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멈춘 지 3개월이나 지났다. 3기 방통심의위 임기가 6월12일 끝났고, 오는 9월20일이면 업무 공백이 생긴 지 100일이 된다. 출범 후 최장 기간 공백이다. 실제로 마지막 회의가 진행된 시점은 5월25일이니 실질적 공백은 더 길다.

방통심의위 직원들은 회의에서 안건을 상정하기 직전 절차까지의 업무는 그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업무절차는 모두 멈춰있다. 이렇게 쌓인 민원이 방송 심의 2000여건, 통신심의의 경우 9만7000건을 넘는다.

방통심의위 관계자 A씨는 “심의가 끝난 후 처리해야하는 보고서나 의결서 작성 등 업무가 한 번에 몰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며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라 불안감만 쌓여간다”고 말했다.

김준희 전국언론노조 방통심의위 지부장은 “쌓인 민원 중 각하될만한 건도 많지만, 각하결정을 하는 것도 위원회를 열어 보고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위원회 구성이 안 돼 민원만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진행하는 모습.  ⓒ 연합뉴스
▲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진행하는 모습. ⓒ 연합뉴스
뒤늦게 위원회 구성이 되더라도, ‘초보 위원’들이 밀린 안건을 무더기 심의를 하게 되면 졸속심의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방통심의위 관계자 B씨는 “초반에는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방송심의규정을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하기도 전에 수천 건의 밀린 심의를 하게 되면 대충하게 될 수밖에 없다”며 “재허가와 재승인에 영향을 주는 심의를 한 건 한 건 들여다봐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원 많은 방송사 ‘반사이익’ 얻을 수도

방통심의위의 업무 공백으로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에 영향을 미치는 방송심의가 미뤄지는 점이다. KBS, MBC, SBS, EBS 등 주요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심사는 12월31일로 예정돼있고, 11월30일에는 MBN의 재승인 심사가 예정돼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지상파 재허가 심사에 8월31일까지의 심의규정 위반사항을 반영할 예정이다. 11월 예정인 MBN 재승인 심사에 반영될 심의규정 위반사항 기간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심의 결과로 인한 법정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와 재승인 평가 시 감점 사안이다.

올 상반기에 재승인 심사를 받은 다른 종합편성채널과 달리, 11월에 재승인 심사를 받는 MBN의 경우 3년 치 심의 결과를 제출한 타 종편채널에 비해 방통심의위의 공백 기간이 제외된 심의 결과를 제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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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재승인 심사 당시 TV조선의 심의규정 위반이 과도해 탈락 위기를 맞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제재를 많이 받는 방송사일수록 위원회 구성 지연에 따라 ‘반사 이익’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2018년도 방송평가 및 추후 재허가‧재승인 심사에도 심의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방통심의위 관계자 C씨는 “사업자 입장에서도 예측가능성이 필요한데 연말에 한꺼번에 제재를 받게 되면,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재허가나 재승인에 연계된 부분이라 민감한데 시기가 늦어 재심이 어려워지면 재판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방통심의위 규정상, 방송된 지 6개월이 지난 프로그램의 경우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방송심의규정 제3조 제2항은 “방송법에 따라 방송사가 방송프로그램의 원본사본을 보관하는 기간(6개월)이 경과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심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돼있다. 다만 허위 왜곡 방송 등에 대해서는 예외를 둔다. 즉 인권침해‧양성평등‧선정성‧폭력‧PPL 관련 규정 위반 시 6개월이 지나고, 방송사가 원본을 제공하지 않을 시 제재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5월17일 SBS플러스에서 방송된 ‘캐리돌뉴스’의 일베 이미지 사용으로 인한 민원이 230건 제기됐다. 지난 6월25일 방송된 MBC ‘섹션TV연예통신’의 경우 송혜교씨와 송중기씨의 결혼 발표를 보도하며 송혜교씨의 비공개 SNS 내용을 보도해 민원이 빗발쳤다. PPL과 관련해서는 SBS ‘스타일팔로우’에서 버스 내에 안마의자를 설치하고 이를 사용하는 장면을 방송했는데 황당한 PPL로 문제가 지적됐다. 이런 심의들을 밀린 민원과 함께 처리하다보면 한 건 한 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심의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 5월17일 SBS플러스 캐리돌뉴스 화면.
▲ 5월17일 SBS플러스 캐리돌뉴스 화면.
대통령이 ‘몰카 범죄 엄벌’ 말하지만 ‘시정요구’ 내릴 수 없는 상황

통신심의의 경우 9월1일 기준 심의 대기 건수가 9만7885건에 달한다. 통신심의소위의 한 관계자는 “특히 음란물과 관련된 심의는 한주에 1500건 정도인데, 지금쯤이면 음란물 관련한 안건만 2만~3만 건 쌓였을 것”이라며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등 디지털 성범죄, 몰래카메라(몰카) 범죄 등 통신 심의에서 해결해야 할 게 한 무더기일 텐데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부도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국무회의에서 몰카 범죄 대책을 논의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인터넷상 몰카 영상 유포를 규제해야 할 방통심의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며 “조속히 심의위원을 위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몰카 범죄 외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는 ‘지인 능욕, 연예인 합성, 개인 사진 합성’ 등 디지털 성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방통심의위가 8월11일부터 28일까지 집중 모니터링 한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 사진을 음란물 등과 합성한 디지털 성범죄는 34건, 연예인 합성 건은 348건, 연예인 합성과 지인 합성을 함께한 정보 16건으로 총 398건이 접속 차단 대상인 것으로 적발됐다. 그러나 이 건 역시 방통심의위가 구성되지 않아 접속차단이 되지않고 있다.

▲ 지인이나 연예인 사진을 나체 사진에 합성하거나 지인의 게시물에 성희롱 댓글을 다는 등의 행위를 하는 계정들. 사진출처=트위터
▲ 지인이나 연예인 사진을 나체 사진에 합성하거나 지인의 게시물에 성희롱 댓글을 계정들. 사진출처=트위터
방통심의위의 관계자 D씨는 “최근에는 연예인 사진뿐 아니라, 일반인이 SNS에 올린 사진을 갖고 성매매 업소 홍보에 사용하는 건수가 늘고 있다”며 “나도 모르게 성매매 업소 홍보에 내 사진이 이용되는 건데, ‘지인능욕’과 같은 성범죄보다 죄질이 나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통 이런 정보에 접속차단을 내리지만, 통신심의가 열리지 않으면 시정되지 않는 정보에 시정요구를 할 수 없다”며 “시정요구가 늦춰질 시 자율규제도 느슨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 여전히 오리무중인 위원회 구성

방통심의위위원 구성이 늦어지는 이유는 의석배분을 둘러싼 국회 내 갈등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국회가 다당제로 변했다는 이유로 ‘정부여당6: 야당3’ 구도가 아닌 ‘정부여당5: 야당4’ 구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른정당 1명, 국민의당 1명, 자유한국당 몫으로 2명을 달라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 합의가 되지 않는 위원 몫을 빼고 나머지 위원만 먼저 위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방통심의위 위촉절차는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추천한 3인, 국회 상임위에서 추천한 3인, 대통령이 추천한 3인으로 구성된다.

▲ 지난 9일 오후 서울 코엑스 앞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및 당원과 일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문재인 정권 '5천만 핵인질, 방송장악'저지 국민보고대회가 열렸다.사진=자유한국당
▲ 지난 9일 오후 서울 코엑스 앞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및 당원과 일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문재인 정권 '5천만 핵인질, 방송장악'저지 국민보고대회가 열렸다.사진=자유한국당
지난 7일 전국언론노조 방통심의위 지부는 성명을 통해 “야당의 심의위원 추천 몫 추가 요구에 발목이 잡혀 업무 공백을 방치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 인선이 완료된 6인의 심의위원을 먼저 위촉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갈등으로 방통심의위 구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은 “지난 10년간 방통심의위 위원 구성을 5:4로 하자고 계속해서 제안해왔는데 그동안 계속해서 거절하다가, 입장이 바뀌니까 갑자기 5:4구조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동안 민주당이 주장했던 것을 10년 동안 무시했던 자유한국당인데, 자업자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신경민 의원은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에 지분을 내놓으라고 할 게 아니라 자유한국당에 내놓으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8월30일 성명을 통해 “자유한국당의 몽니는 방송의 공정성, 객관성 및 방송의 공적책임을 수호할 방통심위의 기능을 중단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왜곡·편파보도가 판을 치게 만들고 있다”며 “KBS·MBC 등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의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이들의 문제 보도를 제 때에 규제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 또한 자유한국당이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통심의위의 한 관계자 B씨는 “방통심의위는 방송통신사업자들의 세금인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으로 운영된다. 방발기금은 일종의 세금이며, 방통심의위에 대략 300억 가량의 예산이 들어간다”며 “대략 한 달에 27억 정도가 유지비로 들어가는 셈인데, 3개월이면 80억 원이고,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며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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