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추악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KBS·MBC 공영방송이 이명박 정부 집권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해서 박근혜 정부에 와서 참담하게 일그러졌다는 증언이 줄을 잇고 있다. 조작과 왜곡, 민감한 뉴스보도 안하기와 축소 등 진실은 멀어졌고 기자들은 기레기로 전락했다.

진실을 외친 언론인들은 해고와 중징계로 입을 막았다. 과장과 왜곡은 언론계 일상이 되면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실종됐고 패배주의가 어느덧 뜻있는 언론인들에게도 스며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과정에 국정원·사이버사령부·경찰 등이 맹활약해 승부를 뒤집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여론 왜곡은 집요했고 그 방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여론조작 기법과 이를 가능케한 국정원 댓글부대의 실상과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최근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에 이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나?

▲ 2012년 12월19일 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될 때 여의도 당사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 2012년 12월19일 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될 때 여의도 당사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씨는 실상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후보였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해 ‘박근혜 통역기’를 가동해야 할 정도라는 사실을 측근들은 알았다. 대통령이 되고난 뒤에도 언론에 노출을 꺼려 언론 인터뷰를 거절했다. 질문도 받지않아 국민과의 소통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도 만나지 않던 대통령은 끝내 대형사고를 쳤다.

세월호라는 국민적 참사가 빚어졌던 상황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했다. 대통령이 구조 골든타임을 넘기고 7시간 뒤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무엇이던가. “구명조끼 찾기가 그렇게 힘드냐…”라고 말하며 딴나라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던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한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은 거꾸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외국어는 못하는 것이 없고…’ 등으로 검증 대신 과장을 택했다. 권력자를 향한 정당한 감시와 견제는 없고 영웅만들기와 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한가운데 KBS·MBC 공영방송이 있었다.

한때 세계 언론자유도 30위권까지 올랐던 한국의 언론은 2016년 70위로 곤두박질했다. 권력에 대한 정당한 감시와 견제 대신 홍보와 과장, 진실 외면의 결과를 국제 언론단체는 이렇게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런 참담한 현실을 절감하며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MBC·KBS 두 공영방송의 동시 총파업이 현실화됐다. MBC 조합원들은 93.2%라는 사상최고의 압도적 찬성률로 총파업을 결의해 그동안의 울분을 표현했다.

▲ 8월30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에서는 약 4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었다. 사진=차현아 기자.
▲ 8월30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에서는 약 4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었다. 사진=차현아 기자.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MBC본부)는 “방송 파행은 제작 종사자들에게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번 파업은 전례 없이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히며 “이번 총파업에 송출 등 필수 인력을 전혀 남기지 않고 예외 없이 전 조합원을 참여시킬 예정”이라고 전했다.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노조도 총파업을 예고해 9월 초부터 두 공영방송 총파업이 불가피해졌다. MBC와 KBS 기자·PD·아나운서 등 구성원들은 모두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경영진이 자행한 불공정 보도와 제작자율성 침해, 노조원 탄압을 비판하며 고대영 KBS 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2010~2012년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에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개입됐고 댓글공작 결과가 매일 청와대에 보고됐다는 군 심리전단 전직 간부가 폭로했지만 공영방송은 특종을 포기했다. 군 전직 간부를 실명 인터뷰한 KBS 기자의 리포트 제작 요청을 KBS 보도국장단이 묵살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국정원과 군 등을 통해 이뤄진 이명박 정부의 조직적 댓글공작의 실체를 드러내는 보도를 KBS 스스로 외면한 셈이다. 이처럼 진실을 외면하려 노력한 공영방송사의 직무유기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그러나 공영방송사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전혀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혔고 거꾸로 청와대를 향해 불만을 제기했다. 방송제작진의 신뢰를 잃어 구성원들이 물러나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설득이나 해명보다는 거꾸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방송장악’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것은 자유한국당을 향한 구조요청 사인으로 읽히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리더십을 잃어 구성원들의 배척과 불신을 받는 현실은 자유한국당이 도와줄 수도 없고 파면된 박근혜씨는 더더욱 힘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방송파업이 본격화될 때, 내용을 잘모르는 국민의 불만은 제작진을 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꼭 한마디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 공영방송의 몰락에는 시청자들의 무관심, 무비판적 자세도 한 몫 했다는 사실이다. 유능한 기자·PD·아나운서가 불법적 중징계로 대가를 치렀지만 국민적 관심은 미미했다. 지금처럼 시청자들의 자기표현이 쉽게 전달될 수 있는 인터넷 시스템에서 시청자들의 이해와 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 8월25일 저녁에 열린 ‘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에서 언론인들과 시민들이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8월25일 저녁에 열린 ‘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에서 언론인들과 시민들이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공영방송에 대한 감시는 일부 시민단체나 언론학자만의 몫은 아니다. 깨어있는 시청자들이 목소리를 합할 때 방송제작진은 물론 방송경영자들, 대통령에게까지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다. 시청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결방된다고 해서 무조건 제작진을 탓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시청자들이 낸 수신료를 가지고 공영방송사들이 어떤 불법 부당한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따끔한 질책’ ‘깨어있는 비판’이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만들 것이다.

국민이 촛불시위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공영방송 적폐 세력, 불공정방송에 대한 규탄의 뜻이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수사를 받는 이 비극적 현실에서 공영방송 경영진이 ‘공범자들’로 보일 수도 있다. 사과부터 하고 자진사퇴하는 것이 순리지만 이를 거스를 때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서 이 혼란을 수습할 수 밖에 없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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