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하기 힘들다. ‘친노종북’. 많은 사람들이 변희재씨를 무시했지만 그의 프레임을 벗어나진 못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기점으로 이명박정부 국가정보원이 설계하고 변희재씨가 유포했던 친노종북 프레임은 한 때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관통하는 강력한 무기였다. 친노종북은 일종의 ‘변형된 인종주의’(박권일)의 일종으로, 한국사회의 공론장을 퇴행시켰으며 지난 9년간 블랙리스트 판단기준으로 기능했다. 그 무기의 설계자는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국가권력이었고, 변희재씨는 일종의 ‘스피커’ 중 한 명이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에 따르면 MB국정원은 2009년 초 <미디어워치> 창간부터 재원마련 관련 조언을 해주거나, 측면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MB국정원은 삼성 등 26개 민간기업 및 한전 등 10개 공공기관에 광고지원요청을 지시했고 <미디어워치>는 2009년 4월부터 2013년 2월까지 2년 10개월간 이들로부터 4억 원 수준의 광고비를 받았다. 국정원이 국정원법을 어기고 국내정치 개입을 위해 조직적인 여론조작 공작에 나서며 특정매체를 ‘육성’했던 대목이다.

▲ 지난 2월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변희재씨의 모습. ⓒ이치열 기자
▲ 지난 2월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변희재씨의 모습. ⓒ이치열 기자
<미디어워치>는 MB최측근이던 원세훈씨가 국정원장으로 취임할 무렵 창간했다. 대표는 변희재씨였다. 국정원개혁위에 따르면 MB국정원은 2009년 5월 ‘미디어워치 운영실태 및 활성화 지원방안’, 그해 8월엔 ‘미디어워치 활성화 중간보고’를 윗선에 보고했다. 2012년 3월에는 청와대에 ‘건전 인터넷매체(미디어워치) 경영난으로 종북 매체 대응 위축 우려’란 보고가 올라가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에 변씨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정원 직원이 실적을 위해 허위보고 한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변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디어워치 단독·특종은 국정원이고 청와대고 지시를 내려 쓸 수 있는 수준의 기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국정원 연계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오히려 “박근혜 정권 들어 대체 왜 미디어워치 기존 정부 광고가 다 잘렸는지, 저야말로 블랙리스트 조사 신청을 넣어야겠다”고 주장했으며 “노무현 때는 물론, 이명박·박근혜 때도 친노 매체가 정부 광고 다 해먹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해명의 순간에도 ‘친노’를 불러내며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고 있었다.

변희재씨는 앞서 공개된 블랙리스트 문건에 비춰봤을 때 국정원이 바라던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는 김미화 씨에게 친노종북이라고 지속적으로 음해한 결과 1심에서 8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문성근 씨를 가리켜 ‘2013년 이 아무개 씨가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며 분신한 사건을 사전기획하고 선동했다’고 주장했다가 1심에서 3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분신 사건이 친노종북의 조직적 행동이라고 했다가 1심에서 유족에게 위자료 6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김씨와 문씨는 MB정부 블랙리스트였다.

▲ JTBC &#039;뉴스룸&#039; 26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 JTBC '뉴스룸' 26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변씨는 방송인 낸시랭이 친노종북이라고 했다가 2심에서 400만 원 벌금형을 받았고, 이재명 성남시장을 종북·매국노라고 했다가 2심에서 400만 원 배상판결을 받았다. 포털사이트 카카오(다음)까지 친노종북이라 부르다가 1심에서 게시물 200여개 삭제 및 2000만원 손해배상판결을 받았다. 재판부가 향후 변씨가 유사한 글을 쓸 경우 1건 당 50만원을 카카오에 지급해야 한다고 밝힐 정도로 악의적인 내용이었다. 그는 수많은 패소에도 불구,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소송을 감내할 만한 ‘대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업들이었다.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에게 절멸의 대상이었던 ‘유대인’과 ‘공산주의’는 한국사회에서 ‘호남’과 ‘빨갱이’였고, 민주정부 10년을 거친 뒤에는 ‘친노’와 ‘종북’이었다. 변희재씨는 국민들에게 ‘변형된 인종주의’를 강조하며 특정인과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유도했다.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류 보수언론은 변씨를 비롯해 국정원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친박 인사들의 주장을 ‘시민단체 인사의 의혹제기’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확대 재생산했다.

변희재씨로 상징되는 ‘국정원발 스피커’들은 박근혜정부에서도 관제데모를 주도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반대하고 국정교과서 도입에 찬성했으며 박근혜 탄핵 국면에선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프레임을 확산시켰다. 집회→형사고발→인신공격→농성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했다. <미디어워치>는 허위사실에 기초한 ‘손석희 호화저택 프레임’ 등으로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들은 태극기를 들고 손 사장 집 앞에 찾아와 “죽이러 왔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손석희 사장은 박근혜 탄핵 이후 방송학회 발표 자리에서 “(조작프레임은) 굉장한 집요한 노력과 인프라 제공이 있었다”고 지적한 뒤 “저널리즘 자체가 중대한 이슈에서 많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돌이켰다. 국정원개혁위를 비롯한 정부여당에겐 청와대(국정원)-전경련(기업)-관제단체(어버이연합 등)로 이어지는 여론조작 시스템을 구축했던 ‘민주주의의 적’들을 심판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언론의 탈을 쓰고 이명박·박근혜의 기관지를 자처했던 ‘스피커들’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현재 검찰은 변희재씨의 JTBC 태블릿PC보도 관련 허위사실 유포 여부 등을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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