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국가정보원 공영방송 사찰·탄압 문건에는 ‘손석희’란 이름이 존재했다. 한겨레 21일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9년 말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란 보고를 통해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안팎의 지탄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파 논리에 경도된 편파보도로 정부 흠집 내기”, “출근길 민심 호도” 같은 표현을 쓰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이 보고가 올라갈 무렵 손석희 진행자는 “출연료가 비싸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MBC ‘백분토론’에서 하차했다.
당시 손석희 진행자를 향한 압력은 ‘백분토론’ 하차서부터 감지됐다. 2009년 9월 엄기영 MBC 사장은 외부진행자 교체가능성을 언급했고, 그해 11월19일 손석희 진행자가 하차했다. 후임 진행자는 권재홍씨였다. 교체 명분은 ‘고액 출연료’였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6년 MBC에서 퇴사한 손석희 진행자의 출연료는 3년 째 회당 200만원이었는데, 그는 MBC측에서 측정한 출연료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출연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시선집중’만큼은 당장 어쩌지 못했다. ‘시선집중’ 청취율은 동시간대 모든 시사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율을 합친 것보다 높았다. ‘시선집중’은 가장 성역 없는 방송으로 통했으며, 한국 저널리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5월 손석희 진행자 하차 당시 ‘시선집중’을 연출했던 박정욱PD는 “손석희라는 거물이 있었기 때문에 이명박정부 때까지는 조건부 관철이 가능했다. 압박은 많았지만 (아이템) 관철이 안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손석희 진행자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는 그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국정원과 MBC경영진은 소위 ‘MBC정상화’를 추진하며 그가 그만둘 수밖에 없게끔 주변을 압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시선집중’을 연출했던 이대호PD는 “적어도 내가 연출을 맡았던 6개월 동안 (간부들이) 선을 넘은 적은 없었다”고 밝힌 뒤 “하지만 이우용 본부장이 등장하며 모든 게 달라졌다”고 밝혔다. 라디오부분의 본격적 탄압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MBC경영진은 막 나가기 시작했다. 박정욱PD는 “‘김재철 아웃’을 주장했던 박지원씨를 인터뷰이로 섭외했는데 방송 전날 밤 출연 불가 통보를 받았다. 박지원 건은 (아이템) 관철이 안 된 첫 사례였다. 당시가 박근혜씨 당선 된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경영진이 막가자는 식이었다. 손 교수는 이대로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고 말한 뒤 “훗날 JTBC로 옮긴 뒤 손 앵커는 당시 사건이 (하차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손석희 진행자는 자신을 향한 직간접적인 모욕을 감내하며 어떻게든 <시선집중>을 지켜내려 했지만 제작진을 향한 쉴 새 없는 압박에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박정욱PD는 PD저널과 인터뷰에서 “(박근혜정부에서) 아이템 검열이 매일 있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부장과 싸웠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하다거나 여당한테 불리하다거나, 야당에게 유리하다는 느낌이 조금만 있다 싶으면 이슈가 크고 작고와 상관없이 안 된다고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