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은 최승호 전 MBC PD(현 뉴스타파 앵커)가 KBS·MBC 공영방송이 어떻게 무너졌으며 그 과정에서 유능한 방송인들이 어떻게 저항하다 탄압을 받았는지 자세하게 영상과 기록으로 남긴 역작이다. 특히 언론학자들이 권력의 방송장악을 위해 학문을 배신하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채 어떻게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들을 했는지 학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공분의 취재물이다.

▲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공범자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했고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대부분 국민은 공영방송의 몰락에 무심한만큼 이들의 노력과 분투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권력의 방송장악 과정에서 방송 공영성을 무시하며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국정원·검찰·국세청 등 국가공조직의 허망한 역할. 낙하산으로 사장이 된 자들의 인사횡포와 무책임함. 유능한 기자와 PD들에 대한 불법적이고도 무차별적인 중징계와 인사만행… 조직과 권력 앞에서 초라해지는 대의명분과 저널리스트들의 처절한 저항에 분노가 치밀었다.

특히 훗날 대법원 판결로 불법해임 결정이 난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KBS내로 불러들인 권력의 하수인 유재천 (전 KBS 이사장, 전 서강대 교수) 교수는 유명한 언론학자였다.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역할을 누구보다 강조해왔던 그가 학문을 부정하며 권력의 마름이 돼 불법에 앞장 선 모습은 언론학자 대부분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 2008년 방송 장악을 위한 MB정부의 사정기관 압박으로 해임됐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사진=뉴스타파
▲ 2008년 방송 장악을 위한 MB정부의 사정기관 압박으로 해임됐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사진=뉴스타파
권력과 손을 잡은 그의 영달은 KBS 몰락에 공헌한 대가로 상지대 총장으로 영전했다. 권력에 충성한 열매를 챙기며 이사장, 총장으로 전전하는 사이 학자에 대한 권위와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칼럼 “부끄러워해야 할 ‘우리’ 언론학자들” 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 MBC 정권 당시 방문진과 KBS 이사장을 맡았던 김우룡 교수, 유재천 교수를 간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같이 보던 동료들도 참담하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수치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언제 무슨 짓을 했는지, 그 과거의 행적은 결코 망실되거나 망각되는 법 없이 하나하나 영화의 역사 속에 소환되고 있었습니다. 정권부역의 역사다큐멘터리에 적나라하게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전 교수는 김우룡, 유재천 교수를 ‘우리’ 언론학자들로 동일시 하며 ‘수치스러워’했다. 나도 수치스럽긴 하지만 그들과 같이 ‘우리’ 언론학자로 부르고 싶지않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힘없이 글이나 생산하는 무명학자가 어찌 유명학자와 동일반열에 두고 논리를 전개할 수 있겠는가.

전 교수의 지적처럼 유 교수와 쌍벽을 이루며 학계를 권력의 놀이터로 전락시킨 사람에 김우룡 전 외대 교수가 있다. 그는 MBC 공영방송을 망치는데 일등 공신역할을 했다. 그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하며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선임했다.

▲ 유재천 전 KBS 이사장(왼쪽)과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연합뉴스
▲ 유재천 전 KBS 이사장(왼쪽)과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연합뉴스
김 교수는 ‘청와대 쪼인트’ 발언으로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훗날 그는 김재철 사장은 ‘능력도 부족했고 사장감이 아니었지만 청와대의 뜻을 따랐고 그것은 잘못이었다’는 식으로 반성했지만 오히려 더 화를 돋구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는 공영방송 사장을 그런 식으로 뽑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렇게 강단에서 강의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맡던 유의선 교수가 마침내 사표 낸 소식 들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내내 구설에 오른 선배 언론학자십니다. MBC 보도 별 문제없다고 해 최승호 PD와 한판 붙었던 분이죠”라며 또 다른 언론학자를 공범으로 적시했다. 전 교수는 유 교수 역시 공영방송 몰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박근혜 정권 내내 문화예술위원회 의원장을 맡았던 박명진 서울대 교수의 참혹한 말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문화연구 제 1세대였던 노교수가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는 엄청난 국가검열비리의 한복판에 서 있었죠. 끝까지 자리를 버티다 정권이 바뀌고 겨우 그걸 내놓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노욕이라 욕했습니다”라며 박 교수를 거명했다.

▲ 2016년 10월10일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자료제출 요청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6년 10월10일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자료제출 요청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권력의 방송장악은 과거나 현재 모습에서 보듯 언론학자들이 하수인으로 등장하여 학문의 진리와는 반대의 길을 걸으며 국민을 배신하고 공영방송을 망친다. 공정방송을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하는 저널리스트들에게 힘을 보태기는커녕 거꾸로 공권력을 동원하여 부도덕한 권력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그 대가로 공기업 사장이나 대학교 총장으로 낙점받는 출세길도 보장된다.

추태의 행렬은 계속된다. ‘학계의 거두’라는 언론학자들 지도를 받은 후배 교수들이 그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잘못된 역사에서 배우기보다 답습하는 모습을 익히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계는 공영방송 몰락의 공범자들, 언론학자 백서를 만들어 부끄러운 이름이 대대손손 읽히도록 해야 한다.

공영방송이 무너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불법을 저질러도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만인 이런 무책임한 역사의 반복은 상처만 키울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기록만으로도 ‘부끄러운 언론학자 백서’ 발간에 내용물이 넘칠 정도이니 ‘백서위원회’ 구성과 논의를 제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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