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되니 선물을 김영란법 한도에 맞춰서 보낸다. 이전에는 밥과 커피를 취재원이 사는 경우가 있었는데 요즘은 기자들도 밥을 얻어먹으면 커피는 사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영란법 한도를 초과한 건지는 확인이 안 되지만 고위 공무원들이 식사를 사비로, 그것도 이례적으로 현금으로 계산을 하는 경우를 몇 번 봤다.” (4년차 종합일간지 정부부처 출입기자)

“길게는 열흘 동안 쉴 수 있는 추석연휴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여유 있는 휴식과 함께 명절을 맞아 주변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본사와 일부 자회사 임직원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으므로 명절 선물을 주고 받을 때 유의해야 한다.” (조선일보 9월16일자 사보)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2016년 9월28일 시행 이후 어느덧 1년을 맞았다. 언론사 취재환경은 달라졌을까.

법 시행 직전까지 김영란법을 두고 한국사회가 시끄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언론인들이 김영란법 대상자로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신문협회는 2016년 10대뉴스로 김영란법 도입을 거론하며 이 법을 “신문규제법안”으로 꼽을 만큼, 법에 대한 언론계의 반발심은 청탁의 ‘수혜자들’을 중심으로 존재했다. 당시 신문협회는 “신문사 경영과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을 막는데 (협회가)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고 자평한 뒤 “최대 쟁점인 신문사 협찬·후원과 언론인 해외연수 문제가 여전히 미결 과제로 남아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장의 기자들에게 물었다. 무엇보다 김영란법 이후 찝찝한 선물이나 자리를 피할 수 있는 명확한 명분이 생겼다는 게 장점으로 꼽혔다. 한 인터넷매체의 4년차 기자는 “억울한 당사자가 있는 사건을 취재한 경우, 취재원들이 고맙다면서 선물을 주려고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법을 언급하며 정확하게 거절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며 “찝찝한 자리에 거절을 못해 억지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빠져나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4년차 경제지 기자는 “저녁식사 비율은 체감 상 절반 가까이 줄었고 먹어도 점심을 주로 먹는 등 사무적 관계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식사비 3만원 규정은 안 지켜지는 경우도 꽤 있지만 선물(5만원)과 경조사비(10만원) 규정은 잘 지켜진다고 했다. 이 기자는 “법 시행 전에는 산하기관에서도 선물이 쏟아졌는데 요즘은 출입처 서너 곳에서만 오고, 선물도 간단한 음식료품”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린 연차기자와는 관계가 거의 없는 일이지만 골프 접대·호텔식사 접대도 급감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3년차 경제지 기자 역시 “술자리가 굉장히 많이 줄었다. 사실 저녁 술자리 10개 중 대략 8개는 필요 없는 자리였다”고 말하며 지난 1년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작은 매체의 경우 취재비를 보전해주지 않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취재에서 사비를 내고 하는 경우도 많다”며 “언론사들이 사실상 취재비를 준다고 해도 연봉의 성격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취재비가 드는 취재를 청구하기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한 장면.
▲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한 장면.
9년차 경제지 기자는 “법에 신경 쓰는 사람 입장에선 술자리가 줄었다. 술자리는 가능하면 1차에서 끝낸다. 전보다 먹는 양도 줄었다”고 말하면서 “예전보다는 좋지만 어떻게든 술자리를 이어가는 기자들에 비해 뒤쳐진다는 느낌도 있다”고 전했다. 술자리 계산에선 김영란법을 피해가는 꼼수도 난무한다. 예컨대 4명이서 먹었는데 8명이 먹었다는 식으로 인원을 뻥튀기해 법망을 피해가는 식이다. 이 기자는 “부장들의 경우 여전히 골프는 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6년차 경제지 기자 또한 “도입 이후 솔직히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는 생각 못하겠다.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식사자리나 술자리는 여전히 음양으로 벌어지고 있다. 편법을 동원해 식사를 대접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꼬집었다. 이 기자는 “카드를 나눠서 결제하거나 홍보팀이 밥을 내는 대신 (결제한 광고보다) 더 비싼 광고를 얹어주는 식의 편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연차가 낮은 기자들은 김영란법을 좋아하고 지키려고 하는데 관성에 젖은 선배들과 함께하면 무뎌지곤 한다. 내가 너무 유난 떨어서 저 선배의 취재원과 척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이걸 극복하고 선물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방송기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회사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회사에서 한 거라곤 강의실에 사원 전부를 모아두고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대처법 교육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선물을 사양할 구실이 생긴 건 좋지만, 취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안전 장치가 없다. 취재비를 증액해주지도, 법인 카드를 내주지도 않았다. 시행 초기에는 취재원과 만남에서 밥을 얻어먹으면 밥값이라도 확인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취지가 좋건 부작용이 심각하건 전혀 지켜지지 않는 법 앞에서 ‘걸면 걸리는’ 상태로 내던져져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1년 전 김영란법 시행 당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현 JTBC 보도국장)은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김영란법은 결국 전문가들이 공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의 사망진단서는 ‘병사’가 맞나. ‘외인사’가 맞나. 사법정의를 지킨다는 판검사들이 왜 스폰서에 놀아나는가. 기자들은 그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 직업적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각성이 이어질 때 김영란법은 성공할 수 있다.” 1년이 흐른 지금 다시금 곱씹어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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