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는 내가 어떤 물건을 구입하는지 알고 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영화를 봤는지 알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은 어쩌면 내가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고 있는지까지도 알 수 있다. 이들이 서로 개인정보를 거래한다면? 개인에 대한 광범위한 감시가 가능하다.

소비자는 기업이 가져간, 또는 가져간 후 제3자에게 제공한 개인정보를 열람할 권한을 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사회단체가 6일 오후 발표한 개인정보 열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29곳 중 열람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기업은 소비자의 요청이 있으면 △보유 중인 개인정보 △이용자 개인정보를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이용자 동의 세부 내역 등 3가지를 제공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관련 자료는 10일 이내에 제공해야 하며 표준 개인정보보호 지침에 따라 기업은 개인정보 열람과 관련한 부서를 둬야 한다.

▲ 개인정보 열람 실태조사 결과.
▲ 개인정보 열람 실태조사 결과.

그러나 조사 대상 29개 기업 모두 관련 부서를 두지 않았다. 이용자에게 3가지 항목에 대해 열람할 권리가 있다고 제대로 설명한 업체는 메가박스, 롯데마트 2곳 뿐이었다. 쿠팡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용자가 개인정보 열람 권한이 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개인정보 이용 및 제공내역을 제대로 열람할 수 있는 기업은 2곳에 불과했다. 이용자 동의와 관련한 세부 내역을 열람할 수 있는 곳은 교보문고, 알라딘, 옥션, 예스24, 메가박스 등 5곳에 불과했다. SK텔레콤과 KT, LG U+는 개인정보 열람을 요청하자 본인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매장방문까지 요구하는 등 절차가 번거로웠다.

법에 규정된 답신 기한인 10일 내에 회신하지 않는 업체도 적지 않았다. SKT, KT, 롯데마트, 홈플러스, 카카오톡, T맵 등 6개 업체는 기준일을 초과해 답변했다. OK캐쉬백과 카카오내비는 기준일 이내에 답변을 준 경우도 있고 초과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롯데시네마는 끝까지 답변을 제공하지 않았으나 시민단체가 고발을 준비하는 시점에 개선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석현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한달이 넘어 답변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이용자들이 열람권을 요구할 때는 정말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기업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소비자에게 열람할 권한이 있다는 점을 기재하고 관련 사안 접수부서가 있어야 하며 정부는 실효적인 제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열람이 가능한 경우에도 업체마다 내용이 상이했고 부실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카카오내비는 위치정보 이용내역을 공개했지만 유사한 서비스인 T맵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해피포인트는 이용자가 실제로 포인트를 쓰고 있음에도 관련 내역이 없다고 답변했다.

▲ 메가박스의 회신 내용. 비교적 구체적이다.
▲ 메가박스의 회신 내용. 비교적 구체적이다.

KT, 카카오톡은 실제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 내역이 아니라 어떤 항목의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는지만 공개했다. 시민단체들은 “카카오톡은 쿠키, 접속로그, 서비스 이용기록, 불량이용기록, 단말기 정보 등 자동수집정보를 수집한다고 돼 있으나 실제 어떤 정보들이 기록돼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마트는 포인트 적립내역과 이메일 문자발송 내역 등 비교적 상세한 내역을 공개했다. 가장 구체적으로 정보를 공개한 메가박스는 회원활동로그, 자주 쓰는 카드, 포인트내역, 내가 본 영화의 시간과 제목 등을 엑셀파일로 보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클릭 한번 놓치지 않고 광고나 마케팅에 쓰는 시대”라며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제대로 공개해야 하고, 이 같은 내용을 규범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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