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 재판’ 항소심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특검과 삼성 변호인단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치열한 진검 승부를 펼칠 전망이다. 삼성 측이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완전 무죄’ 전략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변호인단이 제출한 360여 쪽 분량의 항소이유서는 1심 때의 변론 기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오는 28일 오전 10시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502호 법정에서 이 사건 항소심 제1회 공판준비 기일을 연다. 피고인은 공판기일에만 출석 의무를 지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5인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적다. 재판은 추석 연휴가 지난 10월 중순 경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삼성의 목표, “현안 청탁·승계 작업 없었다” 완전 무죄 전략으로 ‘이재용 구출’

이 부회장 측은 1심 재판부의 유죄 판단 부분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뇌물공여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정유라 승마 지원이 집중적으로 다퉈질 전망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공판에 출석하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민중의소리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은 인정되지 않지만 ‘승계작업’이 포괄적 현안으로서 존재했고 이에 대한 묵시적 청탁도 있었다며 이 부회장 등의 뇌물공여죄를 인정했다. 변호인단은 개별 현안에 대한 명시적 청탁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승계 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

‘승계작업’ 존재를 인정한 1심 재판부 판단을 정면 반박할 가능성도 높다. 삼성 측은 1심 재판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은 계열사 경영상 필요에 의해 진행된 것이지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와 무관한 것이라 주장해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피고인 이재용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를 중요한 목적으로 해 이뤄졌음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재용의 ‘모르쇠’ 작전은 유지될 듯

최순실씨와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미리 알지 못했다는 논리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승마 지원이 최씨 측이 요구한 대가성 금전이었음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1심 재판부는 ‘배후의 최씨를 몰랐다’는 삼성 측 증인·피고인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 특검에 유리한 증거를 대부분 채택했다. 삼성 측은 1심에서 채택된 증거의 신빙성을 뒤흔들거나 반박 증거를 제출하는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모르쇠 전략은 어떻게 될까.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대주주의 경영지배권 행사를 지원하는 조직”이자 “컨트롤 타워”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대해서도 사실상 총수 지위에 있으며 뇌물 공여 과정을 보고받고 포괄적인 지시를 내리는 등 지원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은 이를 1심 공판 내내 부인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이 부회장의 모르쇠는 2심 법정에서도 되풀이될 여지가 크다. 최지성 전 미전실장도 이에 따라 ‘총대메기’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최 전 실장은 1심 재판 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면서 “내가 재직하는 동안 최종 의사결정은 내 책임 하에서 결정됐다”고 밝혀 왔다.

이와 관련 2심 재판부가 ‘괘씸죄’를 적용할 지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최종결정권자임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다른 피고인에게 책임을 미룬다는 취지로 판단을 하면서도 이를 양형 사유로 참작하지 않았다.

특검의 목표, ‘재산국외도피’ 금액 50억 원을 넘겨라

특검의 공략 대상은 무죄 판단 부분이다. 그 중 재산국외도피 혐의에 특히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재산국외도피죄는 도피 금액이 50억 원을 넘길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특검이 1심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 형을 구형할 수 있었던 근거이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특검이 특정한 도피 금액 79억 여 원 중 37억 여 원만 도피 금액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형량 범위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축소됐다. 무죄로 판시된 42억 여 원을 도피액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삼성이 42억원을 독일로 송금할 때 제출한 예금거래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특검은 이를 보강해 2심 재판부가 1심 재판부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할 수 없도록 방어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의 시발점이 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부분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 측 피고인들이 재단 배후에 최씨가 있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기업들이 전경련의 가이드라인과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출연금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특검은 이 판단을 뒤집는 논리를 강화해 삼성 측과 다툴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 입증에도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1심 공판 동안 삼성의 개별 현안이 대통령 독대를 전후한 시점마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업무수첩에 수차례 기재된 사실에 집중해왔다. 1심 재판부는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장충기 문자’ 아직 더 있나

2심에선 추가 증거가 제출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 뇌물 사건 1심은 공판 진행 도중 추가 증거가 확보된 이례적인 재판이었다. 지난 7월1일 공개된 ‘청와대 민정수석실 캐비닛 문건’ 중 민정수석실 비서관의 삼성 보고서 관련 메모가 대표적이다. 이영상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2014년 7~9월 경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으로부터 ‘삼성에 대해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내용이 포함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는 대통령이 삼성 그룹 현안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로 인정됐다.

7월17일에 공개된 ‘정무수석실 캐비닛 문건’ 1361개도 있다. 이 중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및 문화계 블랙리스트, 한·일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세월호, 국정 역사교과서등과 관계된 문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이 부회장 유죄 입증에 유리한 증거가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관·법조·언론계 등 사회 지도층 간 로비·유착 관계를 확인한 ‘장충기 문자’도 뒤늦게 발견된 증거다. 특검은 지난 7월25일 선고 기일을 한 달 앞두고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휴대전화에서 확보된 다수 문자 메시지 내역을 증거로 제출했다. 특검은 제출 경위에 대해 “데이터 총량이 굉장히 방대해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장 전 차장이 최소 2년 동안 휴대전화를 바꾸지 않은 것이 특검에겐 호재로 작용했다. 삼성그룹 고위 임원들은 보안을 이유로 6개월마다 휴대전화를 교체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장 전 차장의 경우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의 문자메시지 내역 등이 저장돼 있었다. 장 전 차장의 휴대전화 기종은 2015년 7월29일에 출시된 폴더형 스마트폰이었다. 1심에서와 같이 2심 재판 도중 추가 증거가 확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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