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4개월을 넘기면서 국가정보원을 비롯해 각 부처별 분야별 적폐청산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건과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문건, 방송장악 문건까지 독재정부 시절에서야 있었을 법한 해괴한 자료들이 최근까지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국방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모든 부처에서 적폐청산 활동이 예고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의 적폐청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범계 최고위원을 만나 적폐청산의 이유와 의미, 향후 활동 등에 대해 들어봤다. 박 위원은 국정원이 온라인 여론조작과 오프라인 언론인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장기간 실행했다고 밝혔다. 김장겸 MBC 사장과 고대영 KBS 사장은 국정원의 방송장악 계획과 실행의 과정에서 선임됐다는 점에서 물러나야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에 나선 이유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가운데 적폐청산의 경우 그 중요도는 높은 위치에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관계부처에 적폐청산 TF가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질 계획이다. 박범계 위원장은 “국정원 적폐청산TF가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고, 이어 국방부, 외교부도 검찰, 산업통상자원부도 속속 만들어진 것으로 안다”며 “감사원도 (4대강 등) 여러 감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관련해 규명 중이고, 문체부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밝혔다.

현 정부가 이 같은 적폐청산 작업에 나선 출발점은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다. 박범계 위원장은 “박근혜 국정농단의 뿌리와 원인을 찾다보니, 단순히 박근혜 최순실의 우발적 행위나 캐릭터에 기반한 문제가 아니라 오래 묵은 적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 시작은 이명박 정부 때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정권의 보위를 위해 국정원에 의해 통치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지 않느냐고 역설했다. 최근의 각종 국정원 문건들이 그 사례라는 것이다. 특히 박 위원장은 국정원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최고의 핵심적인 과제가 여론 조작이었으며, 종북몰이와 같은 형태로 뒤집어 씌워서 실행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처럼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여론조작 사건을 통해 2012년 박근혜 정권이 탄생했다”며 “박근혜 정권 들어와 남재준의 국정원은 이명박 정권의 심리전단 여론조작을 은폐 비호했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권은 여론조작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고,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의 이 같은 적폐를 가렸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적폐를 청산하려면 궁극적으로 제도와 문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고, 결국 개혁입법으로 완성된다며 그것은 국회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적폐청산위원회가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져 현재 10개 상임위 소속 15명의 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최고위원)이 지난 25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국회 의원회관 박 의원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최고위원)이 지난 25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국회 의원회관 박 의원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BBK·제2롯데월드…자원·방산·4대강 비리…국정원 여론조작·방송장악’
온갖 적폐 시작 박정권 초 드러나…최순실 국정농단 뿌리, 오래 묵은 적폐

적폐청산 대상과 관련해 박 위원장은 “우선 국정원의 경우에서 보면 여론조작 사건과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가장 중요하다”며 “두 번째는 지난 국회 때 국정조사도 했던 해외자원개발 비리 사건의 경우 철저히 제한되고 봉쇄된 자료 탓에 한계가 있었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방위산업 비리를 들어 “F15가 F35로 기종이 변경된 문제와 이 과정에서 나온 문제점에 대해 박근혜정부 청와대가 방산비리 합수단과 감사단 활동을 했으나 이런 것들이 사실상 눈속임이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방산비리를 조사하는 것처럼 했으나 실제 기소된 사람 대부분은 무죄였다”며 “(진짜 큰 비리는) 다른 쪽의 방산비리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명박의 BBK 사건 역시 안 다룰 수 없으며, 어느 정도 정보가 확보된다면 제2롯데월드 사건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박 위원장은 밝혔다.

국정원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방송장악 문건과 관련해 그 기획과 실행 과정, 특히 방송 공정성이 침해되고 장악되는 과정이 중요한 관심거리이며, 고용노동부의 경우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청년재단’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고 박 위원장은 전했다. 4대강 사업도 당연히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박 위원장은 국정원이 여론조작과 방송장악이라는 두 축을 어떻게 실행해갔는지도 철저한 모니터링이 뒷받침돼야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기존에 알려진 4개팀 뿐 아니라 민간팀 48개로 운영됐고, 군사이버사령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와 회의한 내용까지 나온 상태”라며 “국정원의 방송장악의 경우 별개의 단위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이 여론조작이라는 큰 목표를 두고 하나의 축은 심리전단과 사이버외곽팀이 온라인 여론조작을 맡고, 다른 하나의 축은 오프라인 여론조작, 즉 방송장악을 기획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방송을 길들여서 정권의 나팔수화 하는 것으로, 아주 치밀한 계획과 공작 하에 실행된 것”이라며 “그 실상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파업 등 언론계 적폐청산 ‘국정원 기획과 KBS MBC 사장 선임’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공개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향’ 문건(2010년 2월16일 원세훈 지시로 작성)과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 문건(2010년 5월28일 청와대 홍보수석실 요청 작성, 6월3일 보고)을 두고 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을 통해 통치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문건에 나온) 참여정부 때의 MBC 최문순 사장 라인 등을 들어내고, 노조 무력화, 좌편향 인사 퇴출이 차근차근 이행됐으며, KBS도 마찬가지”라며 “이런 것을 국정원이 기획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은 민주주의의 적으로서 기능했다는 증좌”라고 비판했다.

방송파업에 대해 박 위원장은 “방송장악 기도와 실행,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 침해를 통해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을 정상화하자는 것”이라며 “MBC KBS 내부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지지하는 상태에서 파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역시 방송이 정권의 나팔수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번 파업은 방송관계법상 공공성 민주성을 확보 과정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BC 김장겸 사장과 KBS 고대영 사장이 이명박의 국정원에 의해 실행된 방송장악, 블랙리스트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박 위원장은 “저는 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MBC의 경우 문건이 만들어질 당시 사장은 김재철이었다. 김 사장 취임 직후인 2010년 3월 문건이 작성됐다”며 “또한 문건 내용대로 실행된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이 찍은 좌편향 인사 퇴출과 노조 무력화, 정권 친화적 인물 구축의 과정은 긴 시간 동안 이뤄졌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김장겸 사장은 2013년 5월 보도국장을 했다. 핵심 인물이었다. 국정원 방송장악 과정에서 된 보도국장이었다”며 “그것만으로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고대영 사장 역시 2011년 1월 보도본부장이었다며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 사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연히 물러나야 하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 때 작성된 국정원 기획문건에 의해 치밀하게 진행되면서 방송공정성과 공공성이 침해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현재 두 사장이 이 과정에서 핵심 위치에 있었다면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노동법상 범법행위 여부를 떠나 공공성 공정성 관점에서는 물러나야 마땅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본인들이 물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 이효성 위원장이 여러 법적 근거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고, 이에 기초해서 사태의 전말에 대한 점검을 할 수 있는 계기까지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실상이 더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방송장악이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주장에 대해 박 위원장은 “얼마든지 그렇게 주장하라고 하라”며 “과거 방송장악 기도와 함께 이번 KBS MBC 파업 건을 국정조사해도 하등의 상관이 없다. 이는 방송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민주당 작성 문건을 들어 방송장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박 위원장은 “파업은 자발적인 자율 의지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고, 청와대나 우리 당이나 현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보도에 간섭하거나 개입한 일이 없다”며 “전문위원이 작성한 문건을 갖고 얘기하는데, 그건 개인의 의견일 뿐 그것으로 없는 것을 있게 만들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작성한 그 위원 불러서 얼마든지 물어보라”며 “그게 언론장악이면, MB 국정원에 의해 시행된 것은 언론말살 파괴행위”라고 덧붙였다.

적폐청산은 정치보복? 뭐가 보복인가
노무현 상대 국세청 동원 표적 특별세무조사가 정치보복

이 같은 적폐청산 활동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등은 정치보복이라며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5년 뒤 똑같이 당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보복”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박범계 위원장은 “정치보복이라는 것은 표적사정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박연차 특별세무조사, 이어진 검찰 수사, ‘명품시계, 논두렁’ 등 한 달 여에 걸친 경마식 보도 등이 그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는 특정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서울국세청 조사4국에 의해 조사로 시작됐으며 이것이 표적사정이었다는 것.

또 박 위원장은 이번에 진행 중인 국정원의 여론조작 방송장악 문제의 경우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이미 문제제기 됐던 것이지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자원외교 비리 의혹도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권 때 문제됐던 것이다.

그는 “지금의 적폐청산은 국정농단을 한 이전 정부가 국정운영을 비정상으로 만들었던 것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들”이라며 “국정원이 제 역할 하지 않고 정권 보위를 위한 여론조작에만 종사했기 때문에 다시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이를 명확히 감찰해서 처벌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 김장겸 MBC 사장이 지난 5일 고용노동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이 지난 5일 고용노동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여론몰이식 적폐청산? 여론의 지지를 받는 활동”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는 자유한국당 주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다시 끄집어냈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640만 달러를 받은 것을 알게 돼 부부싸움 한 끝에 권양숙 여사가 가출하고 나서 자살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노 전 대통령 유족과 노무현 재단은 지난 25일 정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와 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 과정에서 정 의원은 페이스북에 “현직 서울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 고발하고, 문성근 김미화씨 같은 분들이 동참하는 여론몰이식 적폐청산이 나라에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박범계 적폐청산위원장은 “여론몰이라는 것은 그분의 표현일 뿐, 실제로는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활동”이라며 “정부와 집권당이 여론을 가공해서 만들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여론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MB 정부 때 국정원이 한 것이야말로 여론몰이를 넘어 여론조작에 해당하는 일”이라며 “이명박 정권의 국가기관이 없는 여론을 형성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 박근혜 정권이 만들어진 것으로, 자신들이 했다고 해서 우리한테도 그렇게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과 홍준표 대표, 정우택 원내대표 등이 노 전 대통령 재수사 주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박 위원장은 부관참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주요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안한 사건이 아니다”라며 “640만불 중 대부분이 조카사위의 투자자금으로 쓰였다. 검찰 수사를 받은 뒤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던진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 전체의 흐름은 끝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목숨을 던진 사건에 무엇을 더 수사 하겠느냐”며 “사건과 수사에도 금도라는 게 있다. 주요 사건의 주요 피의자가 목숨을 던지는 경우 대체로 종결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틈만 나면 노 전 대통령을 불러내 이용하고, 2012년 대선 때 NLL대화록을 끄집어내 울궈먹었다”며 “8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얼마나 더 불러 내려는가”라고 반문했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등이 이 문제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박 위원장은 “1차적으로는 현재의 적폐청산 조사와 검찰 수사에 대한 물타기이자 방해 행위”라며 “거기에 과거 노 전 대통령을 끄집어냄으로써 자신들이 했던 행위를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돌파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그는 “그럼으로써 적폐청산이 ‘진영논리, 정치적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보복의 감정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노 전 대통령까지 끄집어낸 것”이라며 “역으로 이것이야말로 과거 노 전 대통령의 수사가 정치보복이었다는 반증이 된다. 하지만 그것과 지금의 적폐청산은 확연히 다르다”라고 밝혔다.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최고위원)이 지난 25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 중에 박 의원 어깨 뒤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경경로가 씌어진 화이트보드가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최고위원)이 지난 25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 중에 박 의원 어깨 뒤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경경로가 씌어진 화이트보드가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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