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MBC 기자(40·2001년 12월 입사)는 2012년 파업 이후 5년을 “벽만 보고 지냈던 시간”이라고 술회했다. 그는 이 시간이 “아까워 미치겠다”고 했다. 5년은 인사 고과 최하등급인 ‘R등급’을 피하기 위해 드라마 마케팅부에서 없던 일까지 억지로 만들며 허덕였던 세월이었다. 김 기자는 오직 ‘생존’만을 생각했다. 정말 잘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를 공포로 몰아넣은 이는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지시 혐의를 받는 김장겸 MBC 사장이었다. MBC 사장 김장겸이 자리를 옮겨가며 승승장구할 때마다 김 기자는 ‘잉여 인력’으로 취급된 채 경인지사, 보도전략부, 드라마 마케팅부,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구로)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2012년 파업 전 마감뉴스 ‘뉴스24’, 아침뉴스 ‘뉴스투데이’ 앵커였던 그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취재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재훈 MBC 기자(44·2001년 1월 입사)는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로 170일 파업 집행부였다. MBC에서 이 기자의 이동 경로 역시 경인지사→보도전략부→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신사업개발센터로 비제작부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 김수진 MBC 기자(왼쪽)와 이재훈 기자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김수진 MBC 기자(왼쪽)와 이재훈 기자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이른바 ‘유배지’는 폐쇄됐다. 보도·제작 부서를 떠나 있던 MBC 기자·PD 등 32명은 총파업에 돌입하기 직전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유배지 폐쇄 선언’을 했다. “그날 진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2012년 노조 집행부여서 무대 앞에서 앉아있는 조합원들을 바라볼 기회가 많았어요. 2017년 다시 그 자리에 섰는데 거짓말처럼 5년 전 얼굴들이 하나씩 다 보이는 거예요. 2012년에도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서 그렇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이재훈)

MBC 언론인들이 지난 4일 5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했다. 시민들의 지지, 파업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지, 정치적 환경 변화 등 언론인들의 승리를 예감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하지만 김 기자는 섣부른 낙관을 경계했다. “‘해볼 만하다’ 정도다. 단 하나 승산이 있다면 그건 ‘김장겸 사장’이다. 그는 너무 많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 우리 모두가 증거다. 또 많은 분들이 MBC 파업을 응원해주시고 있다.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승리는 장담할 수 없지만 해볼 만하다. 열심히 싸워야 끝낼 수 있다.”(김수진) 두 기자를 총파업 첫 날인 4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났다.

- 총파업 직전 ‘유배지 폐쇄 선언’을 했다. 많은 MBC 언론인들이 눈물을 보였다.

김수진(이하 김) : “당시 구로에 같이 있던 선후배 동료들과 ‘울지 말자’고 약속했다. 현장 집회 앞에 섰는데 안 울겠다던 동료들이 이근행 선배가 연설을 하자…. 앞에서 보는데 조합원들이 다 울고 있더라. 한동안 못 봤던 동료들의 눈물과 오열 때문에 울었다.”

이재훈(이하 이) : “저도 울긴 울었다.(웃음) 그날 진짜 울지 않으려고 했다. 2012년 노조 집행부여서 무대 앞에서 앉아있는 조합원들을 바라볼 기회가 많았다. 2017년 다시 그 자리에 섰는데 거짓말처럼 5년 전 얼굴들이 하나씩 다 보이더라. 2012년에도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서 그렇게 눈물이 나왔다.”

‘유배지 폐쇄 집회’에서 이근행 MBC PD는 “이익과 회유와 암담한 현실에 끝내 굴복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 자존을 지켜낸 인간 각자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 PD도 2010년 김재철 전 MBC 사장 퇴진 투쟁을 하다가 해고됐고 ‘특별채용’으로 복귀한 뒤에도 두 차례의 비제작부서 ‘유배’를 감내해야 했다. 이날 “저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라도 이길 수 있다면 가자. 그래도 안 되면 미련 없이 MBC를 떠나자”는 이 PD의 연설에 많은 MBC 언론인들은 눈물로 공감했다.

▲ 이재훈 MBC 기자(왼쪽)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2012년 파업 집행부로서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이 큰 듯했다. 김수진 기자는 2012년 파업 이후 5년을 “벽만 보고 지냈던 시간”이라고 술회했다. 그는 이 시간이 “아까워 미치겠다”고 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재훈 MBC 기자(왼쪽)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2012년 파업 집행부로서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이 큰 듯했다. 김수진 기자는 2012년 파업 이후 5년을 “벽만 보고 지냈던 시간”이라고 술회했다. 그는 이 시간이 “아까워 미치겠다”고 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고용노동부가 진행했던 MBC 특별근로감독 이야기를 하고 싶다. 김수진 기자는 지난 7월 근로감독관을 만난 뒤 페이스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처음 보는 근로감독관 앞에서 울었다”고 썼다. 고용부가 MBC 사태 해결에 의지가 있다고 보나?

김 : “감독관들이 ‘파업 직전에 무엇을 했느냐’고 많이 물었다. 어떤 이유로 비제작부서로 보복 인사를 당했는지 원인을 꼼꼼하게 살피는 모습이었다. 경인지사에 출퇴근할 때 왕복 3~4시간 걸렸다. 부서 배치 이후 회사와의 물리적 거리 등에 대해서도 감독관들은 부당한 대우로 판단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원했던 것 같다.”

이 : “비제작부서 현장에서 진술서를 받아갔다. 감독관들이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하던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도 진술서 쓰고 지장 찍고 그랬다. 정서적으로 어떠한 학대를 받았다는 것보다는 ‘출퇴근 시간이 어땠느냐’ ‘부서 이동 후 월급이 얼마나 깎였느냐’ 등 물리적 지표를 따졌던 것 같다.”

김 : “워낙 노조 활동에 대한 사측의 인사 보복 관련 조사를 많이 해서인지 감독관들은 상황을 바로 파악하더라. 그러면서도 ‘언론사에서 이렇게까지 하느냐’며 놀랐다. 구로 사무실 현장 조사를 나온 적이 있었다. 우리 사무실에는 복사기 한 대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들어와 캐비닛을 열어보더니 바로 ‘여기 일 안하는 곳이네요’라고 했다.”

이 : “(우리에게 했던) 멘트랑 똑같아.(웃음)”

김 : “책상만 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을 거다. 보면 안다. 생산을 하는 부서인지 수용소인지 바로 안다. 우리 사무실은 두 번이나 찾아왔었다. 그분들에 따르면 사기업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에 대한 집요한 보복 조치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거다. 내가 있던 곳에선 센터장이 한 바퀴 순시하며 출퇴근 체크를 했는데 감독관들은 그런 것 역시 일반 사업장에서 파업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모멸감 주기’와 다르지 않다고 파악했던 것 같다.”

▲ 2012년 파업 집행부였던 이재훈 MBC 기자의 부서 이동 경로는 경인지사→보도전략부→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신사업개발센터. 그는 오랜 시간 비제작부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2012년 파업 집행부였던 이재훈 MBC 기자의 부서 이동 경로는 경인지사→보도전략부→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신사업개발센터. 그는 오랜 시간 비제작부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두 사람은 오랫동안 MBC 보도국 밖에 있었다. 어느 시점에선 체념했을 것도 같다. 그랬다면 언제 그랬나? 다시 보도국으로 돌아가긴 힘들겠다는 체념이랄까?

김 :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사실 거짓말이지.”

이 : “양복에서 곰팡이를 발견했을 때? 방송 기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양복을 입는다. 그렇다보니 계절 별로 양복이 있다. 양복이 햇빛도 보고 바람도 맞으면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내 양복엔 그리 곰팡이가 슬더라. 그걸 닦아내는 것이 힘들고 유지비도 드니까 문득 ‘내가 이걸 입고 방송 기자로 복귀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다 처분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고민을 몇 년 동안 했는데 올해는 고민하지 않았다.(웃음)”

김 : “비제작부서에서 ‘생존’을 고민했다. 잘리지 않아야 한다는. (교양국이 폐지됐던) 2014년 10월 발령 났던 인사 면면을 보면 블랙리스트가 본격 작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가운데 보도본부에서 드라마 마케팅부로 간 기자는 나 혼자였다. 박근혜가 ‘노동 개혁’을 운운하며 쉬운 해고를 강조하던 때였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에 있는 듯했다. 당시 부장도 ‘나도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서 세칙에 ‘온라인 홍보 업무가 생겼으니 그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은 없었다. 잘릴 수 있다는 생각에 억지로 일을 만들어서 했다. 김장겸 사장이 임명된 후 첫 인사에서 지금 부서(구로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발령받았다.”

- 언제가 그렇게 힘들었나?

이 : “수진이에 비하면 R등급에 대한 압박은 없었다. 우리 부서에 워낙 출중한 선배들이 많으셔서.(웃음) 나는 적어도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있었다. 다만 동료를 바라볼 때가 매번 어려운 순간이었다. 2012년 파업 집행부였는데 좋은 결말이 아니었다. 수진이를 포함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고 MBC는 망가졌다. 파업 직후이자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년부터 무기력하게 지켜봤던 것 같다. 집에 불이 났는데 바로 앞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 : “그땐 조합도 힘이 빠져 있었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스스로 다짐했던 것은 치욕적인 상황만큼은 면하자는 거였다. 그런 다짐마저 무너졌던 것이 2014년 10월 인사였다. 파업 참여자들을 마치 핀셋으로 가려내듯 정교하게 비제작부서로 배치시켰다. 없던 부서를 만들어서 보냈으니까. 이번 3월 김 사장의 첫 인사 때도 무너졌다. 책상밖에 없었다. 드라마부서에 있을 땐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는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 김수진 MBC 기자가 밝게 웃는 모습. 김 기자는 비제작부서 생활 동안 생존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김장겸 MBC 사장이 승진할 수록 그는 보도국에서 멀어져만 갔다. 사진=김도연 기자
▲ 김수진 MBC 기자가 밝게 웃는 모습. 김 기자는 비제작부서 생활 동안 생존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김장겸 MBC 사장이 승진할 수록 그는 보도국에서 멀어져만 갔다. 사진=김도연 기자
- 촛불이 없었다면 MBC 정상화 요구가 크지 않았을 것 같은데?

김 : “지난해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됐지만 우리 회사가 확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부당노동행위는 계속 됐으니까. 촛불집회와 이어진 탄핵, 그리고 최근 ‘공범자들’을 통한 사회적 관심이 상황을 바꿨다.”

이 : “촛불 없이 정권이 바뀌었다면 지금 국면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구성원들도 적폐 가운데 하나로 분류돼 청산 대상에 올랐을 것이다. 다행히 소중한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 시민들 가운데 “5년 동안 뭐하다가 이제 싸우느냐”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 “비판하시는 게 당연하다. MBC 언론인들이 기대 받았던 것만큼 제대로 못 싸웠던 것은 사실이니까. 다만 2012년에 끝장을 봤다면 모두가 물갈이 됐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동력은 어려웠을 것 같다. 최악이 10이라면 6까지 낮추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6의 상황을 이해하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견디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비겁하다’는 비난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지난 4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MBC 구성원들은 김장겸 사장·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지난 4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MBC 구성원들은 김장겸 사장·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을 포함해 보수 진영에서 김 사장이 수사 받는 상황에 대해 ‘언론 자유 침해’ 프레임을 덧씌우고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김 : “전혀. 말도 안 된다. 정권에 대놓고 충성한 김장겸 사장과 안광한 전 사장 등은 명백히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 과거 정치부 생활 2년 동안 한나라당만 출입했다. 나를 아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은 내가 왜 이런 고초를 겪는 줄 안다. 2012년 파업 끝나고 보수정당의 유력한 한 인사는 내게 ‘고생 많다’ ‘파업 때문에 고초를 겪는 거다’라며 위로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정을 아는 분들이 지금 상황을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니까 어이가 없다. 정치인과 기자 관계가 필요에 따른 것이라도 너무 화가 난다.”

- 총파업에 임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이 : “우리가 탄압받고 있다는 소식이나 경영진의 전횡이 신문에 나오면 우리끼리 많이 돌려본다. 그럴 때마다 떠올랐던 생각은 ‘정말 기사 한 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라는 것이었다. 특히 사측으로부터 탄압받는 노동자들은 억울한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들의 어려움을 몰랐기 때문에 MBC조차 외면했던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우리 동료들은 지난 5년 동안 어려움을 겪으면서 언론이 너무나 절실한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다시 보도국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의 기사를 잘 다뤄야 한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우리가 직접,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면서 교묘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사측의 행태를 5년 동안 겪었기 때문에 그 절실함을 안다.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전파에 반영하는 게 우리 사명인 것 같다.”

- 지난 5년 가혹했던 경험이 MBC 언론인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뜻인가?

김 : “우리 목소리를 전달해준다는 것, 그렇게 사실을 다뤄주는 기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한두 명 생각이 아니다. MBC 구성원 대부분이 그렇다. ‘MBC 방송 노동자’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 잘 안다. 이재훈 선배가 말했듯, 언론의 관심을 못 받는 사회적 약자가 정말 많다. 15년차 기자이니 현장 취재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집회라도 그냥 지나치진 않을 거다. 잘 만들고 싶다.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각성한 상태다.”

이 : “우리가 경험한 각성의 약발은 20년 이상 갈 거다. 그렇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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