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쓰는 글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쓰지 않을 테니 읽어주세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MBC는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해야만 했던, 해야만 하는 싸움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지만 두 손 모아 빕니다.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MBC의 오명을 벗고 살신성인 보도를 하던 옛 MBC 명성을 되찾기를요.

“누구인데 MBC 파업을 말하냐”고요. 저는 부산 MBC 정(갑을 병정), 이도은 리포터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요. 라디오 들으신 적 있으시면 아실 텐데요. 교통정보와 생활 정보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어느 도로가 밀리는지, 어떤 축제나 행사가 볼만한 것인지, 우리의 이웃은 누가 있는지 등등. 그 내용은 리포터들이 직접. 그리고 혼자. 아이템 탐색, 섭외 요청, 취재 및 인터뷰 진행, 기획, 기술적인 편집, 원고작성, 방송 출연까지 한 결과입니다.

리포터들은 이를 두고 우스갯소리로 ‘1인 미디어 기업’이라 합니다. 시사부터 문화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는데 PD, 작가, 엔지니어, 아나운서 때로는 기자 역할까지 하니까요. 아주 적은 임금을 받고 말이죠.

“왜 저임금을 받는 그 길을 갔냐. 안 가면 되지” 라고 물으실 수도 있겠네요. 학창시절 방송과 언론이라는 꿈을 품을 때부터 이러한 사실을 대략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택했고 아직도 소중하게 그 꿈을 품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이 일을 사랑하고 동경하고 다른 길을 택하더라도 그리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마음 변함없는 이유는 제가 만난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도은 리포터는 매일 저 비석을 보며 좋은 방송인이 되겠노라 다짐하며 출퇴근했다. 그리고 그는 MBC가 그리고 부산 MBC가 창사 이념 비에 적힌 대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사진=이도은 리포터
▲ 이도은 리포터는 매일 저 비석을 보며 좋은 방송인이 되겠노라 다짐하며 출퇴근했다. 그리고 그는 MBC가 그리고 부산 MBC가 창사 이념 비에 적힌 대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사진=이도은 리포터


한낱 리포터인 제가.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방송한다고 해서 그들의 방송 이후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위안이 됐나 봐요. 방송국에서, 리포터가, 자신들을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요. 저보다 훨씬 나이 많으신 분들도 제가 뭐라고 “고맙습니다.” 두 손 잡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제 임금을 못 본 체 하고 찾아갑니다. 오늘 만난 이보다 더 힘든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요. 비록 방송국의 ‘정’이지만 저란 존재를 반가워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정’의 자리가 좋았습니다. 어제까지만요.

MBC 파업으로 부산 MBC도 방송을 중단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방송이 계속 나오죠? 그 자리를 프리랜서들이 채우기 때문입니다. 저는 프리랜서 소속이라 MBC파업에 참가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것까지는 견딜만합니다. 저는 정규직이 아니니까요. 정말 참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방송’이 파업에도, MBC에도, 싸우고 있는 정규직들에도, 시민들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방송이 중단되고 시민들의 여론이 뜨거워져야 MBC 고위직들이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니까요. 그래야 진짜 방송해야 하는 가치를 MBC가 기획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알면서도 프리랜서들은 방송해야 합니다. 마치 프리랜서들은 MBC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정규직들을 괴롭히는 ‘적군’ 같네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 올바른 가치를 볼 줄 아는 언론인이 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는데. 제가 가진 신분이 저를, 정당한 것을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연대력을 상쇄시키는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힘든 노동 환경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MBC의 ‘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당한 것을 바로 잡기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힘 빠지게 하도록 반강제적으로, 타의에 의해서 일해야 하는 이 상황에 부닥친 제가. 리포터가. 프리랜서가 MBC의 ‘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파업이 성공한 후 이 ‘정’들 보고 손가락질하지 말아 주세요. 갑의 횡포를 돕기 위해 입사한 것이 아닙니다.

MBC 파업에 힘이 못 될망정 사표 안 던지고 뭐 하냐는 질책에 대한 값은 ‘권력에 빌붙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대신 치르겠습니다. 옳은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사는 제 삶, 미래에 걸어 두겠습니다. 오늘의 이 감정과 생각들을 잊지 않고 훗날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거든 ‘정’들의 산증인이 되어 주겠습니다. 시민들에게만 복종한다는 그 마음을 더 크게 펼칠 기회가 오거든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글은 제 무덤을 파는 글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으로 썼습니다. 이 글을 썼다는 이유로 어떤 대가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있다 하더라도 제 생각을, 신념을 굽히면서까지 기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저보다 잃을 게 더 많은 분들이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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