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SBS본부가 지난달 29일 ‘노보’를 통해 밝힌 대주주(윤세영 회장과 그의 아들 윤석민 부회장)의 적폐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지주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의 주식 61.2%를 보유한 태영건설의 회장이자 부회장이기도 한 그들 부자(父子)가 SBS라는 큰 매체의 실질적 사주로서 이명박의 ‘4대강 사업’에 참여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따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SBS의 환경전문기자가 4대강 사업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보도지침’까지 내리면서.

SBS노조는 9월4일자 ‘노보’에서 윤세영이 박근혜 정권에 어떻게 ‘부역’했는지를 상세히 밝혔다. 윤세영은 지난해 4월4일 보도본부 부장 이상 보직자 전원을 소집한 오찬 자리에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지 말라”는 취지의 ‘보도지침’을 내린 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까지 그런 행위를 거듭 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권을 좀 도와줘야 한다”며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 혜택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 지난 2015년 5월2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윤세영 SBS 회장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프라자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15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015년 5월2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윤세영 SBS 회장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프라자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15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빚’과 ‘혜택’은 SBS의 실질적 사주가 정권과 어떤 거래를 하면서 실익을 취했음을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언론에 그런 사실이 보도된 뒤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한 단체들이 윤세영 일가의 SBS 사유화와 ‘국정농단 공범행위’를 강력히 비판하는 성명서를 잇달아 냈다. 그러자 윤세영은 지난 11일 ‘SBS 가족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편지를 공개했다. “저는 오늘, SBS의 제2의 도약을 염원하며 SBS 회장과 SBS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 SBS콘텐츠허브와 SBS플러스의 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도 모두 사임하고 소유와 경영의 완전 분리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이런 조치는 대주주가 향후 SBS 방송 경영과 관련하여 일체의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자 명실상부하게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분리하는 제도적인 완결입니다. 이로써 SBS 대주주는 상법에 따른 이사 임면권만 행사하고 경영은 SBS 이사회에 위임하여 독립적인 책임경영을 수행하도록 할 것입니다.”

윤세영과 아들의 ‘사임’ 발표는 노조의 융단폭격을 자초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SBS노조는 같은 날 오후 “노동조합은 대주주의 ‘눈속임’에 속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지난 2008년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이미 소유·경영의 분리를 선언했던 윤세영 회장 일가가 갖은 불·탈법적인 경영개입을 통해 소유·경영 분리 선언을 무력화하고 SBS를 사유화해” 왔는데 “오늘 윤세영 회장의 사임 선언은 지난 2005년, 2008년, 2011년 필요할 때마다 반복해 왔던 소유·경영 분리 선언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재탕, 삼탕일 뿐”이라는 것이다. 노조는 “윤세영 회장 일가의 의도는 상법 운운하며 이사 임면권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대목에서 정확히 드러난다”고 지적한 뒤 “이미 오랜 세월 방송 사유화로 전 구성원의 미래를 망쳐온 가신들과 측근들을 통해 SBS 경영을 계속 통제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9월12일자 ‘SBS노보’에는 윤세영 일가가 SBS TV를 비롯한 ‘사유 매체들’을 통해 어떤 불법행위들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사익을 위해 구성원들을 어떻게 혹사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가장 악질적인 것은 SBS 구성원들이라면 누구나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인제 스피디움’과 태영건설의 ‘광명역세권 데시앙 분양사업’ 성사를 위한 SBS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행위들이다. 하나같이 SBS의 이해와 하등 관계가 없는 일들이었지만, 대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공재인 SBS 전체를 심부름센터와 로비 수단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대주주가 완전히 장악한 이사임면권에 따라 임명된 SBS 경영진은 “사실상 윤세영·윤석민 대주주 일가의 개인비서 노릇을 하며 앞장서서 SBS의 이익을 훼손하고 SBS를 망치는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노태우 정권 시기인 1991년 12월9일, ‘초대형 특혜’라는 비난을 받으며 개국한 SBS TV를 중심축으로 삼아 윤세영 일가가 지난 26년 가까이 저지른 적폐의 실상을 기록하려면 두툼한 ‘백서’ 한 권으로 모자랄는지도 모른다.

▲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본사 모습. ⓒ 연합뉴스
▲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본사 모습. ⓒ 연합뉴스
방송법 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4항에는 “방송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신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윤세영이 ‘회장’이라는 직책을 악용해 보도지침을 내리면서 SBS의 편성에 간섭하고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행위이다. 그리고 그와 아들이 공공재를 권언유착과 부정한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한 행위 역시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오는 11월 말까지 방송사업자들에 대한 재허가 심사를 마칠 계획이다. SBS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4년 재허가 취소 직전까지 갔다가 ‘민영방송 지배주주 선정 조건’으로 ‘공익기부 3년간 300억 원’을 약속하고 가까스로 폐업을 면할 수 있었다. SBS는 2012년에도 재허가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방통위는 ‘사회환원 유지(기부금 공제 후 세전이익의 15% 출연’, ‘2007년도 변경허가(지주회사 전환)시 제출한 이행각서 지속적 준수’ 등을 조건으로 SBS에 재허가를 내주었다. 올해의 심사에서는 SBS가 이런 조건을 충족했는지가 검토 대상이 될 것이다. 나아가서 윤세영 일가의 사유화가 그 뒤 4년 남짓 동안 더욱 강화된 현상도 도마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지금 SBS에서는 노동조합과 보도부문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SBS의 소유와 경영을 인적·제도적으로,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완벽하게 분리하자”는 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윤세영 일가와 그 하수인들의 적폐 때문에 SBS가 정파(停波)라는 불행을 겪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국가적 손실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윤세영 일가가 이사임면권을 포기하고 SBS에서 깨끗이 물러나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일가가 오랜 세월 SBS에서 저지른 비위와 위법행위들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뜻으로 보유주식의 절반 이상을 사원주와 국민주 형식으로 적정한 가격에 매도한다면 SBS는 급속히 혁신의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SBS 구성원들과 전국의 언론·시민단체들이 뜻을 모아 ‘SBS혁신위원회’를 구성하는 작업도 사회적 공론에 붙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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