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겸 제31대 MBC 사장도 기자 초년병 시절 부당한 권력을 비판한 적이 있다. 비록 지금은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쫓겨나기 직전에 ‘알박기한 사장’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미디어오늘은 김 사장이 1988년 12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에서 쓴 석사논문 ‘집권자의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언론의 역할-제5공화국·서울신문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중심으로-’에서 그도 한때 기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년차였던 당시 김장겸 기자(1987년 입사, 이하 김장겸)는 75쪽에 달하는 논문에서 전두환 정권과 이를 미화한 언론을 비판했다.

▲ 김장겸 1988년 12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석사논문 ‘집권자의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언론의 역할-제5공화국·서울신문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중심으로-’ 표지.
▲ 김장겸 1988년 12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석사논문 ‘집권자의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언론의 역할-제5공화국·서울신문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중심으로-’ 표지.

김장겸은 “제5공화국 출범기에 전두환씨 관련 서울신문 기사를 분석해 당시 지배권력이 전씨를 어떤 이미지의 인물로 구축하려 했는가 살펴보고 이에 따른 이데올로기를 파악하겠다”며 “우리 사회에서의 정치권력과 언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우리 언론사에 있어 가장 암울했던 시기의 언론 실태를 드러냄으로써 앞으로 반성의 기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해당 논문의 분석 대상은 “전두환이 본격적으로 실권을 장악한 시기인 1980년 5월1일부터 그가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81년 3월31일까지 서울신문 전두환씨 관련 기사 전부”였다. 서울신문을 대상으로 한 이유에 대해선 “관보적 성격인 서울신문이 논자(김장겸)가 파악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특징을 분명히 드러내기”때문이라고 했다.

김장겸은 서울신문이 전두환 집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개혁이 무조건 좋다는 식의 인식을 독자들에게 반복 주입 했고, 개혁이 실재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도록” 했으며 “(전두환 일당이) 집권 방법의 불법성·비민주성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외국의 권위나 역사, 미신적 권위 등에 의존하거나 서민풍을 강조하는 등 ‘추상적 권위’에 의존했다”고 평가했다.

김장겸은 “언어는 미술성을 가지고 있다”며 서울신문이 전두환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즉 각종 미화 표현을 모니터링했다.

“새시대의 문은 열었다.”(80년 8월5일자)
“새시대를 여는 새지도자 전두환 장군”(80년 8월19일자)
“사회개혁의 대역사, 지금은 상식회복의 원년, 의식혁명과 정의구현”(80년 8월5일자)
“개혁의 전환기에 유일한 선택”(80년 8월9일자)

이에 김장겸은 “전두환씨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박정희 정권의 부패한 이미지와는 다름을 주입시키려는 의도”라며 “‘사회개혁, 정의구현’ 등 용어를 상용함으로써 마치 우리사회의 큰 변혁과 혁신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김장겸은 겉으로 드러나는 미화 표현 뿐 아니라 “문장 표현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내용이전에 받아들여야 하는 요소”인 ‘전제’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그는 전제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표현보다 설득적”이라고 했다.

“하느님이 민족위해 예비해 두었던 지도자”(80년 8월19일자)
“합천은 숱한 의사 배출…나라가 어려울 때 신명을 바친다는 이 고장 사람들의 기질을 우리는 바로 장군에게서 엿볼 수 있다”(80년 8월23일자)

김장겸은 “가만히 읽어보면 (전두환의 고향인) 합천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영웅을 탄생하게 했다는 내용”이라며 “이것은 전두환씨가 빼어난 시대적 영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곧 전두환씨가 영웅적인 인재임을 은연 중 당연시하게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잘못된 인과관계를 통해 전두환을 미화한 부분도 짚어냈다.

“점퍼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낫으로 벼를 베던 전 대통령은 (중략) 농구도 중공을 이기고 축구도 북한에 이기는 등 요새 국제대회에서 운동경기를 이기는 걸 보니 나라 운이 트인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80년 9월30일)

김장겸은 “이 같은 보도는 전씨 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수사 기법이 담겨있다”며 “스포츠 등에 국민적 관심을 돌리려는 권력의 의도도 단편적이나마 파악된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런 인위적인 인과관계에 대해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김장겸은 ‘서민적인 모습’, ‘포용력이 크고 온유한 성격의 소유자’ 등으로 전두환의 인격을 미화하거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지도자로 보도한 부분, 반공주의로 쿠데타를 정당화한 부분 등을 찾아 상세히 기록했다. 김장겸은 일부 미화 표현에 대해 “아마 고대설화집이나 김일성의 우상화 놀음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김장겸은 논문 끝부분에서 서울신문 기사만 연구대상으로 했고, 5공 출범 시기로 기간을 국한한 점을 연구의 한계라고 밝혔다. 또한 보도 내용을 검토해 생산자(언론인)의 의도를 역으로 추론해보자 했지만 실제 언론사의 관행이나 실제 동기, 이 시기 언론 통제 방법 등 구체적 조건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다는 점도 한계라고 밝혔다.

대학원생 김장겸이 현장으로 돌아온 지 30년이 흘렀다. MBC 다수 구성원들은 그의 고속 승진과 MBC 붕괴가 궤를 같이 한다고 평가한다.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1년 2월 정치부장에 오른 김장겸은 18대 대선(2012년 12월) 당시 MBC 정치뉴스를 진두지휘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정리한 ‘2008-2017 왜곡 편파보도 백서’에 따르면 18대 대선 주요 이슈였던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국면에서도 MBC의 경우 박근혜 후보 보도량이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보도량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MBC는 “단일화 협상이 파행을 빚고 있다”(2012년 11월15일자) 등 야권을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박근혜 후보에 대해선 농업인을 만나거나, ‘말춤’추는 모습을 다루는 등 민생행보를 앞세웠다.

▲ 2012년 대선 직전 MBC는 박근혜 후보 보도를 문재인, 안철수 등 야권 후보보다 많이 했다. 자료=민언련
▲ 2012년 대선 직전 MBC는 박근혜 후보 보도를 문재인, 안철수 등 야권 후보보다 많이 했다. 자료=민언련

MBC의 이런 보도행태는 김장겸이 석사논문에서 지적했던 점이다. 그는 구조주의 비판이론가 알튀세르의 주장을 인용해 “매체가 사회 내의 ‘힘의 관계’ ‘지배의 논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한, 매체는 정치·사회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복잡한 세상의 일을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것’ ‘아는 것’으로 가꿔준다”(3쪽)고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혜가 당선됐다. ‘지배의 논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노력한 대가였을까. 김장겸은 2013년 5월 보도국장, 2015년 2월 보도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지금은 MBC사장이 됐다.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자발적이고 수동적으로 지배에 복종하도록 하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도록 스스로의 헤게모니를 행사해 지배계급의 정통성을 확보한다.”(논문 4쪽)

김장겸은 자신이 전두환을 미화한 서울신문을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알튀세르의 이런 지적을 오히려 충실히 이행했다. 한겨레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을 보도하고 국회에서 관련 의혹이 제기된 지난해 9월20일 MBC는 최순실이나 우병우 관련 리포트를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후 촛불·탄핵 국면에서 MBC는 탄핵 반대 세력의 찬사를 받았고, MBC 구성원들은 최순실 관련 무보도 및 왜곡 보도를 ‘보도참사’로 규정했다.

2017년 2월 사장이 된 김장겸은 지난 23일 MBC 확대간부회의에서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방식에 밀려 저를 비롯한 경영진이 퇴진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맞섰다. 그는 자신에 대한 퇴진요구를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 의한 ‘방송장악’ 시도이자 “합법적으로 선임된 경영진을 억지로 몰아내려는 것”으로 규정했다.

다시 김장겸의 석사논문 일부를 보자.

“만일 권력자에 대해 피지배자들 대부분이 아무런 정통성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으로 밖에 의식하지 않게 됐다면 그 권력은 외관상으로는 아무리 강대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실제로는 허약한 것이다.”(논문 7쪽)

MBC 사장 김장겸은 30년 전 대학원생 김장겸의 논문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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