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건 국가정보원이었던가. ‘MB정부 블랙리스트’ 파문은 그 자체로 충격이지만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국정원 ‘공작’이 생각보다 집요하고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언론이 ‘개입’됐다는 사실이다.

‘MB정부 국정원’의 KBS·MBC 블랙리스트 문건 파동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의혹이 불거졌다. 국정원 ‘광고공작’ 의혹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지난 25일 공개한 ‘정치인·교수 등 MB 정부 비판세력 제압활동’ 내용을 보면 국정원은 보수성향 종합일간지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은 2009년 12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보수단체를 통해 문화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의견광고를 실은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뒤인 2010년 11~12월에도 보수단체를 통해 조선·중앙·동아·국민·문화일보에 시국광고를 게재했다. 말이 의견·시국광고이지 당시 게재된 광고를 보면 특정 정치인을 일방적으로 비방하거나 시국현안에 대한 극우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 국정원이 적극 개입하고 비용까지 지출했다고 하니 가히 MB정부는 ‘국정원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현재 여론의 초점이 ‘MB정부 국정원’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있지만 국정원 ‘광고공작’이 현실화된 데에는 언론책임도 크다. 이런 일방적인 의견·시국광고를 그대로 실어준 곳이 다름 아닌 언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언론사 입장에선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광고를 게재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보수단체 의견은 너무나도 일방적이었으며 단체의 성격과 광고비용의 출처 등을 놓고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됐다. 이번에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공개한 국정원 ‘광고공작’은 당시 제기된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국정원 ‘광고공작’에서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자유주의진보연합만 하더라도 의견광고라는 이름으로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절망버스’ ‘폭력버스’로 폄훼했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북한 내부 정세가 불안해지고 있다며 일부 세력의 선동에 현혹되지 말고 단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광고도 실었다. 검찰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드러났지만 해당 의견광고는 국정원 직원이 초안을 작성해 자유주의진보연합에 이메일로 보낸 후 광고지면에 그대로 실은 것이다. 사실상 국정원 입장이 보수단체 ‘의견·시국광고’ 형태로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됐다는 얘기다.

물론 광고비용 출처까지 언론사들이 자세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광고를 게재하는 데 비용출처까지 따져가며 계약을 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환경이 급변하면서 독자들이 매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기사와 광고를 별개로 분리해서 보는 독자들보다 지면에 실리는 광고를 언론사 논조와 동일화해서 보는 독자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더구나 보수단체의 일방적인 의견광고는 이미 수년 전부터 논란이 제기돼 왔다. 이런 의견광고가 조중동을 비롯해 문화일보 등 보수언론에 집중 실리는 것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해당 매체에서도 의견광고를 내는 단체의 성격과 비용 출처 등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어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정원발 의견광고’는 특정매체에만 지속적으로 실렸고, 결과적으로 국정원 ‘공작’에 활용된 꼴이 됐다.

상황이 이 정도면 해당 매체는 관련 내용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재발방지 대책을 신속하게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독자와 국민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언급된 보수매체 중 국정원 ‘광고공작’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곳도 드물고,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곳도 없다. 이번 파문과 관련해 언론책임은 없다는 것인가. 더 이상 ‘표현의 자유’나 ‘의견광고일 뿐’이라는 말 뒤에 숨어서 ‘나 몰라라’ 할 상황은 아니다. 계속되는 침묵은 독자들을 기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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