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그만둬도 다음날이면 취업할 수 있는 고졸 청년들과 지역에 남았다는 이유로 패배감을 안고 사는 지역 대학생들의 문제는 (그동안 언론이) 다루지 않았다.” 지난해 경향신문 이효상 기자가 미디어오늘 기고를 통해 밝힌 연재기사 ‘부들부들 청년들’ 기획 배경이다. 진보언론이 간간이 다룬 청년문제 기사에서조차 수도권 유명대학 출신만 ‘청년’으로 대표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 언론은 누구를 대변하고 있을까?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13일 저널리즘학연구소와 미디어오늘이 공동주최한 ‘뉴스사용설명서’ 세미나에서 언론이 ‘중산층’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운데)가 13일 저널리즘학연구소와 미디어오늘이 공동주최한 ‘뉴스사용설명서’ 세미나에서 발제하고 있다.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운데)가 13일 저널리즘학연구소와 미디어오늘이 공동주최한 ‘뉴스사용설명서’ 세미나에서 발제하고 있다.

손석춘 교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간부급 기자들이 많은 관훈클럽 조차도 한국 언론이 중산층을 소비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한다”면서 “이는 광고와 관련이 있다. 구매력 있는 독자를 확보하는 게 언론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손석춘 교수는 “신문시장의 독과점인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물론 방송시장의 독과점인 지상파 방송사의 평균 연봉은 중산층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중산층을 대상으로 중산층이 만드는 뉴스가 과연 시민을 위한 뉴스일 수 있을까? 이 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관훈클럽이 낸 ‘21세기 한국 언론의 좌표’ 보고서는 “한국 언론은 중산층을 주된 소비자로 상정하고 있는 한편 언론인 자신들도 중산층에 편입되어 있어 주로 중산층의 의견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옹호한다”며 “그 결과 자연스럽게 소수 계층의 의견과 이익은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날 주죄측이 정한 발표 주제는 ‘시민을 위한 뉴스사용설명서’였으나 손석춘 교수는 ‘시민’이라는 단어가 갖는 한계를 지적했다. “이 건물을 만들고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만든 노동자, 그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외면당해온 농민, 자영업자, 청년실업자, 차별에 시달리는 여성 등. 이들을 시민과 국민이라는 단어로는 아우를 수 없다.”

손석춘 교수는 ‘민중’이라는 용어가 적확하다고 밝혔다. 그는 “왜 굳이 민중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시민이라는 말은 경제적인 개념을 포함하지 못 한다”면서 “시민이라는 단어 사용에 노동자와 농민, 청년실업자 등을 배제하려는 논리가 작동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 민중이라는 단어는 널리 쓰였다. 손석춘 교수가 동아일보 기자 시절 동아일보 기자윤리강령을 만들 때 편집담당 상무가 ‘민중’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창간호에도 나온 표현이지만, ‘좌파용어’이기 때문에 빼야 한다고 했다. 손석춘 교수는 “김중배 선배와 내가 동아일보를 떠나자 ‘민중’이라는 말은 아주 좋았던 신문, 동아일보에서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1991년 손석춘 교수는 사주의 편집권 개입을 비판한 김중배 당시 편집국장과 함께 동아일보를 떠났다.

조중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손석춘 교수는 “공영방송 사장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민주당과 연결된 사람이 공영방송을 이어받지 않을까.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공영방송을 통해 노사관계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여나갈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명박 정부 이전의 공영방송 역시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을 대변하는 데 소홀했던 건 마찬가지다.

공영방송 내부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2일 정필모 KBS 기자(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는 뉴스사용설명서 세미나에서 “지배구조 개선이 공영방송 문제의 열쇠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개선되더라도 기계적 중립적, 형식적 보도가 될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공영방송의 공적책무를 구현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다.

오늘날 ‘민중’이라는 용어는 진보언론인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도 찾기 힘들다. 손석춘 교수는 “진보언론마저 회피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한겨레 창간 때만 해도 ‘민중’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고, ‘민중기자석’이라는 자리도 있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민중이라는 말을 지금 하면 낡은, 어색한 운동권적 사고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고 싶다. 1800만의 노동자, 300만의 농민, 600만의 영세자영업자, 100만의 청년실업자. 우리는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을 잃은 거 아닌가. 우리 스스로 어느새 자기검열에 빠진 건 아닐까.”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진=김도연 기자.

“말의 죽음은 현실 속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민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현실은 그들을 대변하지 않는 보도로 귀결된다. “최근 한 대학생이 등록금을 못 내서 자살했다. 어떤 뉴스제작자도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부각하지 않는다. 진보언론조차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등록금이 더 오르고 누군가는 자살하는 일이 되풀이 된다. 과연 그래도 좋은 것일까.”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손석춘 교수의 해법은 민중이 스스로 ‘민중’임을 인지하는 데 있다. 그는 “시민들이 스스로 민중이라는 사실,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어떤 뉴스가 노동의 가치를 망각하게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며 포털에 ‘노사관계’ ‘노동’이라는 단어로 주기적으로 뉴스를 검색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뉴스를 퍼 나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노동에 대한 적대감과 편견이 들어있을 수 있다”며 “매일 매일 의식적으로 행동할 때 민주주의를 설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분들 조차도 노동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런 분들조차 노동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비참한 노동현실이 개선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토론자였던 최낙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취재시스템과 지면 구성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지면구성에 맞는 취재원들을 만나다보니 민중은 취재시스템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된다”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가 아니라 여성, 청년등의 섹션을 지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로 8강에 걸친 뉴스사용설명서 세미나가 막을 내렸다. 김광원 저널리즘학연구소장(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은 “언론을 믿기 보다는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하고, 이를 통해 개혁하는 추동력을 가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광원 소장은 “지금까지 나온 방법들이 모이면 우리 사회는 촛불혁명과 같은 구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봤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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