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에 20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린 ‘잔인한 판결문’을 대법원 상고심 심판대에 올렸다.

2010년 현대차비정규직지회(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 파업’을 지원했던 노조활동가 및 노동자 4명은 11일 오전 10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자동차에 20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부산고등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 노동법률단체 등 학술단체와 손잡고, 비정규직없는 세상 만들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11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월24일 부산고법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지원자 4명에게 내린 20억 원 손해배상 판결을 규탄했다. 사진=손잡고 제공
▲ 노동법률단체 등 학술단체와 손잡고, 비정규직없는 세상 만들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11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월24일 부산고법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지원자 4명에게 내린 20억 원 손해배상 판결을 규탄했다. 사진=손잡고 제공

이번 상고엔 시민 178명과 14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했다. 인지대 1500만 원 등 상고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지 고민하던 때 ‘민주주의법학연구회’에서 “상고비용이 없어 상고를 못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긴급 모급을 제안했고 시민사회단체 ‘비정규직 없는 세상’과 ‘손잡고’가 모금을 추진했다. 그 결과 8월31일부터 지난 10일까지 총 1826만 원 가량이 모금됐다.

문제가 된 파업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조 조합원들이 2010년 11월15일부터 25일 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시트사업부 1공장에서 단행한 파업이다. 불법파견 노동자의 정규직화 문제를 두고 현대차가 교섭에 임하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정규직화 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2005년 해고된 최병승씨 사건에 대해 2010년 7월22일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이라는 취지로 판시했다. 사내하청노조는 이를 근거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사측에 특별교섭을 요구했으나 현대차는 이를 거절하면서 최씨가 속한 하청업체에 폐업조치까지 단행했다.

현대차는 이 파업을 지원한 노조 관계자, 정규직 노조 간부에게까지 20억 원 배상액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2013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항소심을 맡은 부산고법은 지난 8월24일 “업무방해행위로 인해 원고들에게 거액의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고 “(현대차는) 손해의 일부인 고정비만을 전보받기 위해 청구를 하고 있는 이상 이를 권리남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 손을 들어줬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판결문은 최소한의 균형감각마저 잃었다”며 “‘회사의 불법에 저항하고 기본권을 요구하려면 수백억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회사의 논리에 손을 들어준 잔인한 판결문”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조합 와해 및 약화’ 목적으로 남용되는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사법부가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노조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는 그동안 수차례 확인됐다. KEC의 경우 사측 ‘쟁의행위 대응 전략회의’에서 다뤄진 내부 문건에 “노동조합 압박 전략” 차원에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준비한다는 내용이 확인된 바 있다. 현대차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의 경우, ‘노조파괴’ 노무법인으로 알려진 창조컨설팅과의 내부 회의자료에 ‘금속노조 탈퇴 유도’에 대한 방책으로 “금속노조 유성지회 핵심 조합원에 대해 중징계 및 손해배상 청구”가 적혀 있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현대차 사측이 불법파업 정규직화 투쟁에 대해서만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374억 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2010년 파업 건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청구 소송 8건을 제기했고 이 중 2건만 소를 취하해 6건이 확정 혹은 진행된 상황이다. 이 중엔 비정규직 노동자 1명과 정규직 노동자 3명 등 4명에 대해 90억 원 손해배상을 확정한 판결도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위원회는 한국정부에 현대자동차가 ‘업무 방해’ 조항에 기반해, 노조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과 권리를 단념하도록 만들기 위한 위협의 일환으로 (예를 들어, 부당해고 소송 철회,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는 노동조합 탈퇴, 잔업 거부 철회 등)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는 손배소를 제기한데 대해 독립적인 수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부산고법은 ‘파업이 정당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용현 재판장은 “쟁의행위는 반사회성을 띠지 않아야만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 “(이 파업은) 사내하청노조원들이 위력으로 이 사건 공장 1공장을 점거하고 그 가동을 중단시킨 데에까지 나아갔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번 판결은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이들에게 재갈을 물린 반인권・반헌법 사건”이라며 “이번 판결을 통해 재벌대기업이 거액 손해배상 소송으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에 재갈을 물렸고 손해배상의 대상을 노조 지도부가 아닌 일반 조합원과 연대자까지 확대했다”고 비판했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라고 밝히고 있다.

참가자 일동은 “기업이 회계법인 감정서를 근거로 제한없이 직·간접적인 손해를 주장하면 법원은 그 상당 부분을 인정해주고 있는 현실인데 손해배상 범위를 직접 손해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이어 “이러한 입법이 이루어지기 이전이라도 법원은 파업권이 헌법상 기본권 중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여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론을 변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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