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MBC 간부가 ‘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 보고서’ 등을 훼손한 것 등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2015년 9월9일 최기화 당시 MBC 보도국장(현 기획본부장)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당시 본부장 조능희)가 발행한 민실위 보고서를 찢은 후 쓰레기통에 버린 뒤 보도국 편집회의에서 ‘민실위 간사(이호찬) 전화에 응하지 말고, 민실위 간사와 접촉할 경우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MBC본부는 △보고서를 찢고 △전화에 응하지 못하게 하는 등 두 가지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지난해 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지노위는 민실위 간사 전화에 응하지 못하게 한 것은 노동조합 운영에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라고 봤지만 최 전 국장이 민실위 보고서를 찢은 것에 대해서는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MBC본부는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해 7월 중노위는 두 가지 행위 모두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하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MBC(대표 김장겸)와 최 전 국장 등 경영진(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화우)은 중노위 결정에 불복해 MBC본부를 상대로 중노위 결과에 대해 재심을 신청했다. 이들은 MBC본부가 허가 없이 민실위 보고서를 비치해 시설관리권 행사의 일환으로 보고서를 폐기했을 뿐이며 민실위 간사의 행동이 정당한 노조활동을 넘어서 취재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전화에 응하지 못하게 한 것이 정당한 업무지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2014년 8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세월호 보도 참사’를 현장조사하기 위해 상암동 MBC 사옥을 방문했지만, 직원과 청경들의 저지로 사옥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김현미 세월호 특위 야당 측 간사(오른쪽)가 최기화 당시 MBC 기획실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2014년 8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세월호 보도 참사’를 현장조사하기 위해 상암동 MBC 사옥을 방문했지만, 직원과 청경들의 저지로 사옥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김현미 세월호 특위 야당 측 간사(오른쪽)가 최기화 당시 MBC 기획실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MBC 경영진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지난 7일 최 전 국장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최 전 국장이 보도국 직원들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민실위 보고서를 찢은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그의 행위로 인해 보고서가 보도국 직원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줄었고 결국 이는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결과”라며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 MBC본부 민실위가 발행한 보고서가 보도국 내 유인물 배포용 테이블 위에 비치된 모습. 여기엔 민실위보고서뿐만 아니라 사측이 낸 ‘MBC 특보’와 ‘방송기자저널’ 등 소식지도 놓여 있다. 사진=MBC노조 제공.
▲ MBC본부 민실위가 발행한 보고서가 보도국 내 유인물 배포용 테이블 위에 비치된 모습. 여기엔 민실위보고서뿐만 아니라 사측이 낸 ‘MBC 특보’와 ‘방송기자저널’ 등 소식지도 놓여 있다. 사진=MBC노조 제공.

재판부는 “이호찬 간사는 뉴스를 취재한 기자들에게 전화해 자신이 민실위 간사임을 밝히고 뉴스에 대한 비평이라는 양해를 구한 후 보도내용 관련 질의를 했을 뿐 이들에게 모욕적 언사를 하거나 취재의도 추궁·비난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MBC 경영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법원이 그간 많은 판례에서 밝힌 것처럼 공정방송을 위한 노력을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재판부는 “민실위 보고서는 처음 발행된 이후 근 30년간 MBC 보도내용을 비판하는 내용을 다뤘고, 특별히 민실위 보고서 발행으로 MBC 보도의 공정성이나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MBC와 같은 방송사의 경우 공정방송 의무는 방송법 등 관계법규 및 단체협약에 의해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이며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며 “원고(MBC 경영진)는 구성원들에게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근로환경과 근로조건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실위 보고서 발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노조활동의 중요부분을 방해하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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