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정치 경력이 전혀 없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세력은 2015년 까지만 해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알트라이트(Alt-Right)’ 운동권이었다. 자신들을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라고 하는 이들이 사실상 극우 보수에 가까운 주장을 하며 전통적 공화당 지지자들과 차별화하면서 이렇다 할 기반이 없는 트럼프를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올려놓은 것은 미국의 전통적인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알트라이트를 키운 공은 트럼프가 아니라 극우 인터넷 언론으로 유명한 브라이트바트(breitbart.com)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다시 말해, 브라이트바트가 없었다면 지금 백악관 주인은 다른 사람이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 미국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이트'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 미국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이트'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시작

미국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16년에 이미 슬레이트(Slate)와 고커(Gawker) 같은 인기 뉴스 사이트/블로그의 트래픽을 추월했던 브라이트 바트는 올해 1월에는 미국 전체 웹사이트 중 트래픽 45위로, 47위의 폭스뉴스, 50위의 허핑턴포스트, 53위의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64위의 버즈피드를 눌렀고, 트럼프가 취임한 지 한 달 후인 2월에는 무려 29위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브라이트바트가 대선 운동 기간 이전부터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며, 처음부터 친(親)트럼프, 알트라이트 계열의 독자를 타깃으로 하지도 않았다.

설립된 지 이제 갓 10년이 된 브라이트바트는 어떻게 폭스뉴스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의 영향력을 잠재우고 (폭스뉴스는 선거운동이 진행되던 막판까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브라이트 바트 역사의 변곡점이 된 스티브 배넌의 등장을 살펴봐야 한다.

브라이트바트는 앤드루 브라이트바트(Andrew Breitbart)가 ‘브라이트바트 뉴스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설립했다. 그는 미국에서 기존 언론의 웹사이트를 벗어나 블로그 붐이 일던 2000년대 초에 블로그/뉴스 세계에 입문했다. 브라이트바트는 보수 논객이자 유명한 보수 뉴스 웹사이트 드러지리포트를 설립한 맷 드러지 밑에서 일하면서 보수 논객으로서의 이름을 키웠지만, 아리아나 허핑턴이 허핑턴포스트(현재는 허프포스트로 개명)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잠깐이나마 함께했을 만큼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와 가깝게 지냈고, 극우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초기 성장은 설립자 브라이트바트의 선동가적 기질과 뛰어난 탐사 취재의 산물이다. 지금은 작고한 뉴욕타임스의 미디어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카는 브라이트바트가 “주류 언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겨난 작은 픽셀들이 어떻게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게 되는지 근본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브라이트바트가 일반 독자에게 알려진 계기는 2008년 대선 당시 에이콘(ACORN)이라는 진보적인 지역 공동체 조직에 대한 폭로 기사였다. 저소득층 지원 활동을 하던 이 단체에서 변장한 보수단체 회원에게 탈세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을 몰래 찍어 폭로해서 결국 그 단체가 문을 닫게 한 것이다. 그 뒤로도 오바마 행정부의 농무부 장관이 백인에 대한 인종주의 발언을 하는 듯한 동영상을 공개해서 보수층의 분노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2011년에는 민주당의 떠오르는 스타(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최측근 비서의 남편인) 앤서니 위너의 ‘섹스팅’ 스캔들을 폭로해서 위너 하원의원을 추락시켰다.

하지만 에이콘이나 농무부 장관에 대한 폭로 기사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의 비디오 편집을 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 경향은 훗날 더욱 심각해져 브라이트바트 뉴스에 가짜 뉴스라는 오명을 안겨주었지만, 앤드루 브라이트바트가 사이트를 운영하던 시기까지만 해도 비판은 제한적이었다.

스티브 배넌과 극우 알트라이트

보수 진영의 새로운 뉴스 웹사이트 정도로 여겨지던 브라이트바트 뉴스가 탈바꿈하게 된 계기는 스티브 배넌이 전면에 나서면서부터다. 전직 해군장교이자 월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에 근무한 은행가, 그리고 할리우드의 투자자이기도 했던 배넌은 자신의 투철한 보수적인 정치관을 전파할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창립 멤버였는데 2012년 설립자 앤드루 브라이트바트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대표가 됐다.

그가 브라이트바트를 극우 성향의 젊은 남성들이 찾는 사이트로 바꿀 수 있었던 배경은 자못 흥미롭다. 배넌은 골드만삭스에서 나온 직후 대만에서 한 게임업체를 운영했다. 그런데 그가 운영한 회사는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라 게임업계에서 흔히 ‘황금 채굴’이라고 하는 업종으로, 중국의 젊은 게이머들을 고용한 뒤 게임을 통해 아이템을 획득하게 하고 그것을 다른 게이머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골드만삭스가 투자할 정도로 유망했던 사업이지만, 게임에 유리한 아이템을 정당한 실력이 아닌 돈으로 사고 판다는 사실이 게이머들 사이에 알려지고 집단적인 항의에 게임 회사들이 굴복하면서 배넌의 사업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전에는 목격하지 못했던 집단의 영향력을 발견했다. 즉 저소득층의 젊은 백인 남성들의 힘을 목격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반(反)페미니스트적이며 인종주의적인 성격을 보이는 그 집단은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만 신경 쓰는 공화당의 기축 세력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거에서 그 힘이 결집되어 나타난 적은 없었다. 배넌이 이들의 힘을 재확인한 것은 그가 브라이트바트를 이끌던 당시 마일로 이아노풀로스라는 테크 에디터를 고용하면서다.

이아노풀로스는 2014년 게임 산업 내의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둘러싼 게이머게이트(Gamergate) 논쟁이 일었을 때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로 포챈(4chan)이나 레딧(reddit) 같은 남성 중심의 포럼에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분노한 남성 게이머들의 트래픽을 브라이트바트 사이트로 끌어오는 역할을 했다.

2015년까지 이어진 게이머게이트 논쟁은 자연스럽게 젊은 백인 남성의 정치적인 담론으로 이어지면서 극우 성향의 알트라이트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를 당선시킨 알트라이트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배경이다.

브라이트바트가 새로운 오디언스를 찾아 빠르게 성장했지만, 극우적인 방향 전환에 모든 에디터가 찬성한 것은 아니다. 특히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브라이트바트 뉴스를 사실상 친트럼프 매체로 끌고 가면서 내부에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다. 선거운동 초기에 트럼프의 선거운동본부장이 브라이트바트 기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배넌은 기자의 편을 들지 않고 오히려 트럼프 선거운동본부장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고, 이에 반발해 벤 샤피로를 비롯한 초창기 기자들이 브라이트바트를 떠나기도 했다.

브라이트바트 뉴스를 동원해서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며 사실상 트럼프의 외곽 조직으로 만든 배넌은 결국 미국 대선이 클린턴 대 트럼프로 좁혀지면서 트럼프의 선거운동본부장으로 발탁되어 아예 정치권에 들어갔다(현재는 백악관에서 트럼프의 수석고문직을 맡고 있다). 이 모든 일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았고, 브라이트바트의 성공으로 이어진 셈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해줄 주류 언론사를 찾지 못한 알트라이트 세력에게 브라이트바트는 좋은 보금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특히 지난 10년 이상 미국 보수 언론의 대표로 여겨져온 폭스뉴스와의 정면 대결은 브라이트바트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2016년 공화당 경선 토론회를 주최한 폭스뉴스의 여성 진행자 메간 켈리에 대해 트럼프가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하자 폭스뉴스가 비판했는데, 트럼프 지지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서 폭스뉴스를 공격한 것이다. 물론 그 선두에는 브라이트바트 뉴스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꿋꿋하게 버티던 폭스뉴스도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친트럼프로 돌아섰고, 이는 트럼프 지지자들, 혹은 알트라이트 세력에게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이 굴복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 미국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이트'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 미국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이트'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트럼프 당선과 그 이후

브라이트바트의 영향력은 미국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2013년 런던에 사무실을 연 브라이트바트는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또 프랑스와 독일 진출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끊임없이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지지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브라이트바트의 인기와 영향력은 계속될까? 올해 초에 치솟았던 브라이트바트의 트래픽은 급격히 줄어들어서 지난 5월에는 281위로 떨어졌다. 지난 2월의 29위에 비하면 충격적인 하락이다(반면 워싱턴포스트 등의 진보적인 성향의 매체들은 상승세에 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트럼프의 인기 하락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배니티페어의 티나 은구옌은 브라이트바트의 인기 하락을 주류 정치권과 언론을 공격하는 것으로 성장해온 매체의 한계로 본다. 브라이트바트는 선제공격을 무기로 인기를 끌어온 매체인데,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로 그 역할은 반트럼프 진영에 속한 매체로 넘어갔다. 이제 브라이트바트는 트럼프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마다 옹호하는 논리를 펴야 하는 수세적인 자세로 바뀌었는데, 독자들은 그런 매체에 흥미를 쉽게 잃는다는 것이다.

물론 스티브 배넌의 브라이트바트가 끝까지 친트럼프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백악관에서 언제 배넌이 내팽개쳐 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배넌이 트럼프를 공격할지 그리고 만약 그랬을 경우 알트라이트는 브라이트바트 편에 설지, 트럼프 편에 남을지 역시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브라이트바트의 미래는 그래서 오리무중이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신문과방송> 2017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 언론재단의 양해를 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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