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해 총파업에 돌입한 KBS·MBC 구성원들의 싸움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속내는 복잡하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공영방송 문제에 섣불리 개입할 수 없는 입장이고,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 프레임으로 지난 정권에서 선임된 사장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권 교체기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던 정치권은 공영방송 구성원과 국민에게 좌절감과 실망감만 안겨줬다. MBC만 하더라도 지난 2012년 170일 파업이 남긴 상처는 컸다. ‘정치적 해결’을 약속했던 정치권은 MBC 구성원들을 배반했고, 결국 청산되지 못한 공영방송의 ‘적폐’들은 국민 모두에게 독이 돼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공영방송은 사실상 ‘공범자들’이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가 지난 2013년 3월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관련 SBS 리포트 갈무리.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가 지난 2013년 3월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관련 SBS 리포트 갈무리.
MBC에서 공정방송과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다 해고된 6명(강지웅·박성제·박성호·이용마·정영하·최승호)은 1·2심에서 모두 승소하고도 6년째 복직하지 못하고 있고, 200명이 넘는 직원들은 원래 직종과 상관없는 부서로 전보됐다. MBC 경영진의 부당해고·징계·부당노동행위는 계속됐다. 그 결과 MBC는 각종 언론 공정성·공익성·신뢰성 등 평가 지표에서 추락을 거듭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민의당 간사인 김경진 의원은 공영방송 정상화에 정치권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조속히 파업 국면을 끝낼 해법이 방송관계법 개정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김 의원은 “방송법 개정안도 여야 간 이해관계가 달라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 않고, 현 공영방송 사장들도 구속할 만한 범죄사실이 안 나오면 계속 버틸 것 같아서 지난 2012년 파업처럼 길어질까 우려된다”며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법 개정을 안 해도 이사회와 사장을 모두 장악할 수 있어 한국당이 100% 무릎 꿇어야만 이 법안이 통과되는데 과연 한국당이 무릎을 꿇을 건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당시 야당 의원 162명이 발의한 이른바 ‘언론장악방지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방송통신위원회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 개정안)은 현재 1년 넘게 국회 과방위에서 계류 중이다. 그동안 한국당 측의 반대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만 민주당도 집권 이후 적극적인 개정안 통과 의지가 없어졌다는 게 김 의원의 지적이다. 

▲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사진=김경진 의원실
▲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사진=김경진 의원실
다음은 지난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과 만나 나눈 주요 인터뷰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방송관계법 개정안 관련해 공영방송 사장의 ‘개혁 의지’가 우려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뭐가 개혁인지 모르겠지만 정권과 상관없이 별도로 돌아가는 게 개혁이라면 문 대통령의 말은 맞지 않다.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사장을 선출하는) 특별다수제는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어야 정권과 상관없는 중립적이고 객관적 인물이 선임될 수 있다. 물론 회색분자가 공영방송 사장이 될 우려가 있으나 제도의 낮은 확률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현재 잘못된 법 구조 그대로 가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어느 기관, 조직을 봐도 특별한 정치적 색채 없이도 신망받고 존경받는 알토란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항상 자기편 사람들 심으려고 하거나 권력을 쥐고 논공행상의 도구로 쓰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거다.”

-최근 민주당의 ‘방송개혁’ 비공개 검토 문건이 보도돼 보수 야당에선 ‘방송장악 로드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건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거에 MBC 사측에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방송사를 장악하려고 현장 노동자를 옥죄었던 것은 분명히 잘못이고 사장 퇴진의 명분도 맞다. 그러나 정당에서 종합적으로 계획을 세운다는 건 정당의 범위를 벗어난 것 같다. 집권여당의 상임위 전문위원이 작성했다는 문건에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전방위로 압박한다는 내용은 방통위의 공정한 업무 집행에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다. 그게 빌미가 돼 한국당의 ‘언론탄압, 방송장악’이라는 비판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거 아닌가. 그 자체로 부적절한 면이 있는데도 민주당은 문건 작성자를 징계하지도 않았다. 목적은 정당할 수 있지만 수단 자체는 개혁해야 할 적폐 세력들이 했던 방식과 유사한 모습이란 점에서 민주당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한국당에서 해당 문건으로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하자 민주당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방송장악과 언론적폐를 모두 조사하자고 맞섰다.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보나.

“민주당이 과거까지 다 같이 조사하자는데 나는 민주당의 안이 더 맞다고 본다. 그럼 과거 언제까지 할 것인가. 야당 쪽 방송사 출신 국회의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노무현 정권 때부터 잘못된 방식의 언론장악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하자는 대로 하되 노무현 정권 때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정조사를 통해) 차제에 그런 점들을 분명히 해두면 그게 오히려 장기적으로 과거 전례를 명약관화하게 현재의 역사 속에 공식적으로 서술해 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면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반성의 계기가 될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청와대에서 이효성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방송, 특히 공영방송"이라고 말했다. 사진=KBS 영상뉴스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청와대에서 이효성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방송, 특히 공영방송"이라고 말했다. 사진=KBS 영상뉴스 갈무리.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정원 방송장악 문건이 계속 드러나고 있고 박근혜 정부에선 정윤회씨 아들 MBC 드라마 출연 특혜 의혹도 불거졌다. 이것 모두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보나. 

“하게 되면 할 수 있는 부분을 다 올려놓을 수 있다. 아직은 한국당이 제안만 했고 민주당이 범위에 대해 받아치기만 해서 실제 이뤄질지 모르겠다. 정기국회 기간 중이고 방송법 통과도 안 되는 상황인데 그걸로 싸움하는 것은 무한대결의 장이지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4당 원내대표가 합의해야 국정조사가 이뤄지는데 합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대신 국정감사 기간에 방통위를 대상으로 국감을 하니까 KBS·MBC가 국감 대상 기관으로 들어가 있어 그 과정에서 상당 정도 문제제기가 있을 거다. 국감으로만 부족하다면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별도 합의가 있을 테지만 가능성은 작다. 왜냐면 서로 정치공방성 성격이고 (민주당) 문건 자체도 종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지만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던 내용이다. 한국당도 집권 당시 방송장악 과정에 문제가 있고 서로 약점이 있는 부분이어서 상호 간 국정조사 난타전을 벌일 동력이 세지 않다. 명분상의 주장에 불과하다 본다.”

-국민의당 과방위 간사로서 KBS·MBC 총파업 사태 등 공영방송 문제를 풀기 위해 방송법 개정안의 시급한 통과를 요구했다. 상임위에서 논의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한국당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 개정안에 대해 대선 전까지 온몸으로 거부하며 안건조정위원회 위원 구성조차 거부했다. 이제는 한국당이 통과시킬 의사가 있는 것 같더라. 지금 정기국회 기간이고 국감도 있어 상임위가 열릴 수밖에 없다. 법안소위원회가 열리는 것도 한국당이 반대 안 한다. 다만 한국당 쪽에선 편성위원회(사측 추천 5명, 취재·제작·편성부문 종사자 대표 5명) 구성 조항도 노조가 들어올 수 있는 간접적 통로가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편성위원회 조항을 양보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안갯속이다. 내가 양쪽을 확인한 바 그렇고 민주당도 집권 후 적극적인 통과 의지가 없어졌다.”

▲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사진=김경진 의원실
▲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사진=김경진 의원실
-법안 통과가 계속 안 되고 있다. 공영방송 구성원들도 지난 정권의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파업이 길어질 경우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중재할 수 있다고 보는지. 

“민주당만 적극적이면 통과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애초 민주당도 편성위원회 조항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았고 특별다수제가 핵심이었기 때문에 이것만 합의되면 타협의 여지가 있다.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부칙 조항(법 시행 3개월 이내에 이사회 구성)도 있고, 사장들도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가 된다. 내가 볼 때 그 방안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법 개정 외에 정치권이 중재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 지는 의문이다. 국감 때 경영진을 불러 노조가 문제제기한 것들을 따져 묻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정치권이 노사 문제를 중재한다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 나 개인으로선 (중재)할 생각은 없다. 법안 통과와 이사 추천은 국회에서 권한 행사가 가능하지만 그걸 넘어 파업 자체를 중재하는 건 우리 권한이 아니다.”

한편 한국당 과방위 간사인 박대출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방송법에 대해 얼마든지 언제든지 논의할 자세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효상 한국당 대변인은 “개정안은 편성위원회를 노조가 사실상 장악하는 독소 조항이 많아 정부·여당이 이에 대한 열린 자세가 있어야지 개정안을 무조건 받으라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개정안 재검토 제안에 대해선 “야권의 비토(거부)권을 인정 않겠다고 오히려 후퇴하는 개악 시도”라며 “정부·여당의 단일안이 뭔지 지켜봐야 하고 한국당의 대체입법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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