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4일부터 KBS, MBC 두 방송사 노동조합이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파업의 배경이나 원인을 여기서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이 글에서는 지금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두 방송사 노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 3가지를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주제넘게 이들에게 숙제하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과 조합원들이 이미 준비하고 있겠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는 뜻에서 적어보았다.

파업은 학습이다

누가 파업을 원하겠는가? 잘 알다시피 파업은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최종의 선택이다. 안타까운 것은 최종의 선택이 반드시 최대한의 현실적 성과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파업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또한 극히 중요하다. 설령 현실에서 실패하더라도 과정이 단단하였다면 파업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조합과 조합원들이 파업 이후의 과제를 설정하고, 투쟁 속에서 과제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 요긴해진다. 파업이 조합과 조합원 모두의 내공을 다지는 학습인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 교섭대표노조인 ‘KBS노동조합’이 9월7일 0시 총파업에 돌입했다. KBS노동조합은 파업 참가 조합원이 200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진=KBS노동조합
▲ 교섭대표노조인 ‘KBS노동조합’이 9월7일 0시 총파업에 돌입했다. KBS노동조합은 파업 참가 조합원이 200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진=KBS노동조합
숙제 1. 공영방송사 이사 선임 또는 구성방식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우리 사회는 권력의 방송개입이 이사진을 통해 자행된다는 것을 목격했다. 때문에 공영방송사 이사진의 선임과 구성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누가 되었든 권력의 개입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화두 차원에서 하나의 방안을 제시하면, 공영방송사 이사직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설정하고, 엄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미디어 분야 전문가 집단의 풀을 방통위 주관 하에 만들어 그중에서 제비뽑기 방식으로 이사진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방송사 이사직에 꼬이는 무수한 자격 미달자들의 발길을 차단할 수 있다. 또 방송사 이사 자리를 누군가에게 챙겨주고자 하는 시도 역시 원천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 지금 방송사 사장 선출에서 특별 다수제를 도입하자는 방안이 나와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발목 잡는 것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아니다.

숙제 2. 크게 망가진 방송사 내부의 조직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것

KBS도 내부조직을 새롭게 추슬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두 번째의 숙제는 특히 문화방송의 경우 시급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는 경영진들이 지난 수년 동안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마구잡이로 뽑아 들인 대체인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동안 경영진이 취해온 야만적 인사관리 행태를 대체인력들에게 복수의 규칙대로 되돌려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런 방식은 당장 법을 어기는 부당노동행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다’ 식으로 두루뭉술 넘어가서는 망가진 조직이 절대 회복되지 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외부인이 특정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총의를 모아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다.

▲ 기자·PD·아나운서·엔지니어 등 1000여 명의 직원이 소속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9월4일 오전 10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김 사장의 퇴진과 MBC 정상화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기자·PD·아나운서·엔지니어 등 1000여 명의 직원이 소속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9월4일 오전 10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김 사장의 퇴진과 MBC 정상화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숙제 3. ‘공정방송’이라는 파업 핵심주제의 내용을 충실하게 채우는 것

이는 사실 언론사 노조가 품고 있는 아주 오랜, 동시에 원론적인 과제이다. 언론사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조합 철학의 문제이기도 한데 출발은 ‘공정 방송’이라는 구호가 협소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쉽게 말해 ‘공정 보도’라는 말은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지만, ‘공정 드라마’, ‘공정 예능’, 이런 용어는 사실상 말이 안 된다는 점에서 보다 포괄적인 주제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이는 후순위 과제이기도 하고 또 지나치게 세세한 지적, 문제를 위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언론사 노조의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한 물음이라는 점에서 파업 기간에 조합원들이 함께 논의해 볼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과제이다.

이번의 파업 기간 동안 조합과 조합원들이 과제를 공유하고 내실을 갖춘 대안을 마련한다면 향후 이는 회사와 노동조합을 굳건하게 세우는 대내외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끝으로 구호하나 외친다. KBS를 망가뜨린 고대영·이인호, MBC를 망가뜨린 김장겸·고영주, 또 그 하수인들, 역사의 죄인들은 모두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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