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년간 공영방송 장악의 당사자들이 새 정부의 ‘공영방송 정상화’를 ‘장악’으로 왜곡하고 있다. 언론이 논란을 만들면 자유한국당이 이를 확대해석해 입장을 내고, 다시 언론이 이를 받아쓰며 확대재생산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MBC는 고전적인 ‘종북’ 프레임까지 꺼내들었다. ‘어느 정부나 똑같다’는 양비론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1. 물증 만들기→야당 ‘오버’→ 확대재생산

조선일보가 ‘공영방송 사장 퇴진 로드맵’ 문건을 공개하고 자유한국당은 ‘경악할 수준의 방송장악 문건’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문건을 그럴 듯하게 보도한 다음 자유한국당이 확대해석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쓰며 확대재생산하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8일 “민주당이 KBS·MBC 등 공영방송을 ‘언론 적폐’로 규정하고 사장과 이사진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 등 시민단체 중심의 범국민적 운동을 추진하자는 내부 문건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현 정부와 시민사회의 공영방송 정상화 추진이 은밀하게 짜인 각본대로 이뤄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보도다.

▲ 9월8일 조선일보 보도.
▲ 9월8일 조선일보 보도.

해당 문건은 ‘공영방송 정상화 추진상황 정리’ 문건 정도로 봐야 한다. 은밀한 로드맵이라면 알려지지 않은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고, 특정 인사에 대한 방침 등이 거론돼야 하지만 그런 내용은 없다. 대신, 이미 여당과 시민사회단체가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영방송 정상화 방안 정도만 나와 있다. 민주당 역시 당직자가 쓴 워크숍 준비용 문건으로 지도부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며 이에 대한 재반박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진위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조선일보 보도를 언급하며 ‘방송장악 문건’이라고 이름 붙이며 공세를 시작했고 ‘공영방송 정상화’에 반발하고 나선 언론은 이를 적극 이용하는 모양새다.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논란이 될 만한 문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 9월8일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9월8일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특히 당사자인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9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 동안 7건의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 파문 확산”(8일) “‘퇴진운동’부터 ‘사퇴’까지… 속속 현실화”(8일) “‘충격적 음모’…‘실무자 의견’”(9일) 등이다. KBS 역시 8일 “‘공영방송 경영진 퇴출’ 여 문건 파동”이라고 보도했다. 중편 중에서는 TV조선 ‘뉴스쇼판’이 관련 사안을 3건 보도하며 쟁점화에 나섰다.

2. 기승전 ‘방송장악’

일찌감치 일부 언론은 ‘방송장악’ 프레임을 꺼내들며 반발했다. 6월8일 MBC 뉴스데스크는 “정권교체 한 달 만에 공영방송사 경영진 교체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언론 통폐합을 앞세워 언론을 장악했던 5공 군사정권과 닮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며 전두환 정부에 빗댔다. 8월9일 조선일보는 “새 정부부터 공영방송 장악 시도 그만두라”는 사설을 냈다.

▲ 6월8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6월8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김장겸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 이후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는 사실관계를 왜곡한 발언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타고 있다. 9월3일 채널A ‘선데이모닝쇼’에 출연한 최진녕 변호사는 “‘본인들에 대해서 비판을 한다’는 입장 때문에 법적 책임까지 묻게 된다고 한다면 이른바 신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했다. 9월2일 채널A ‘안형환의 시사포커스’에 출연한 이상휘 세명대 교수 역시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가 있지 않느냐,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체포영장 발부를 방송장악이라고 규정짓는 건 문제가 있다. 전무후무한 언론계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진 상황에서 이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진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3대 언론학회가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내고 “방송의 자유는 공영방송의 실천을 위한 것이지 방송인에 재갈을 물린 체제와 인물을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3. 양비론

일부 언론은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더니 야당 시절 반발하던 언론장악을 한다는 식으로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를 동일선상에 놓으며 보도하고 있다. 두 사안은 동등비교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또 다른 왜곡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 2일 조선일보의 “KBS 정연주 해임 땐… 野였던 민주당·진보진영 ‘방송장악 쿠데타’”기사다. 이날 ’팔면봉‘에서도 “보장된 임기 무시하는 건 방송 입 틀어막는 일”이라는 2008년 당시 민주당 입장을 소개하며 이중적이라고 꼬집었다. 중앙일보는 지난 1일 “KBS MBC 동시파업... 정권 초 또 공영방송 사장 거취 논란”을 통해 역대 정부에서 같은 문제가 벌어지는 것처럼 다뤘다.

▲ 9월2일 조선일보 기사.
▲ 9월2일 조선일보 기사.

종편 시사토크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쏟아졌다. 지난 2일 MBN ‘시사스페셜’에서 이종근 데일리안 논설위원은 “9년 만에 똑같이 되풀이 되서는 안 된다”고 밝혔으며 지난 3일 MBN ‘시사스페셜’에서 윤영걸 전 매경닷컴 대표는 “정권 바뀌면 공영방송이 제대로 서고 이런 데 관심보다는 자기 파를 어떻게 해서든지 끌어들여 내 마음대로 장악하겠다, 이런 의도 자체가 불손하게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안은 같지 않다. 2008년 당시 정연주 사장의 체포영장 청구 이유였던 배임혐의는 정 사장이 과거 법원의 조정안에 따른 게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무리한 적용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 재판에서도 해당 대목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해임을 위해 억지로 혐의를 만들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반면 MBC사측의 부당노동행위는 박근혜정부 고용노동부가 인정한, 이미 명백하게 벌어진 범죄행위였고 지금은 그에 따른 조치에 나선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이전에 이미 지난 정부에서 MBC의 부당전보, 부당해고 등이 사법부의 판단을 받았다. 지난해 마이나 키아이 UN 특별보고관은 MBC의 노조탄압 실태에 대해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밝힐 정도였다. 최근 공개된 방송문화진흥회 사장면접 녹취록에선 경영진이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사실을 시인하는 내용까지 드러났다.

4. 정상화 요구하는 언론인·시민사회 공격

메시지를 반박하지 못할 경우 메신저를 공격하는 고전적인 수법도 나왔다. 지난달 11일 MBC 뉴스데스크는 ‘종북’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MBC는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석운 공동대표를 향해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이끌었으며, 2005년에는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최근에는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 8월11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8월11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MBC는 또 “시민행동에 참여한 민권연대는 종북콘서트로 논란이 됐던 황선씨의 남편인 한총련 의장 출신 윤기진씨가 의장을 맡고 있으며 끊임없이 친북, 반미 성향의 정책을 지지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민언련은 8월14일 논평을 내고 “MBC는 박석운 대표의 ‘퇴진행동’ 이력이나 ‘백남기 투쟁본부’ 이력을 쏙 빼놓았다”면서 “어떻게 해서든 박 대표에게 ‘색깔론 덧씌우기’를 통해 ‘종북인사’ 비슷한 이미지로 묘사하려는 MBC의 바람이 잘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MBC는 최근 특보에서 MBC 파업사태를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미디어오늘과 한겨레를 두고 ‘지라시’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파업이 이어지자 조선일보는 구성원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조선은 5일자 “‘재난방송 주관’ KBS, 북 핵실험 때 노래자랑 방송”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 탓에 재난방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들이 기간방송 종사자가 맞느냐는 생각이 든다. 외적이 문 앞에 와 칼을 휘두르는데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느라 정신 줄을 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물론 조선일보 지면에는 KBS 구성원 3700여명이 왜 방송파행을 각오하고 파업에 나섰는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 9월5일 조선일보 보도.
▲ 9월5일 조선일보 보도.

5. 우호적인 목소리 키워 물 타기

김장겸 MBC사장과 고대영 KBS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사내 다수 구성원의 목소리는 외면하면서도 공영방송 정상화 반발 목소리는 키우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6일 MBC 뉴스데스크는 “시민단체 ‘MBC 지키기 국민행동’은 오늘 집회를 열고 방송장악 시도를 중단할 것을 언론노조에 촉구했다”며 규모가 크지 않았던 이 집회를 메인뉴스 리포트로 제작했다. 민언련은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3대 언론학회 소속의 언론학자 467명의 성명도, 전국 500여 시민사회단체들의 상설연대기구인 시민사회연대회의의 기자회견도 모두 무시했던 MBC가 이 집회에는 큰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 9월6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9월6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지난 4일 조선일보는 “‘박 전 대통령 석방하라 방송탄압 중단하라’ 3000명 태극기 집회”를 보도했다. 앞서 8월12일 조선일보는 MBC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해 문건 작성자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며 소수의 구성원들만 가입한 MBC노동조합(제3노조)이 밝힌 “사적 문건을 마치 사측의 지시를 받고 작성한 양 날조·선동한 언론노조는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뉴데일리, 뉴스타운, 미디어워치, 미래한국 등 인터넷 매체는 소수의 간부들로 구성돼 대표성을 갖기 힘든 KBS 공영노조 등의 입장을 주기적으로 기사화하고 있다.

참고자료: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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