Q. 지금 상태에서 더 밖으로 인사 난다거나 하는 거에 대한 불안감이 있나요?

A. 그건 별로 없어요. 오히려 두려움이라면 안정된 직장인데, 이걸 잃으면 약간 당장 배우자와 애기를 먹여 살려야 하니, 거기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요. (...) MBC는 대우가 정말 좋잖아요. 제가 진짜로 공정언론이나 기자로서의 사명감, 그런 것만 정말 생각하고 투철했으면 연봉같은 게 다운되더라도 다른 데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 MBC 기자, 현재 보도국 소속. (228p)


▲ 임명현 MBC 기자가 펴낸 책 '잉여와 도구'. 출판사: 정한책방.
▲ 임명현 MBC 기자가 펴낸 책 '잉여와 도구'. 출판사: 정한책방.
그렇다면 왜 MBC 기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임명현 MBC 기자는 2012년에는 열정적으로 싸웠던 기자들이 경영진들의 끝없는 ‘비인격적 인사조치’로 인해 패배감을 느꼈고, 결국 ‘저널리즘을 유예’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MBC 기자들이 내부에서 저항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MBC 내부 헤게모니에 변동을 가져오기는 부족했던 것이라고 판단한다. (209p)

놀라운 대목은 5년 동안 반복적으로 패배감을 느껴온 기자들이 파업 시기와 파업 이후 들어온 시용/경력 기자들에 대한 일종의 ‘카르텔’을 고백하는 부분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MBC 기자들은 ‘잉여적 기자’와 ‘도구적 기자’로 나뉜다. ‘잉여적 기자’들은 대부분 2012년 파업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낸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보도국으로 쫓겨났고, ‘잉여’가 됐다. ‘도구적 기자’에는 파업을 참가한 기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기자도 있지만 2012년 파업 이후부터 2017년까지 보도국에서 뉴스를 만들며 경영진의 ‘도구’로서 기사를 작성해온 이들이다.

책 속의 기준으로 MBC 속 그룹을 나눠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공채출신이며 2012년 파업에 참여한 ‘잉여적 기자’, 보도국 외부로 유배가거나 해직됨.
2. 공채출신이며 2012년 파업에 참가했지만 다시 보도국으로 돌아온 ‘도구적 기자’
3. 파업 이후 경력직 채용으로 입사한 ‘도구적 기자’
4. 파업 당시 ‘시용기자’로 입사한 ‘도구적 기자’

이 네 그룹은 철저하게 파편화되고 개별화된다. 책 속 인터뷰는 1~2번 그룹이 3~4번 그룹에게 보이는 멸시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더 나아가 3번 그룹 기자들이 4번 그룹 기자들과 자신을 구분하려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이 책에서는 이를 두고 “도구적 기자들은 시용이나 경력기자들에게 ‘그들이 자질에 걸맞지 않게 MBC 기자라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167p)고 분석한다.

▲ 디자인: 이우림 기자. @gettyimagesbank.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디자인: 이우림 기자. @gettyimagesbank.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책은 솔직하다. 이 책에는 2012년 파업을 참가한 MBC 기자들의 ‘진짜 MBC 기자’라는 자부심, 다시 MBC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희망이 무너지면서 느끼는 우울, MBC를 망쳐놓은 이들에 대한 증오, 거기에 부역한 경력직이나 시용직들에 대한 무시, 크게 저항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패배감, 그럼에도 용기를 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수치감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임 기자는 현재 MBC의 파업이 2012년 파업과 완전히 다른 국면에 서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2012년 이전에는 MBC가 파업을 하면 사회 이슈가 되고 국가가 움직였지만, 현재는 그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를 임 기자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서도 찾는다. 손석희가 이끄는 JTBC가 등장해 1990년대 MBC의 역할을 하고 있고, 팟캐스트나 인터넷 언론 등 뉴스 소비자들이 찾을 채널들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제 '왜 우리는 이 파업을 지지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이 남는다. 임 기자의 설명처럼 (물론 열심히 싸워온 저널리스트들도 있지만) 5년 동안 저널리즘을 유예했고, 어쩌면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았던 이들의 파업을 왜 지지해야 하는지 말이다. ‘왜 MBC 파업을 지지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임 기자는 ‘저널리즘이란 탄탄한 사회적 토대가 없이는 너무나도 유약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는 임 기자가 한 MBC 기자를 인터뷰한 내용이기도 하다.

“5년 동안, 저널리즘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닌 걸 깨달았다. 우리 사회의 힘의 관계가, 정치가,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민도라는 것 모두가 저널리즘을 있게 하는 것 같다. 저널리즘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얹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235p)/ MBC 기자, 현재 보도국 소속.

결국 MBC의 저널리즘을 정상화 시킬 수 있는 것은 MBC 기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와 민주주의, 또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제대로 된 저널리즘의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우리가 MBC의 파업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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