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낸 적도 많다.”

최상훈 뉴욕타임스 기자(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가 14일 오후 한국기자협회와 삼성언론재단이 공동주최한 강의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동안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신은 외신이나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지만 구성원이 직접 경험담을 설명하는 자리는 없었다. 

그는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신이 시도된 이후 기자 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고 했다. 우선, 마감이 사라졌다. 최상훈 기자는 “저녁 6시가 되면 아시아판 마감을 하고, 새벽 6시가 되면 뉴욕 본판을 마감한다. 이 두 시간대를 중심으로 업무를 했는데 지금은 데드라인이 사라졌다”면서 “나는 AP통신 출신인데, 통신사에서 일할 때보다 지금 기사를 몇배는 더 많이 쓰는 것 같다”고 밝혔다.

▲ 최상훈 뉴욕타임스 기자(서울지국장)가 14일 한국기자협회와 삼성언론재단이 공동주최한 강의를 통해 뉴욕타임스 구성원의 관점에서 디지털 혁신이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 최상훈 뉴욕타임스 기자(서울지국장)가 14일 한국기자협회와 삼성언론재단이 공동주최한 강의를 통해 뉴욕타임스 구성원의 관점에서 디지털 혁신이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는 ‘몇시까지 기사를 보내달라’는 주문이 있었지만, 현재는 ‘가능한 빨리 보내라’는 주문이 온다. 과거에는 간단한 기사를 보내라는 지시는 거의 없었지만 요즘은 부쩍 늘었다. 지난 몇 년 사이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써서 송고한 일이 많아진 이유다.

기사를 메일로 보내놓고 끝내던 기자들은 스쿱이라는 CMS사용법을 익혀야 했으며 유통까지 고민하게 됐다. 최상훈 기자는 “기사를 쓰면 연락이 온다. 트위터에 올리라고 한다. 또, 기사 외에 팟캐스트를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의 축은 종이신문에서 웹사이트로 옮겨가고 있다. 지면 1면을 정하는 회의가 사라지고, 대신 사무실 한복판에서 웹사이트 편집 회의를 하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전통이 바뀔 정도의 상징적인 변화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디지털 혁신이 그냥 구호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다. 뉴욕타임스는 신문이 웹사이트도 하는 게 아니라 웹사이트가 중심 상품이고 신문이 부가상품이 됐다. 이제 내 기사가 종이신문에 어떻게 실렸는지도 크게 관심 없다. 내가 이렇게 될지 3~4년 전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기사 작성 매커니즘이 변화하면서 조직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기자의 힘이 강한 언론사였는데 요즘은 에디터 힘이 상당히 강해진 것”이 최상훈 기자가 생각하는 특징이다.

기존에는 기자가 워드나 메일로 기사를 써서 보내면 여러 종류의 에디터들이 분업으로 부수적인 작업을 맡았다. CMS에 기사를 입력하는 것도, 헤드라인을 쓰는 것도 개별 에디터들의 역할이었다. 에디터를 통한 절차가 너무 많아서 1면 기사가 되면 기자들 진이 빠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 같은 구조로는 시간이 오래 걸려 디지털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많은 에디터 과정이 사라지고, 에디터 한명이 1:1로 전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많은 에디터들이 해고됐다. 살아남은 에디터들은 스트롱 에디터라고 불린다. 여러 단계의 에디터들이 해오던 걸 혼자 할 수 있는 팔방미인형 에디터들만 살아남은 것 같다.”

‘스트롱 에디터’들은 어떤 주문을 할까? 추가 취재, 기사 방향에 대한 제안을 포함해 아이템까지 지시한다. 최상훈 기자는 “그들은 독자 데이터를 갖고 있다. 이걸 보여주며 ‘그런 기사 써봤자 별로 소용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면서 “과거 기자가 직접 아이템을 결정했는데 요즘은 에디터가 먼저 쓰자고 하는 기사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 ▲ 뉴욕타임스 2020보고서에 사용된 영상 갈무리. 언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고, 찾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2020보고서에 사용된 영상 갈무리. 언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고, 찾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에 나온 것처럼 다양한 방식의 스토리텔링도 주문한다. “기사를 1인칭으로도 쓰라고 한다. 한 기자는 시리아 취재기를 1인칭으로 썼다. 공항에서부터 여정을 담았다. 그 기사가 1면에 실렸던 시리아 내전의 정치적 의미, 지정학적 의미를 분석한 기사보다 더 많이 읽혔다. 나에게는 북한 취재에 대한 소회를 1인칭으로 쓰라고 하더라.”

이뿐만이 아니다. 그래픽팀이 북핵의 역사를 다룬 시각자료를 만들거나 비디오팀에서 북한 관련 영상을 만들면 오탈자나 팩트 오류가 있는지 검토를 요청한다. 최상훈 기자는 웃으며  “채용은 잘 하지 않는데, 정말 일이 많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디지털 퍼스트’를 추진하는 언론 내부에서는 반발이 나오거나 자조적인 평가가 많다.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뉴욕타임스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자들은 여전히 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최 기자는 지적했다.

“여전히 나이가 많은 기자들은 힘들어 한다. 처음에는 기자에게 사진, 영상 다 시켰는데 지금은 좀 포기한 거 같다. 한번은 기사 내용을 고쳐야 돼서 메일로 보냈더니 ‘스쿱’으로 직접 하라고 하더라. 할 줄 모른다.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래도 당신이 상위 20%’라고 답하더라. 요즘은 해외에 주재한 기자들을 지역별로 모아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이 자칫 자극적인 기사 양산으로 귀결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한국과 비슷했다. “언론사의 공적 역할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점이 절충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짧고 재미있는 기사를 쓰라고 한다. 김정은이 장성택의 시신을 개 먹이로 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기사로 쓰라고 새벽에 전화가 오더라. 확인 안 되는 사안이라 나는 못 하겠다고 했다. 시간 지나니 오보라는 게 밝혀졌다. 그랬더니 오보가 밝혀진 과정을 기사로 쓰자는 연락이 왔다. 어떻게 해서든 그 이슈로 기사를 쓰려고 하는 거다. 뉴욕타임스의 주력기사였던 길이가 긴 심층기사는 개괄적인 성격이 강해진 것 같다.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차이도 있다. 혁신 초창기 디지털부에서 제안한 아이템을 정치부 등 개별 부서가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각 부서의 데스크가 관련 지시를 내리도록 한 이후부터는 그런 일이 줄었다. 최상훈 기자는 “이렇게 조직을 바꾸니 이전보다 잘 따르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심층기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은 놓지 않고 있다. ‘오보 콜렉션’이 방증이다. 뉴욕타임스는 항상 자사 ‘정정보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디지털 전환 전후의 오보 숫자에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한다. 최상훈 기자는 “빨리 빨리 기사를 제작하는 시스템으로 바꾼 이후 정정보도가 많이 나가는지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의 혁신에는 최고 수준의 기자를 뽑는 전통적인 강점 역시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최상훈 기자는“뉴욕타임스는 공채가 거의 없다. 대부분 경력을 쌓아 인정받아 오게 된 경우”라며 “이렇게 모인 이들은 선후배가 아닌 경쟁자다. 인사고과 평가를 보면 기자당 기사가 1면에 몇건 실리고, 전체 기사를 몇건 썼는지 등을 본다. 완전한 경쟁체제가 어떤 측면에서는 장점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최상훈 기자는 “뉴욕타임스는 ‘우리가 스토리를 장악한다’는 표현을 쓴다”고 말했다. “큰 뉴스가 있으면 우리가 스토리를 장악하고, 이 사건은 우리의 소유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많은 기자와 돈을 쏟으며 취재에 집중한다.” ‘이슈 장악력’ 역시 뉴욕타임스의 전통적인 강점이다.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은 토양이 다르다. 특히, 한국 언론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신뢰를 받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최상훈 기자는 “기사를 쓰거나 회의를 할 때 단 한번도 광고가 어떻다거나 광고 때문에 기사를 좀 써주자거나 하는 요구를 들은 적이 없다”면서 “뉴욕타임스는 그래도 믿을만 하다는 신뢰가 이런 데서 오는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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