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16일 MBC는 ‘이석수 특별감찰관, 감찰 상황 누설 정황 포착’ 리포트에서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감찰 진행상황을 누설해온 정황을 담은 SNS가 입수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특정 언론사는 조선일보였다. 청와대는 MBC 보도 3일 뒤 이 사건을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 규정했고, 우병우 문제는 문건 유출 사태로 전환됐다. 조선일보는 ‘부패 기득권세력’으로 불리며 청와대와 갈라서게 됐다.

조선일보는 MBC 보도에 격분했다. 8월19일자 사설에서 “감찰 정보 누설로 보는 것은 억지다. 훨씬 중요한 것은 기자의 취재 메모가 어떤 경로로 MBC 등 언론에 유출됐느냐는 점”이라며 MBC를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MBC 시사제작국장 출신 정연국이었다.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취재에 참여했던 조선일보 한 기자는 “MBC보도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웃기다. MBC 보도대로라면 앞으로 MBC는 공개 브리핑에서 불러주는 내용 말고는 아무것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당시 MBC 보도가 노골적으로 청와대 입장을 대변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조선일보 기자는 MBC경영진을 향해 “보수정권이 천년만년 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나중에 어쩌려고…”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 보도 당시 보도본부장이 지금의 김장겸 MBC 사장이다. 그런데 9월2일자 조선일보 지면에선 1년 전 자신들을 벼랑으로 몰았던 MBC경영진을 옹호하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벌어졌다.

▲ 조선일보 9월2일자 사설.
▲ 조선일보 9월2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지금 법원과 검찰이 정상이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발부한 검찰과 법원을 두고 ‘민노총 세상이 온 것을 알고 영합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했다. 이 사설에 관여한 조선일보 간부들은 지난해 MBC 보도로 인해 부당한 압수수색을 당했던 조선일보 후배 기자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조선일보가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다면 MBC경영진의 잘못을 감싸줄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스스로도 입장이 궁색했던지 ‘내로남불’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9년 전 정연주 사태를 끄집어냈다. <KBS 정연주 해임 땐…野였던 민주당·진보진영 “방송장악 쿠데타”>란 기사에서 이 신문은 “김 사장 체포영장 발부는 정연주 KBS 사장 해임 논란의 판박이”라며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정 사장 해임을 쿠데타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로 몰아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언론운동진영과 야당이 정 사장 사퇴 압박이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고 비판했는데 지금 김 사장 사퇴를 요구하는 모습은 이율배반적이라는 게 기사의 취지였다.

그런데 정연주 사태와 김장겸 사태는 ‘판박이’가 아니다. 2003년 4월 KBS사장에 취임해 2006년 11월 재임명된 정연주 사장은 2008년 8월 갑작스럽게 해임된 후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정 사장은 감사원 특별감사→국세청 세무조사→KBS사장 해임→검찰 기소로 쫓겨났는데, 당시 검찰은 정 사장이 세무당국을 상대로 한 KBS의 법인세 환급 소송 과정에서 1890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1심에서 2450억 원의 법인세를 환급받는 승소판결을 받았는데 2심에서 560억 원만 환급받고 소송을 취하하는 법원 조정안에 합의한 점이 배임이라는 것. 하지만 법원은 KBS 세무소송과정에서 조정은 법원 관여 하에 합의로 종결시킨 것이어서 일방에게 배임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결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정 사장은 부당 해임됐다.

▲ 지난 1일 방송의 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김장겸 MBC사장(왼쪽)의 모습. ⓒ이치열 기자
▲ 지난 1일 방송의 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김장겸 MBC사장(왼쪽)의 모습. ⓒ이치열 기자
김장겸 사장은 어떤가. 그의 주요 혐의는 부당노동행위다. 김재철-안광한-김장겸 MBC경영진은 나치가 유대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2012년 170일 파업에 참여한 사원들을 철저하게 제작부서에서 배제하고 저성과자 낙인을 찍었으며 부당전보를 일삼았다. 심지어 법원이 부당전보를 인정하면 원직 복귀 시킨 뒤 다시 부당전보를 하며 사법부를 무시한 적도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MBC에서 파업 이후 징계·대기발령·교육발령·무관부서 전보 등 부당한 인사관리를 경험한 조합원은 165명이었고 이 중 91명은 여전히 본업에서 제외됐다.

최근 드러난 사내 ‘블랙리스트’ 문건과 지난 2월 MBC 사장면접 속기록은 이 같은 인사관리가 조직적으로 진행된 증거였다. 이것은 배임과 비교할 수 없는 중대범죄다. 안광한 전 사장마저 이 같은 부당노동행위와 관련, 출석에 응해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 중대범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김 사장은 고용노동부의 반복되는 출석요구에 반복적으로 불응했다.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것은 법질서 수호인가, 아님 언론자유 탄압인가. 이런 사람의 체포영장을 두고 ‘언론탄압’ 운운하다가는 일등신문 조선일보도 ‘김장겸 급’으로 묶일 수 있다.

MBC경영진은 1일 공식입장을 내고 “현직 언론사 사장을 강제 체포하는 경우는 국제적으로 드문 사례”라고 주장했는데, 이건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국제적으로 드문 사례가 벌어진 이유는 MBC가 지난 5년간 국제적으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노동탄압을 공영방송사에서 자행해왔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자사를 비판하는 언론사를 상대로 무차별 민·형사소송을 벌인 사실도 학자들이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국제적 연구 대상이다.

▲ 9월1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 9월1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 9월1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의 브리핑 모습.
▲ 9월1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의 브리핑 모습.
MBC경영진은 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을 앞두고 “노조의 쟁의 행위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불일치가 있을 때 가능하다”며 “경영진 퇴진을 목적으로 하는 파업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는데, 방송사 쟁의행위에서 공정방송이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자꾸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앞서 박근혜정부에서 제기한 MBC해직언론인들의 징계무효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공정방송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며 최승호 등 6명의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의 결과가 아니라 제작과정에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 아래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며 방송의 공정성이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자유한국당. 아무리 본인들 입맛에 맞는 방송사가 MBC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KBS 보도국장에게 “극적으로 한 번 만 도와 달라”며 읍소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청산하지도 못한 채 정당한 체포영장 발부를 두고 “언론 파괴 공작” 운운하는 건 불의한 대통령을 끌어내린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다. 더욱이 2013년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식 보도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를 멈춰놓은 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 아니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이번 사태를 두고 “검찰과 법원이 정권의 앞잡이로 전락했다”고 말하는 건 난센스다. 일단 대변인부터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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