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명박 정부 시기에 저질러진 국정농단과 헌정질서 파괴에 관한 증거들이 폭죽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가정보원이 공영방송인 KBS와 MBC를 권력의 도구로 만들기 위해 작성해 두 방송사에 내려보낸 ‘지침’과 블랙리스트이다. 지난 4일 사장과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KBS·MBC 노동자들은 국정원 적폐청산TF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치밀하고 악랄한 ‘언론장악 공작’을 통해 공정방송과 자유언론의 숨통을 조였으며, 언론계 ‘공범자들’의 맨 윗자리에 이명박 정부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2010년 3월에 작성한 문건(‘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을 보면, “국정원은 ‘좌편향 인물과 문제 프로그램 퇴출 → 노조 무력화 → 민영화’로 이어지는 3단계 MBC 장악 시나리오를 짜는” 한편 “김재철 당시 신임사장 취임을 계기로 노조 핵심 인물과 최문순 전 사장 인맥을 모두 퇴출하고, 제작·보도·편성본부 국장급 간부 전원 교체, ‘건전 성향’ 인사의 전진 배치 등”을 추진했다. 

KBS의 경우 MBC보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 대책이 세워졌다. 2010년 6월 국정원이 작성한 ‘KBS 조직 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을 보면, 이명박 정부 뜻에 따라 선임된 김인규 사장 선임 뒤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 여부를 기준으로 인사 대상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했다.”(한겨레 9월19일자 기사). 전국언론노조와 KBS·MBC 본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는 거의 ‘완벽하게’ 집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이 2010년 3월 민영방송인 SBS에 대해 ‘블랙리스트 연예인’ 퇴출 압박을 가한 사실도 지난 19일 국정원 개혁위를 통해 밝혀졌다.

▲ 이명박 전 대통령. ⓒ 연합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 ⓒ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언론인들뿐 아니라 문화인 82명에 관한 블랙리스트를 방송사 경영진에 ‘하달’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 적폐청산TF가 지난 11일 국정원 개혁위에 보고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는 배우 8명, 영화감독 52명, 방송인 8명, 가수 8명, 기타 문화계 인사 6명의 실명이 나와 있다. 대통령 이명박의 최측근인 원세훈이 2009년 2월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뒤 같은 해 10월 청와대 기획비서관리관의 요청에 따라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예술단체 내 좌파인사 현황, 제어 관리 방안 보고’ 문서에는 ‘좌파 성향 출연자들’을 퇴출하기 위해 사규에 근거 규정까지 마련하라고 되어 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좌파 연예인’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고 배우 문성근과 김여진이 나체 상태로 함께 누워 있는 합성사진을 극우 성향의 카페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지난 19일 이명박 정부 시기에 국정원이 작성해 배포한 ‘박원순 제압문건’과 관련해 “서울시와 서울시민, 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고발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날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TF 모임에 참석해 “이명박 정권은 기나긴 헌신과 투쟁으로 만들어진 민주정부 수립을 허사로 만들고 30년 전 인권이 없고, 민주주의가 없던 세상을 복원시켰다”며 “독재정권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했다면,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영혼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의 변호인인 민병덕(왼쪽), 한택근 변호사가 9월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러 가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박원순 서울시장의 변호인인 민병덕(왼쪽), 한택근 변호사가 9월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러 가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지난 2012년 18대 대선 기간에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를 당선시키기 위해 거액의 국가 예산을 들여 수십개의 ‘댓글부대’를 운영했다는 사실은 이미 명확히 밝혀진 바 있다. 법원은 지난 19일, 민간인을 동원해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한 혐의로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 민병주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민주당 국회의원 이철희는 지난 18일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당시 국방장관 김관진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작업을 직접 지시하고 보고를 받았다는 증거가 담긴 군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국정원이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만들어 공·민영 방송사 경영진에 내려보내 실행하도록 압박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통해 방송인·연예인 등의 생존권과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가 하면, 민선서울시장을 정치적으로 매장하려고 든 사건을 당시 대통령 이명박은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이명박은 국정원의 댓글부대, 블랙리스트 파문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지난 달 초부터 한 달이 넘도록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박원순이 19일 그를 검찰에 고소한 뒤에도 그는 유구무언이었다. 그의 측근이라는 인물은 언론과 통화에서 “서울시장이라는 사람이 시정은 안 하고 민주당 회의 와서 떠들고 그러는데 뭐라고 하겠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 2013년 8월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3년 8월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있던 기간에 위에 나열한 사건들이 터졌다면 그는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어야 한다. 이명박은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가 저지른 선거부정과 원세훈 주도로 이루어진 언론장악 공작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헌법에 따라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았지만, 자연인인 지금은 그 기간에 저지른 중대한 범죄 혐의들에 관한 공소시효가 살아 있는 한 기소되어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이명박을 사법처리할 사유는 차고도 넘친다. 앞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 ‘헌정 파괴’ 행위들 말고도, 국가 예산 22조 원을 투입해 국토를 황폐하게 만든 4대강사업을 둘러싼 부정과 특혜,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31조원을 투자했다가 국제적 사기를 당하거나 부실한 투자로 국고에 거액의 손실을 끼친 사실도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방위산업 비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이명박이 안고 있는 이 모든 혐의와 의혹을 명확히 밝혀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려면 특검을 구성해서 대대적으로 수사를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본다. 이명박은 전직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전과 14범’이라는 치욕적인 이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도망 및 증거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법무부 당국은 당장 그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려야 할 것이다. 이명박에 대한 정치적·역사적·법적 심판에 동의하는 정당들이 극우보수정당의 반대에 신경 쓰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국회에서 ‘이명박 특검법’을 통과시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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