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는 “김장겸·고영주 퇴진을 위한 강력한 마지막 행동”을 선언했다. 하지만 MBC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이때만 해도 MBC정상화를 위한 파업동력이 남아있느냐는 물음에는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봄을 알리는 투쟁의 발화점은 6월2일 김민식 드라마PD의 페이스북 라이브였다.

“이런 일을 한다고 김장겸 사장님이 나갈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쓸 때도 출판이 될까 생각해본 적 없었다. 마찬가지로 저는 오늘부터 회사에 출근해 사장님을 위해 충심으로 말씀 드리고 싶다. 사장님이 나가시는 그날까지.” 김민식PD는 약 3분10초간의 라이브영상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이 샤우팅 장면은 서울 상암동 MBC사옥 내 한 가운데서 촬영됐다. 그는 며칠 뒤 대기발령을 받았다.

▲ 6월2일 김민식PD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김장겸은 물러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 6월2일 김민식PD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김장겸은 물러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MBC 경영진은 김민식PD 샤우팅 뒤인 6월7일 사내 인트라넷 ‘커뮤니케이션’란에 올라온 경영진 퇴진 관련 성명을 대거 삭제했다. 6월9일 상암동 MBC 1층 로비에서는 100여명이 넘는 MBC사원들이 모여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쳤다. ‘김민식 효과’였다. 김민식PD의 사연은 한겨레 토요판 인터뷰로 유명해졌고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등을 통해 확산되며 MBC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MBC아나운서 29명은 6월21일 기명성명을 내고 김 사장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MBC예능PD들은 6월22일 기명성명을 내고 “웃기는 건 예능PD 몫인데 회사가 정작 웃기는 짓은 다 한다”며 김 사장 퇴진을 촉구했다. 사내에서 성명을 내기 어려운 직군으로 분류되는 아나운서와 예능PD들마저 퇴진을 공식 요구하며 투쟁동력은 점차 올라갔다.

이런 가운데 6월29일 MBC에 노동경찰이 투입됐다. 고용노동부가 MBC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한 것. 이 무렵 미디어오늘·에스티아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공영방송 정상화 일환으로 특별근로감독은 바람직하다’는 여론이 58.3%였다. 앞서 MBC본부 노조가 “2012년 170일 파업참가를 이유로 이뤄진 부당징계가 지난 5월까지 71건에 이르고, 부당교육과 전보 배치된 사람이 187명에 이른다”며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한 결과였다.

김영주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은 MBC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엄정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효성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첫 번째 과제로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영방송의 공정성 하락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MBC문제는 사회현안으로 떠올랐다. MBC는 자사 메인뉴스를 통해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MBC경영진 퇴진 요구와 부당노동행위 비판을 “언론 탄압”으로 규정하고 비판했다.

▲ 총파업에 돌입한 MBC의 숨가빴던 지난 100일. 그 중심에는 김민식과 김장겸이 있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총파업에 돌입한 MBC의 숨가빴던 지난 100일. 그 중심에는 김민식과 김장겸이 있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본격적인 투쟁은 제작거부로 시작됐다. 지난 5년간 경영진으로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아온 프로그램인 <PD수첩>이 출발점이었다. 7월21일 <PD수첩> PD 10명이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PD수첩> 아이템 통제 실태 17건을 폭로하며 김장겸 사장과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등을 부당노동행위 등 혐의로 고소했다. 계약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작가들까지 제작거부에 동참했다. 8월3일 시사제작국 기자·PD가 제작거부에 돌입하며 사태는 확산됐다.

8월8일 카메라기자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 문건은 파업 동력에 불을 붙였다. 이 문건은 정치 성향과 노조와의 관계와 2012년 파업 참여 여부 등으로 기자들을 분류한 뒤 이들에게 등급을 매겨 각종 인사 평가와 인력 배치에 활용한, 부당노동행위를 증명하는 결정적 물증이었다. 당장 다음날인 8월9일 카메라기자 50명은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뒤이어 8월11일 보도국 취재기자 82명이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2012년 파업 이후 채용된 경력기자의 3분의1이 제작거부에 동참했다. 이 무렵 오정환 보도본부장이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결사항전’을 선언했지만 거대한 물결을 되돌릴 순 없었다.

▲ 8월22일 서울 상암동 앞 아나운서협회 기자회견 모습. ⓒ이치열 기자
▲ 8월22일 서울 상암동 앞 아나운서협회 기자회견 모습. ⓒ이치열 기자
8월14일 전국MBC기자회는 서울MBC로의 기사 송고를 거부했다. 8월16일, 노조는 방송문화진흥회 사장 면접 속기록을 폭로하며 경영진이 특정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을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8월17일 비보도국 소속 기자 66명이 업무 중단에 나섰고 편성PD 30명이 총파업을 결의했다. 8월18일에는 아나운서 27명이 업무 중단에 돌입했고, 드라마PD 50명이 총파업을 결의했다.

8월21일에는 예능PD 56명과 라디오PD 36명이 총파업에 결의하며 파업 열기가 전 부분으로 확대됐다. 이 무렵 MBC의 한 예능PD는 “예능·드라마PD들은 물론이고 MBC 구성원들이 이번에는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8월24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총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날 정재욱 MBC법무실장은 사표를 제출하고 ‘김장겸 호’ 난파선에서 탈출했다.

▲ 9월1일 방송의날 행사에 나타난 김장겸 MBC사장. ⓒ이치열 기자
▲ 9월1일 방송의날 행사에 나타난 김장겸 MBC사장. ⓒ이치열 기자

▲ 9월4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총파업 출정식. ⓒ이치열 기자
▲ 9월4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총파업 출정식. ⓒ이치열 기자
8월29일 93.2%라는 사상 최고의 찬성률로 파업이 가결됐고, 8월30일에는 MBC 보직간부 57명이 보직사퇴 성명을 냈다. 이들은 “기회주의자라는 안팎의 비난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더 이상 침묵할 수는 없다”고 운을 뗀 뒤 “MBC의 경쟁력은 바닥을 치고 있고 언론사로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 버린지는 이미 오래”라며 “(김 사장에게) 변화의 시대를 끌고 갈 리더십과 책임 있는 자세를 찾을 수 없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9월1일,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이 발부되던 그날, 63빌딩 아래에서 열린 집회현장에서 김민식PD는 춤을 췄다. 5년 전 뜨거운 여름날 170일간의 파업을 종료했던 이들은, 다시 뜨거운 태양 아래 총파업에 돌입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