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영화 ‘택시운전사’에는 ‘알 권리’ 책무를 지키지 못한 언론에 대한 날선 비판이 담겨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 보도한 언론에 대한 책망이 그것이다. 광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한 국내언론에 대한 비난은, ‘내륙의 외딴 섬’ 광주에 잠입 취재한 독일의 고 위르겐 힌츠피터 기자에 대한 환호로 환치된다. 그로부터 37년이 흐른 시점에서 또 다른 영화 ‘공범자들’이 당시의 언론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꼼꼼하게 기록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과정은 광주항쟁 당시 신군부의 언론통제 상황과 빼닮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직접적이고 강압적인 폭력이 간접적인 저강도 전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폭압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민주화의 성과라면 위안이 될까. 전두환 신군부의 검열지침은 권력의 대리인인 경영진에 의해 치밀하게 실행됐다. 폭압적 언론인 강제해직은 기자와 PD 해고나 부당전보로 대체됐다. 촛불항쟁 과정에서 ‘기레기’로 불리며 따돌림받던 공영방송 기자들은 광주시민에 붙잡혀 격리됐던 기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공영방송을 향한 시청자들의 눈총과 외면은 광주MBC 건물을 휩싸고 타오르던 불길을 연상시킨다.

‘보도불가/시위자들의 협상요구 사항. 시위자들이 탈취한 무기장비 회수 또는 피해복구 사항의 개별취재 내용. 인명피해 사상자 처리에 관한 개별취재내용, 단 계엄당국에서 발표한 것은 제외. 보도가능/시위자들의 방화 약탈 살상 검거선동 등 사실보도. 시위자들의 자수, 안전회복 권유 관련사항’ 1980년 5월24일자 계엄사의 검열지침이다. (김성수 전 한국일보 기자의 사진 기록) 계엄사는 광주항쟁이 발발한 지 사흘뒤에야 보도를 허용했다. 그것도 시민군을 폭도나 난동자로 몰아 방화 살상 등 어두운 사실만 쓰도록 강요했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그래서일까. 힌츠페터 기자를 광주까지 데려간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언론보도만 믿는다. 시위학생들을 나무래고 광주의 상황은 전혀 모른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상을 확인한 그는 군대가 어떻게 국민을 향해 총을 난사할 수 있는지 울분을 터뜨린다. 아마도 힌츠페터 기자가 아니었더라면 광주학살의 진상은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는 어렵사리 학살장면을 담은 영상을 숨겨가 방송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광주의 진실은 전세계에 알려졌다. 오랫동안 한국인만 몰랐다. 검열지침은 이후 보도지침으로 바뀌어 전두환 정권 내내 언론사에 하달됐다.

‘공범자들’은 정권의 낙하산 사장에 반발해 파업했다가 해고되거나 중징계 처분을 받은 언론인들의 수난사를 담았다. 경영진은 국정원 댓글사건이나 국정교과서 및 건국절 논란 등 정권에 불리한 내용은 방송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세월호참사는 금기어였다. 정권에 비판적 내용은 아예 전파를 타지 못한 것이다. 이에 반발하는 언론인들은 스케이트장 관리원 등으로 유배됐다. 특정인의 방송출연을 금지시키는 블랙리스트도 등장했다. 정권홍보를 위한 대리인을 자처한 것이다. 이들이 바로 방송장악의 공범자들인 셈이다.

1987년 6월항쟁 직후 언론계도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유신독재 이후 ‘제도언론’이라는 오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땡전뉴스’와 보도지침 폭로가 제도언론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언론인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에 나섰다. 신뢰를 되찾기 위해 마이크를 놓았다. 수많은 언론인들이 해고되거나 투옥됐다.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공영방송은 신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정부 들어 방송장악이 노골화하면서 독립과 공공성이 무너졌다.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불과 몇년만의 일이다. 급기야 국민은 공영방송을 외면했다.

▲ 8월31일 오전 KBS 아나운서 20명이 MBC 사옥을 방문해 MBC 아나운서들과 연대의 뜻을 밝혔다. 사진=정철운 기자
▲ 8월31일 오전 KBS 아나운서 20명이 MBC 사옥을 방문해 MBC 아나운서들과 연대의 뜻을 밝혔다. 사진=정철운 기자
KBS와 MBC, 두 공영방송 노조가 9월 초 동시 총파업에 나선다. 사장과 이사장의 퇴진 등 방송적폐 청산을 내걸었다. 일부 기자와 PD는 이미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간부들의 보직사퇴도 줄을 이었다. 경영진의 프로그램 ‘사전검열’도 잇달아 폭로됐다. 이들의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는 어느때보다 견고하다. 90%를 넘는 역대 최고의 파업찬성률이 반증한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만 않다. “정권도 나쁘지만 그렇게 장악당한 언론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언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은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이다. 정치권력이 입맛에 맞춰 공영방송을 농단하지 못하게 하려면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방송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정부 의지와 철학이 더 중요하다. 문대통령의 다짐이기도 하다. 이제 파업에 나선 언론인들에게 힘을 보태야 할 때이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공영방송의 독립과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책무는 국민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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