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어쩌면 이렇게 맞아떨어질까요. 서울, 부산, 강릉 등 전국에서 발생한 10대들의 잔혹한 폭행사건을 계기로 ‘소년법 개정’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현행 소년법은 만 18세 미만 청소년이 사형 및 무기형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러도 최대 15년의 유기징역까지만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정의 방향을 적용나이를 낮추고,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논의는 할 수 있지만 소년법 폐지 청원이 있다고해서 폐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죽 화가 나면 소년법을 없애고 아예 싹을 잘라버리자고 뜻을 모으고 있을까요. 필요하면 법개정 할 수 도 있습니다. 2013년 이후 5년간 6만3천여명이 학교폭력 사건으로 사법당국에 적발됐을 정도로 중대한 사회문제가 됐으니까요.

하지만 법 개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키운 어른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고 봅니다. 기성세대의 어떤 부분이 아이들의 행동과 청소년 범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다섯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폭력의 일상화로 그 심각성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입니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아이들의 폭력행사에 대해 단호하게 조치하기 보다는 ‘맞으면서 큰다’‘좀 더 때려줘라’‘맞고 오지말고 너도 때리고 오라’는 식으로 폭력이 범죄행위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심지어 학교에 간 아이가 맞거나 괴롭힘을 당했다고 아버지가 한걸음에 달려가 학교에서 학생을 구타하는 엽기적인 일이 심심치않게 발생하는 곳이 한국입니다. 가정교육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모든 기성세대 부모들이 더 크게 반성할 문제가 아닐까요. 가정에서부터 폭력, 구타행위에 대한 금지 교육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합니다.

▲ 2015년 4월19일자. KBS 뉴스 화면 갈무리
▲ 2015년 4월19일자. KBS 뉴스 화면 갈무리
둘째, TV 등 미디어의 악영향도 폭력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독소가 되고 있습니다.

동남아를 다녀보면 한국 TV 드라마를 좋아하는 현지인들이 가장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라며 질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드라마중에 종종 싸대기를 때리는 장면에 대해 한국드라마 소비자들은 후련함을 느낄지 몰라도 현지인들은 깜짝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회도 폭력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한국처럼 왕따와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2017년 9월 6일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병원선’5회에서는 도끼로 팔을 절단하는 끔찍한 모습이 방영됐다고 합니다. 영화가 아닌 공영방송에서 안방으로 피투성이를 전달하는 장면은 시청률을 의식한 장면이지만 그 악영향은 상상초월입니다. 드라마라 하더라도 방송법에서는 끔찍하고 혐오스런 장면은 방영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시청률로 상업주의의 화신이 된 TV는 더 한 장면도 서슴치 않고 보여주는 식입니다. 이런 드라마를 만들고 이런 드라마를 재밌다고 보는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의 폭력에 책임이 없고, 법만 개정하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방송법이 있어도 지키지않는 이런 무책임한 기성세대의 공범자들은 누구인가요.

셋째, 경찰과 학교 등 수사, 교육기관의 대응행태도 사고를 키우는 식입니다.

부산의 피해여중생은 이미 지난 6월에도 폭행을 당해 고소까지 한 상황이었지만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지않았고 2차 피해를 당하도록 방치한 셈이 됐습니다. 피해자 부모는 “이번 폭행이 두달 전 폭행 피해 고소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피해를 고소하고 적절한 조치와 보호요청을 경찰에 했지만 그 경찰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심지어 담당검사는 처벌이 어렵다며 피해자측에 용서와 합의를 종용했다고 합니다. 법적 처벌을 요구하는데, 검사가 직무유기를 하는 셈입니다. 피해학생이 검사 자식이라면 그렇게 대응했을까요.

학교는 사건만 터지만 쉬쉬하는데 급급합니다. 누구도 책임지려하지않고 교사들은 노력해봐야 좋은 소리도 못듣는 학교현실에서 교육자의 열정과 소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권이 떨어진 교육현장은 역설적으로 선의의 학생피해자들을 키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초동수사를 제대로 못하는 경찰, 용서하라는 식의 검찰, 쉬쉬하는 학교 사이에 아이들의 신음과 고통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넷째, 한국 사회는 개인의 인격권 존중보다 집단주의의 패거리문화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명예를 포함한 인격권은 법정에서나 존재하고 일상생활에서는 무시되기 쉽습니다. 혼자서는 나서기 힘든 폭력범죄도 4~5명 등 무리를 형성하면 무법천지가 됩니다. 한국인들이 서양에 영어를 배우러 가서도 혼자서는 모범적인 학생이 되지만 무리를 이루게 되면 집단의 힘을 이용해 흑인이나 동남아 출신 동료학생을 공공연하게 망신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무례하게 변한 한국인이 서양의 줄서기, 양보행위 등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자기존중에서부터 나온다는 생각은 하지않는 것 같습니다. 기분나쁘다고 예사로 경멸적인 욕설이나 폭력행사를 하는 것은 서양에서는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는 범죄행위로 간주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것은 비방죄나 경멸죄로 범법행위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일상은 폭력사회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다섯째, 가정교육이 무너져있고 학교교육도 입시위주로 인성을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가족은 있으나 가정교육이 사라졌습니다. 맞벌이 부부는 먹고살기 힘들다며 아이들에게 학원을 돌게하거나 방치하다시피합니다. 아이들은 오직 성적으로 평가받고 대학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점수 한 점이라도 더 받는데 혈안이 돼있습니다. 교사가 다른 교사를 통해 자녀의 내신성적을 조작할 정도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않는 현실이 됐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정당한 과정을 무시하고 자신의 보좌관을 공기업에 청탁하여 입사시키는 불법을 예사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가정교육이 무너진데다 사회정의는 실종됐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점수로 학생을 뽑는 대학, 유명대학에 나와야 사회주류에 편승할 수 있는 구조와 관행...현대인들은 무엇이 영악하게 살아가는 길인지 합법, 불법을 따지지않는 출세지향주의도 개탄하면서 또한 동참하고 있는 식입니다.

결론적으로, 폭력학생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전방위적처방과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고 기성세대의 반성과 가정교육의 회복이 절실하다는 것이지요. 아이는 어른의 거울입니다. 아이의 실패는 가정과 교육, 사회의 실패, 법과 제도의 실패로 우리의 근본적인 반성과 실질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