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개혁위원회 적폐청산TF가 확인한 ‘MB정부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 사안에 따르면 MB정부 국가정보원은 2010년 3월 경 인적쇄신과 편파 프로그램 퇴출 등이 담긴 ‘MBC 정상화방안’을 준비했다. 김재철 MBC사장이 취임한 시기와 일치한다. 국정원 개혁위에 따르면 2009년 7월 가동된 ‘좌파 연예인 대응TF’는 MBC의 예능·드라마 프로그램을 ‘정화’했다. 2009년 5월 고 노무현 대통령 노제 사회를 본 김제동이 ‘최우선 정화대상’이었다.

김제동이 메인진행을 맡았던 예능프로그램 <오마이텐트>를 연출한 조준묵PD는 14일 언론노조 MBC본부 파업집회현장에서 수상했던 프로그램 폐지과정을 털어놨다. 조PD는 “2009년 여름 <오마이텐트>를 기획하고 김제동을 섭외했다. 김제동이 KBS <스타 골든벨> 마지막 방송을 할 무렵 첫 촬영을 했다. 어느 날 김제동씨가 KBS <해피투게더> 촬영이 갑자기 취소됐다며 괴로워했다. 한꺼번에 이런 일들이 온다고 했다”고 전했다. 시작이었다.

▲ 13일 상암동 MBC파업집회 현장을 찾은 방송인 김제동씨. ⓒ언론노조
▲ 13일 상암동 MBC파업집회 현장을 찾은 방송인 김제동씨. ⓒ언론노조
<오마이텐트> 파일럿 시청률은 13%대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다. 내레이션은 윤도현이었다. 조준묵PD는 당시 “꼭 윤도현을 써야 하느냐는 (윗선의) 간곡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기획의도가 불투명하다, 프로그램 제목이 오마이뉴스를 연상시켜 문제다”라는 윗선의 지적이 나오며 정규편성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조PD는 “2010년 가을, (윗선에서) 김제동이 문제라고 했다. 프로그램 이름과 김제동을 바꾸면 정규편성이 가능하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MBC본부 노조는 14일 노보에서 “당시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이 직접 김제동 소속사 김영준 대표에게 전화해 ‘김제동을 자제시키라’며 ‘<오마이텐트> 그게 방송이 될 거 같냐’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주장했다. 김제동 소속사 다음기획은 국정원 기획대로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오마이텐트>는 사라졌다. 김제동이 3년간 진행했던 <환상의 짝꿍>은 이미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지 3개월만인 2010년 7월 폐지됐다. 모든 게 국정원 뜻대로 이뤄졌다.

김제동에 대한 철저한 ‘배제’는 다른 연예인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사회적 발언을 위축시키는 자기검열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김제동은 <무한도전>에서 그나마 간간히 얼굴을 드러낼 수 있었다. 국정원의 ‘좌파연예인 대응’은 박근혜정부에서도 계속됐다. MBC본부 노조에 따르면 지난 4월16일 <섹션TV 연예통신>제작진은 김제동 취재를 간신히 허가받았지만 ‘세월호를 언급해선 안 된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박근혜씨가 탄핵된 이후에도, 세월호 3주기 당일에도, 블랙리스트는 작동하고 있었다.

▲ MBC &#039;무한도전&#039;의 한 장면.
▲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국정원의 ‘좌파연예인 대응’은 드라마에서도 이뤄졌는데 황당한 경우가 많았다. 2014년 한 드라마PD는 배우 이하늬를 캐스팅했지만 윗선에서 ‘이하늬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들었다. 이후 드라마 제작사 대표까지 찾아와 ‘이하늬 캐스팅은 안 된다’고 부탁했다. 당시 상황을 두고 김철영 언론노조 MBC본부 편제부위원장은 “PD들은 이하늬씨 외삼촌이 문희상 민주당 의원인 점을 캐스팅 불가 이유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일종의 ‘연좌제’급 대우인 셈이다. 또 다른 드라마PD는 배우 문성근을 캐스팅하겠다고 보고했지만 ‘불가’ 답변을 들었으며, 소셜테이너로 유명했던 배우 김여진 역시 출연 배제 대상이었다.

여기에 2012년 170일 파업 여부를 놓고 MBC경영진이 자체 생산한 ‘블랙리스트’까지 제작현장에 더해졌다. MBC본부 노조는 “2014년 한 드라마에 오상진 아나운서가 캐스팅 됐지만 장근수 당시 드라마본부장은 ‘만들어봐야 폐기처분이니 접고 올라오라’는 막말을 내뱉었다”고 주장했다. 최근 <세모방>에 또 다시 오상진이 섭외되자, 보직간부는 직접 제작진을 불러 사전검열하기도 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MBC에선 동시에 ‘화이트리스트’도 존재했다. 박원국 MBC 드라마PD는 “MBC에선 최근 몇 년 사이 7개 드라마에 정우식이 출연했다. (윗선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섭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기력이 못 미친다고 판단해 낮은 비중으로 촬영하면 장근수 본부장이 제작진에게 정우식을 좀 더 쓰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원국 PD는 “장근수 본부장은 사장이 추천했다며 특정 배역에 정우식 캐스팅을 지시했고 정우식 출연 비중을 늘리지 않으면 조기종영과 작가교체를 암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 14일 상암동 MBC 로비에서 열린 파업집회 모습.
▲ 14일 상암동 MBC 로비에서 열린 파업집회 모습.
<무한도전>을 담당했던 익명의 보직간부 증언에 따르면 ‘창조경제’역시 적극적인 홍보 대상이었다. 해당 간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MBC경영진을 통해 <무한도전>에서 창조경제를 다뤄달라고 요구했다. <무한도전> 제작진과 협의를 위해 청와대에서 만나 논의하자는 요청이 있었다. 제작진이 직접 청와대로 가는 부담스러워 내가 광화문 창조경제혁신센터 사무실에 갔다.…창조경제와 관련한 요구는 1년 동안 계속될 정도로 집요했다”고 털어놨다. 앞서 MBC 드라마 <운빨로맨스>에선 창조경제혁신센터 홍보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소재검열은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관통하는 경영진의 기조였다. 2012년 1월 예능프로그램 <웃고 또 웃고>에 ‘나는 꼼수다’를 패러디한 ‘나는 하수다’란 코너가 등장했다. 전 방위적인 정치패러디였다. 김철영 언론노조 MBC본부 편제부위원장은 “‘나는 하수다’가 인기를 끌자 국장과 부장들이 내려와 종합편집을 통해 간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코너는 그해 2월 빛의 속도로 폐지됐다.

지난해 9월 방영된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해피 피라미드333> 제작진은 김연경 배구선수가 안산 세월호 분향소를 방문하는 장면을 트집 잡으며 “방송 후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경고를 들어야 했다. 해당 방송 분량은 전체 105분 가운데 2분에 불과했다. <퐁당퐁당 LOVE>와 <앵그리맘>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의 수위를 낮추거나 삭제하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섹션TV 연예통신>은 지난해 11월 실시간검색어 1위에 오른 ‘연예계 시국 소신 발언’을 다루자 “정치적인 것을 하지 말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수시 검열과 배제는 제작 자율성 침해로 이어졌고, 많은 예능PD들이 MBC를 떠났다. 드라마 경쟁력은 떨어졌다. 이 모든 과정은 국정원과 MBC경영진의 ‘공조’ 속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신인수 변호사는 “블랙리스트에 의한 출연자 배제는 근로조건 침해 사안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며 국정원과 공모했던 부역자들 또한 국정원법상 공동전범으로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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