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공식 논평과 당직자들의 발언에서 ‘방송장악’이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이른바 ‘공영방송 장악 문건’이 연일 공개돼 파장을 일으키고 나서부터다.
한국당은 이달 초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에 반발해 정기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까지 돌입했다. 하지만 북핵 위기 등 국가 안보가 위중한 상황에서 한국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국민 여론이 나빠지자 지난 11일 국회에 복귀했다.
국회 복귀 후에도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실에서 작성했다는 방송 개혁 관련 비공개 검토 보고서를 두고 ‘경악할 수준의 방송장악 문건’이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등 대여 투쟁 공세 수위를 높였다.
정우택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 105명은 지난 12일 국회에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서에서 “민주당의 문건은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주의·법치·언론의 자유·인권의 가치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으며, 실행 방안이 매우 구체적이기 때문에 실제 실행했거나 혹은 계획했을 것으로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문건의 작성 경위와 청와대·당 지도부의 개입 여부, 실행 주체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MB정권 전방위로 공영방송 주무른 국정원
민주당 “KBS·MBC·YTN 언론 탄압 책임자 밝히자”
그런데 이날부터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VIP(대통령) 일일보고’ 등의 형태로 청와대에 보고했으며, 공영방송을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을 퇴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음이 언론보도를 통해 터져 나왔다.
18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 적폐청산 TF가 공개한 ‘공영방송 장악 문건’에 따르면 원세훈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이 공영방송 경영 개입 정황이 담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년3월2일)과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2010년6월3일)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 등에 보고했다.
특히 MBC 관련 문건은 2010년 2월16일 원 전 원장의 ‘MBC 신임 사장 취임을 계기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추진하라’는 취지의 지시에 따라 담당부서에서 작성해 지휘부에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MBC 장악 문건 내용을 보면 “참여정부 시절 편파방송을 주도한 인맥이 건재, 노조를 방패막이로 정부 시책에 저항하며 주류를 형성”, “방송에서도 좌편향 출연자들을 편중 섭외, 왜곡보도 악순환”과 같은 내용이 ‘인적쇄신’ 당면 과제로 적시돼 있는 등 이명박 정권의 ‘MBC 길들이기’가 얼마나 치밀하고 전방위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KBS 인적 쇄신과 관련해서도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가담자,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편파방송 전력자 배제·퇴출을 주문한다거나, ‘중점 고려사항’으로 “좌편향 간부 반드시 퇴출, 좌파세력의 재기 음모 분쇄”, “좌파 눈치보기가 체질화돼 국정 지원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보직 간부 보직 변경” 등의 KBS 장악 로드맵이 나열돼 있었다.
홍준표 “과거에도 방송장악 했는지 다 조사하자”
이명박·박근혜 정권 비위·불법 더 드러내는 ‘자충수’될 수도
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장악 등 언론적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에서 조사 범위에 국정원 적폐청산 TF에서 발표한 이명박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 퇴출 건 관련 조사결과를 포함했다. 아울러 공영방송 KBS, MBC와 YTN을 중심으로 지난 9년 동안 자행된 방송장악과 언론인 탄압 등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명백히 밝히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신경민 의원은 19일 적폐청산위원회 6차 회의에서 “홍준표 대표가 13일에 분명히 10년 전 언론장악 국정조사를 하자고 공식 발언했는데, 한국당 대변인이 17일 20년 전부터 하자고 들고 나왔다”며 “자당 대표의 발언을 장난스럽게 묵살하고 있고 공당의 대변인 발언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또 “박근혜 정부 시기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행태를 보면 여러 은폐, 은닉 혐의가 상당히 짙어, 이 부분도 같은 비중으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전직 국정원장과 방송통신위원장 등 필요한 사람을 모두 불러야 한다. 상임위부터 열고 청문회, 국정조사 모두 열기를 거듭 제안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