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무관심이었다. 어차피 탄핵당한 대통령의 지지자들만이 시청하고 믿는 방송이었다. 프로그램이 중단된다고 불편함을 느낄 시청자가 남아있질 않았다. 안 보는 채널이니까 방송사 문 닫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알 박기’ 사장인 김장겸 MBC 사장의 인지도도 MBC 신뢰도 수준이었다.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 것도 안하면 정말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동영상을 만들어서 SNS에 올려보자는 의견이 오고갔다. 김장겸 사장의 인지도를 높여 그의 악행을 소문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됐다. 필자를 포함한 기자 다섯 명이 모였다. 두 명은 보도본부에서 쫓겨난 기자였고, 두 명은 쫓겨난 경험이 있는 기자였고, 한 명은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기자였다. 그리고 페이스북 ‘마봉춘세탁소’ 페이지를 만들었다. MBC를 그냥 버리지 말고 빨아서 다시 쓰자는 취지의 이름이었다.
회사 업무와 세탁소 운영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MBC 파업을 지지하는 유명인들의 빨래 퍼포먼스인 ‘론-드리 챌린지’를 촬영할 때에는 휴가를 내야하기도 했다. 파업에 돌입하고 나서는 세탁지기들이 늘어났다. PD들과 카메라기자 그리고 컴퓨터그래픽 담당 직원들이 합류했다. 노동조합 사무실 한쪽에 책상 몇 개를 차지하고 오프라인 세탁소를 차렸다. 파업 중인데도 밤을 새워 일을 하는 역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봉춘세탁소 산파 역할을 한 박소희 기자는 감기몸살에도 불구하고 나와서 늦은 시간까지 영상을 구성하고 편집했다. 누구 하나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파업 3주차에 마봉춘세탁소의 페이지 ‘좋아요’는 8000, 총 동영상 조회수는 130만회를 넘어섰다.
다행스럽게도 김장겸 사장의 인지도가 부쩍 상승했다 MBC 파업을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마봉춘세탁소의 공이라기보다는 영화 ‘공범자들’이나 다른 기사들의 힘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9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새 대통령한테 사장 바꿔달라고 징징거린다’는 비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프고 답답하다.
하지만 파업에 나선 MBC 구성원 모두는 지금 이렇게 MBC 재건 투쟁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 지난겨울 촛불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저런 비판을 응원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은 진정성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차피 방송장이들의 파업, 할 수 있는 것은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뿐이다. 마봉춘세탁소의 진정성 넘치는 빨래는 계속될 것이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고 세탁소가 문을 닫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