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대주주 SBS미디어홀딩스 윤세영 회장(SBS 명예회장)이 SBS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박근혜 정부를 돕는 리포트를 하거나 협찬·광고영업을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SBS본부, 본부장 윤창현)는 5일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보도지침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각종 문건과 증언을 통해 제기했다. 특히 윤 회장이 지난 2015년 초 경영일선에 복귀한 뒤 보도지침이 노골적으로 내려왔다는 내용도 폭로했다. SBS본부는 SBS 정상화를 위해 최근 출범한 ‘이명박-박근혜 정권기간 방송사유화 실태조사 특별위원회(사특위)’를 통해 수집한 방송사유화 사례를 폭로하고 있다.

SBS본부는 윤 회장이 보도본부 부장 이상 보직자 전원을 소집한 오찬 자리 등을 통해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지 말라’는 취지의 보도지침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질 때까지 거듭 지시했다고 복수의 참석자에게 확인한 사실을 공개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윤 회장의 지시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이를 메모해놨다고 했다.

해당 메모에 따르면 지난해 4월4일 보도본부 부장단 오찬 자리에서 윤 회장은 “대통령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를 좀 도와줘야 한다”며 “나는 이런 말을 해도 된다”고 했다. 같은해 9월 보도본부 일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윤 회장은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며 “혜택을 받았다”고 말한 사실도 있다고 SBS본부는 전했다.

SBS본부는 지난해 10월10일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박근혜 정권을 도우라”는 내용의 ‘보도지침’을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SBS 뉴스 혁신”이란 제목의 ‘보도지침’에는 ‘보도의 공유 가치’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며, 심각한 안보환경을 직시하고 여론을 선도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SBS본부는 “박근혜 정권이 정치적 반대 세력이나 비판적 시민 사회, 노동운동 진영을 ‘종북 좌파’로 여론몰이하는 과정에서 단골로 동원했던 개념들과 일맥상통한다”고 비판했다.

해당 문서에는 “SBS 생존과 발전에 보도본부도 주역이 돼야 한다”며 “모든 부서에서 협찬과 정부 광고 유치에 적극 나서라”는 광고 영업 지시내용까지 있었다.

또한 SBS 8뉴스가 인기를 얻은 요인 중 하나인 클로징 멘트에 대한 언급도 있다. “클로징과 앵커멘트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며 제시한 행동규칙에는 “잘 모르면서 시니컬한 클로징을 하는 것은 비신사적 행위”라고 돼 있었다.

SBS본부에 따르면 비서팀은 이후 이 문서가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민감한 부분을 삭제하고 일부 표현을 바꾼 수정된 보도지침을 배포했다.

SBS본부는 윤 회장이 경영에 공개적으로 복귀한 직후인 지난 2015년 1월1일부터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태블릿 PC보도가 나온 지난해 10월24일까지 ‘8뉴스’ 보도를 전수 조사했다. 조사 결과 662일간 총 532건의 박근혜 청와대 관련 보도가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SBS본부는 “기사에 청와대 관련 비판은 실종됐고 단순동정 보도와 일방적인 박근혜 입장 전달로 점철됐다”며 “거의 매일 1꼭지 이상씩 ‘땡박뉴스’를 쏟아냈음이 통계적으로 입증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SBS 보도화면 갈무리
▲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SBS 보도화면 갈무리

SBS본부는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타결 당시 ‘8뉴스’ 보도가 윤 회장 지시로 박근혜 정부 띄워주기로 일관됐다는 복수의 증언도 확인했다고 전했다. 당시 다수 정치부 기자가 윗선에 항의하자 정치부장이 “윤 회장이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로 ‘합의가 잘 된 것 아니냐’며 보도 방향을 지시했고, 보도국장이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해설성 리포트 제작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고 털어놨다는 내용이다.

실제 SBS는 이날 위안부 관련 뉴스를 9꼭지나 다뤘다. 톱기사 제목은 “위안부 타결..한일관계 새 돌파구 열었다”로 박근혜 정부의 합의를 옹호하는 논조의 기사였고, 9번째 기사 “새 출발하는 한일..더 큰 미래 열자”에서도 박근혜 정부를 칭찬하는 논조의 해설성 뉴스를 내보냈다.

SBS본부에 따르면 윤 회장은 종합편성채널의 근거인 ‘미디어법’ 개정 과정에서도 보도지침을 내렸다. 윤 회장이 당시 직원 조회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미디어법 (개정)은 SBS에도 산업적으로 도움이 된다며 반대하지 말라”고 강변했고 당시 사장 등 경영진도 이런 지침을 수용해 정부와 노골적인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고 SBS본부는 전했다. 정부 입장을 적극 옹호하며 민영방송 대주주 지분 제한을 30%에서 40%로 올리는 법률개정안 로비에 힘썼다고도 했다. 윤 회장이 사익 추구를 위해 SBS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게 SBS본부의 비판이다.

이에 SBS기자협회는 “4대강 사업, 한일 위안부 합의, 최순실 국정농단 등 주요 국면 때마다 SBS뉴스가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기만 했던 배경에는 대주주의 보도지침이 있었다”며 “보도의 독립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SBS기자협회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는 정권 찬양 보도, 하루가 멀다하고 전파를 탄 대통령 동정 보도의 대가를 시청자들은 ‘SBS 뉴스 외면’이라는 당연한 결과로 되돌려줬다”며 “시청자들도 납득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뉴스를 억지로 만들어온 대가를 우리는 현장에서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4대강 비판보도를 한 박수택 기자를 윤 회장이 독대한 것과 관련 SBS기자협회는 “보도국 기자들이 취재하고 논쟁한 내용을 가지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할 편집회의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토론하고 싶었다는 선의라 해도 만남 자체가 부적절한데, 정권을 도우라는 보도지침이 수차례 내려왔다는 사실까지 마주하고 나니 그 의도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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