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을 끌어온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이 노동자 측 승리로 끝나면서 다른 사업장 통상임금 사건 승소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노동계는 사측의  주요논리였던 ‘경영상 위기’ 주장 기각이 유의미하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오전 열린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사건 재판에서 “상여금과 중식대는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며 “기아자동차는 원고에게 미지급 수당 약 4223억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제공 : 기아자동차지부 사내하청분회
▲ 기아자동차 노동자들. 사진=기아자동차지부 사내하청분회

기아차 노동자 2만7424명은 2011년, 2014년 두 번에 걸쳐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총 6588억 원(이자 4338억 원은 별개)을 청구하는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2011년엔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2014년엔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총 6여 년 동안의 추가수당 미지급분을 청구했다. 통상임금을 산정하는 기준에 상여금·일비·중식대가 빠졌으니, 이를 포함한 통상임금으로 각종 추가 수당을 재산정해 차액을 지급하라는 취지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을 산정하는 기준값이다.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하도록 했다. A 기업의 통상임금이 시간당 1만 원이면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은 1만5천 원이 되는 식이다. 통상임금은 어떻게 산정되느냐에 따라 인건비 규모가 달라지기에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이다.

재판부가 노동자 측 주장을 대폭 수용하면서 산정한 값이 4223억 원(원금 3126억 원과 지연이자 1097억 원을 더한 값)이다. 재판부는 원고 주장에서 중식대와 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포함시켰고 일비(출장비 등)는 고정성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약정 야간근로 등 일부 근로시간도 계산에서 제외했고 휴일근로와 연장근로가 중복되는 휴일연장근로에 대한 ‘연장근로 가산수당’ 및 특근 수당 추가 청구도 제외했다.

“신의칙 위반” 엄격한 해석 기준 만들어

노동계가 환영하는 부분은 사측의 ‘신의칙 위반’ 주장이 기각된 점이다. 대법원은 2013년 통상임금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제외를 전제로 노사가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노측이 합의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요구할 경우 △이로써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를 신의칙 위반 구성요건으로 규정했다. 당시 노동계를 중심으로 기업 측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다는 비판이 제기된 부분이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노사 합의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추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과거의 연장·야간 ·휴일근로로 따른 이득을 이미 피고(기아차)가 향유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고의 재정 및 경영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 첫번째 근거다. 재판부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지속적으로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뒀고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의 사드(THAAD) 보복 및 미국의 통상압력 등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 주장도 “피고가 명확한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4223억 원을 충분히 지급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기아차가 지급한 경영성과급을 열거하며 “청구 원금 3126억 원이 한해 경영성과급보다 적다”면서 “노사간 합의로 분할상환의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아차는 2008년 3291억 원, 2009년 3794억 원, 2010년 5783억 원, 2011년 6583억 원, 2012년 7467억 원, 2013년 7871억 원, 2014년 7703억 원, 2015년 6578억 원, 2016년 5609억 원 등을 직원들에게 경영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이번 1심 재판부는 ‘신의칙 위반’ 주장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재판부는 “가정적인 결과가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상임금 재산정으로 인건비가 늘어나면 기업은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론에 대한 답이었다.

재판부는 또한 “근로자들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결과발생을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향후 노사합의를 통하여 충분히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즉각 성명을 내 “기아차 해외이전설 등 법원 판결을 왜곡시키려는 악의적 선동과 이 판결로 인해 부담해야 할 금액이 33조에 이른다는 등 근거도 출처도 없는 주장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면서 “통상임금의 법리를 바로세운 판결이고, 무원칙한 신의칙 적용 주장을 배척하고 근로기준법에 의해 마땅히 지급해야 할 사용자측의 지급의무를 확인한 판결로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법 취지 살린다면 ‘휴일+연장’ 근로에 가산 수당 중복 계산해야

휴일에 연장근로를 하는 ‘휴일 연장 근로’에 중복할증을 적용하는 쟁점은 과제로 남았다. 원고 측 법률대리인 김기덕 변호사(새날 법률사무소)는 재판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휴일 근로의 경우 주 40시간 넘는 경우에 대해 연장근로까지 적용했다. 중복할증 문제가 대법원 쟁점이 되고 있는데 곧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이 장시간 노동 관행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기대를 모았다. 통상임금 소송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56조는 법정시간을 초과한 근로에 대해 가산된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사용자가 노동자를 장시간 근로로 사용하는 걸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계에선 마땅히 포함돼야 할 임금이 통상임금으로 계산되지 않아 더 저렴한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장시간 노동의 원인이라고 지적해왔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하철노동조합, 현대제철노동조합 등도 동일한 취지의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해 1심 변론기일을 진행 중이다. 이번 판결이 이들 선고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아자동차는 즉각 항소 입장을 밝혔다. 기아자동차는 선고 후 입장문을 내 “청구금액 대비 부담액이 일부 감액되긴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면서 “즉시 항소해 법리적 판단을 다시 구하겠다”고 밝혔다.

기아차는 “판결결과에 따라 실제 부담 잠정금액인 1조원을 즉시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며 “기아차 영업이익이 지난 상반기 7868억원, 2분기 4040억원인 현실을 감안할 때, 3분기 기아차의 영업이익 적자전환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김성락 전국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은 선고 후 기자들과 만나 “잘못된 임금 계산을 통해 만들어진 장시간·저임금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회사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면서 노사관계를 굉장히 잘못 풀어왔다”며 “오늘 판결이 노사 분쟁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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