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부대’를 향한 칼 끝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구속 앞에서 멈출까. 원 전 원장이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국정원 민간인 외곽단체’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원 전 원장의 ‘윗선’까지 밝혀낼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김대웅 부장판사)는 30일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을 위반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각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원 전 원장은 공판이 종결된 후 즉각 법정 구속됐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는 가운데 경호원이 기자의 질문을 막고 있다.ⓒ민중의소리
▲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는 가운데 경호원이 기자의 질문을 막고 있다.ⓒ민중의소리


재판부는 검찰 구형과 같거나 구형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했다. 죄질이 나빠 양형 감경요소가 없을 뿐더러 이들의 죄가 엄중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 7월24일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이 전 차장 및 민 전 단장에겐 각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은 특히 막대한 예산과 광범위한 권력을 가진 기관으로, 정치적으로 나아가면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에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피고인들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전례를 찾을 수 없어 비난 가능성이 더욱 크다”면서 “엄격한 상명하복 관계에서 복종할 수밖에 없는 직원들에게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행위를 하게 하며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북한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정원의 사이버 대응이 필요하다’는 피고 주장은 “피고인들이 행한 건 그런 정당한 대응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 명백히 금지하는 행위”라고 기각했다.

재판부는 책임을 부하 직원들에게 미룬 태도 또한 무책임하다고 꾸짖었다. 김대웅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은 공판 전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변했을 뿐 그 행위가 국민과 역사 앞에서 어떻게 평가 받을지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않았다”며 “사이버팀 직원의 일탈 행위로 치부하면서 직원 개인의 행위로 돌리는 건 책임있는 모습 아니”라고 지적했다.

국민 염원 강조한 재판부, “국정원 새로 거듭나야”

‘국민의 신뢰 회복’도 재판부가 중형을 선고한 주요한 이유였다. 재판부는 양형 사유를 밝히며 “국민들은 국정원이 국가 안전 보장 업무에만 헌신해주길 염원하고 있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이 새로 거듭나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로서 국론 분열 편가르기가 아닌 주춧돌이 되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서 오히려 부당한 관행을 타파했어야 함에도 재임 중 관련 조직을 확대 증편하고 강화했다”면서 “30년 이상 공직에 근무한 공직자로서 납득하기 어렵고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국정원 원훈을 무색하게 했다”고 꾸짖었다.

재판부는 이 전 차장과 민 전 단장을 향해서도 “부당한 지시를 무조건 이행하기 보다는 30년 이상 공직에 복무한 경험을 살려 이 사건 범행을 막았어야 했다”면서 “두 피고인 역시 자신들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해 범행에 가담한 죄가 가볍지 않지만 국정원의 상명하복 관계에서 종국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양형에 감안한다”고 밝혔다.

“국정원 댓글부대, 선거운동 맞다” 공직선거법 위반도 인정 돼

법리 판단에서도 ‘일반 국민들의 시각’을 강조한 대목이 있었다. 재판부는 국정원 댓글 활동을 선거운동으로 인정하면서 “일반인, 특히 선거권자의 관점에서 구체적 상황에 기초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및 정당을 향한 사이버팀의 활동이 “제 3자 선거권자에게 선거운동으로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오늘의 유머’ 등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국정원 직원 계정으로 의심되는 일부 계정을 신고한 사례도 근거로 제시됐다.

이밖에 재판부는 △글·댓글 내용이 특정 정당 소속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취지가 뚜렷하다는 점 △원세훈이 전 부서장 회의에서 수차례 선거관련 발언을 하며 “야당이 승리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는 발언까지 한 점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에서 여당에 우호적인 여론조사와 선거대책 수립 활동이 드러난 점 등을 제시했다. 이를 종합해 국정원 사이버팀 활동이 선거운동으로 인정된 것이다. 선거운동으로 인정돼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다만 객관성과 구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각 후보자의 출마선언일과 정당의 후보출마일을 기준삼았다. 가령 전 대통령 박근혜씨 지지 글의 경우 출마선언을 한 2012년 7월10일 이후의 사이버활동이 선거운동으로 인정됐고 새누리당 지지 글의 경우 박씨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8월20일 이후의 것만 선거운동으로 인정됐다.

검찰, ‘국정원 외곽단체 동원’ 혐의 수사 중… 원세훈 다시 등장하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찬반클릭’ 1214회 중 1200회, 글·댓글 게시 2124회 중 2027회, 트위터 활동 29만5636회 중 28만8926회를 국정원법을 위반한 정치관여 행위로 인정했다.

검찰이 특정한 117개 인터넷 계정은 모두 국정원 계정으로 인정됐다. 트위터 계정의 경우 검찰이 특정한 1157개 계정 중 391개만 국정원 계정으로 판단했다. 사건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한 결과다. 환송 전 2심은 ‘시큐리티 파일’ 등 검찰 측 증거를 채택해 716개 트위터 계정을 국정원 계정으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증거능력을 배척하며 2심 결정을 파기환송했다.

정치관여 행위로 인정된 글 내용은 △특정 정당·정치인을 직접 거명한 지지 혹은 반대글 △현직 대통령 지지·옹호 글 △특정 정당·정치인의 안보정책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글 △사망한 전직 대통령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글 등이다. 교육감에 관한 글은 교육감이 정치활동을 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대법 판례에 따라 정치관여 행위 대상에서 제외했다.

재판부는 피고 측 변론을 대부분 기각했다. ‘종북 세력 유인 및 색출 목적이었다’는 원 전 원장 측 주장에 “반응을 모니터링하거나 종북 세력에 대한 수사 의뢰 내역도 없는 점을 보면 그런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이버팀 활동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거나 지시내린 적이 없다’며 공모관계를 부정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지휘 계통에 따라 이종명, 민병주를 거쳐 수시로 보고 받고 때로는 심리전단 사항을 직접 지시했고 이행 상황을 보고 받았다”고 지적했다.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소법정 404호는 재판이 개정되기 30여 분 전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방청객이 몰렸다. 31개 좌석 양 옆으로 30여 명의 방청객이 서있거나 바닥에 앉아서 재판을 지켜봤다.

오후 2시 시작한 재판은 오후 3시30분 경 끝났다. 선고 후 재판부는 “원세훈 피고인에 실형이 선고돼 보석 결정이 취소됐다. 검찰 측은 재구금 절차를 진행해달라”고 고지했다.

공소유지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오늘 판결에서 피고인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본다”며 “그간 공소유지에 참여한 검사와 수사관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 상고심에도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엔 진재선·김성훈·이복현 검사가 출석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국정원개혁 TF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아 국정원의 ‘사이버 외곽팀’ 동원 혐의를 수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 23일 외곽팀장 김아무개씨 주거지 등 관련단체 사무실 30여 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 24일 수사 과정에서 추가 증거를 확보해 재판부에 변론 재개를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28일 불허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