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숙씨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봉제사다. 2015년 미디어 교육을 받고 라디오 방송 ‘나는 봉제인이다’를 시작했고 현재는 ‘파파야의 힐링여행’이라는 여행방송도 진행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창신동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그는 봉제 사업자들을 위한 세무업무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서울마을미디어축제에서 ‘10대 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북지역 티브로드에는 ‘우리동네TV’라는 마을 미디어 콘텐츠가 방영된다. 학원 원장, 사회복지사 등의 직업을 가진 주민들이 만든 마을신문이 방송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들은 직접 기자로 활동하며 지역 문화와 주민들을 소개하고 지역 문제를 다룬다. 우리동네TV는 “시민방송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면서 2016년 전북 민주언론상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 '우리동네뉴스' 화면 갈무리.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지역 인물인 유대수 판화가 인터뷰.
▲ '우리동네뉴스' 화면 갈무리.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지역 인물인 유대수 판화가 인터뷰.

‘마을 미디어’가 확산되고 있다. 비영리 미디어센터인 미디액트 설립 1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각지의 활동가들은 마을미디어가 지역사회 자치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관련 법령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체계적인 활동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정부 주도의 미디어정책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미디어는 콘텐츠로서 흥행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주민 스스로 미디어를 만들고 정치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강수 ‘우리동네TV’ 기자는 지난달 전북일보와 인터뷰에서 “동네소식이나 문제를 보도했을 때 주민들로부터 지지와 지원도 받는다”면서 “현안과 문제들을 주민들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도록 하고, 곧 주민자치와 마을민주주의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수진 부산 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연구소장은 “활동을 해 보면 주민들이 30~40년 동안 지역의제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는 미디어가 없어 답답해하던 상황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활동가들 역시 마을 미디어는 단순한 ‘미디어 기술 교육’이나 ‘체험’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대구시 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장은 “지역 내 시민참여, 시민주체의 자치공동체의 기반을 구축하는 주도적인 역할”로 마을미디어를 평가했다. 김노경 수원영상미디어센터장 역시 “일상적인 정치참여를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도구”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지만 정작 정책이 뒤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은 “과거 퍼블릭엑세스(시청자참여프로그램)가 정책만 먼저 도입되고 지역사회가 따라가지 못했다면, 지금은 반대로 각 지역에서 마을미디어들이 생겨나고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지만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미디액트 1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액트 제공.
▲ 미디액트 1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액트 제공.

서울·수원·전북·부산 등 지역 미디어 활동가들로부터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필요한 정책적 지원은 ‘법적 근거 마련’이었다. 우선적으로 조례 지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수원시에 ‘수원시 영상미디어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가 있고 전라북도와 제주도에 ‘마을공동체미디어활성화 지원 조례’가 있을 뿐 다른 지역은 없다.

정은경 미디액트 마을·공동체 미디어 실장은 “서울시는 마을공동체 조례는 있지만 마을미디어 조례가 없는 상황”이라며 “지자체장의 임기와 관련 없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조례가 제정된다고 해서 과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최성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장은 “상위법의 법적 조항이 없이 조례만 있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그는 “전북은 농촌과 도시가 있는데, 해당 조례는 농촌지원과에서 하는 프로그램으로 지정돼 도시지역은 지원을 못하는 점도 한계”라고 말했다.

전북 마을미디어 조례에는 ‘주민들은 자발적 참여와 정치적인 중립을 견지해야 하며, 미디어가 갖는 공익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독소조항도 있다. 최성은 센터장은 “처음 조례를 만들 때부터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점을 공무원들이 많이 이야기 했는데, 실제 조례에도 반영됐다”면서 “개정을 추진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수진 부산 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연구소장은 “조례 제정이 유행처럼 번진 적 있는데 ‘6시 내 고향’처럼 ‘우리 마을로 오세요’같은 마을 홍보가 미디어의 목표가 돼 버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조례를 만들고 예산 편성한다고 끝이 아니라 왜 마을미디어가 필요한지를 알게 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조례가 아니라 시민사회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조항만 있는 조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마을미디어지원법 등의 법제화도 과제지만 우려도 나온다.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은 “정부 주도의 정책은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지역 상황에 맞지 않게 이뤄질 수 있다”면서 “관련법이 통과되면 중앙 센터에 돈 집어넣고 지원 지역을 임의로 지정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그랬고, 극단적인 사례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청자미디어재단이 그랬다. 그렇게 가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다른 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정부 중심의 미디어 교육 ‘불통’이 현재진행형이다. 경남권인 울산에 시청자미디어센터를 건립하고 대구경북 지역을 관할하게 했다. 김영숙 대구시 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장은 “수요자인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지역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정책이 내려오는 건 문제가 있다. 지역단위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전국적 테이블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마을 미디어 역시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미디액트 구성원들은 발표를 통해 △OTT 환경에 맞는 지원정책 마련 △인터랙티브 다큐멘터리 제작 및 지원의 필요성 △팟캐스트 장르 다양화 및 활성화 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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