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전문기자로 활동한 박수택 SBS 기자가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윤창현)를 통해 2009년 4대강 비판 보도 이후 SBS 대주주로부터 보도중단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SBS본부는 SBS 정상화를 위해 최근 출범한 ‘이명박-박근혜 정권기간 방송사유화 실태조사 특별위원회(사특위)’를 통해 수집한 방송사유화 사례를 최근 공개했다.

SBS본부가 29일 발행한 노보에 따르면 사건은 2009년 6월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기자는 2003년 부장 승진 이후 보직을 고사하고 환경전문기자로 현장에서 정년퇴임하고자 했다. 박 기자가 2009년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보도를 이어가던 중 6월초 SBS의 대주주 SBS미디어홀딩스 윤세영 회장(SBS 명예회장)실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윤 회장은 2008년까지 SBS 대주주였던 태영건설 회장이기도 하다.

박 기자가 목동 SBS 본사 회장실에서 윤 회장과 “보도 관련해서는 처음”으로 독대했다고 SBS본부는 전했다. 박 기자는 취재수첩에 당시 윤 회장의 발언 내용을 기록했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윤 회장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추진 논리를 그대로 박 기자에게 주장했다.

▲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 지난 1월27일 SBS보도화면 갈무리
▲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 지난 1월27일 SBS보도화면 갈무리

윤 회장은 4대강 보 건설로 인한 수질오염에 대해 “보를 막으면 물이 정체돼 물이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내가 볼 땐 밑의 모래를 다 준설해서, 모래는 상류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며 수질오염 가능성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한 “(4대강에) 배가 들어와 나쁠 게 뭐 있으며 보를 만들면 뭐가 나쁜가”라며 환경단체들의 4대강 반대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전국 시도지사들이 (4대강 사업을) 모두 환영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는 엄청난 환경파괴도 있을 수 있다고 걱정했는데 지금 4대강 사업은 그런 것이 아닌 것 아닌가”, “4대강 살리기는 찬성이다. 강이 버려져 있다. 낙동강에 투자해 개발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는가” 등 4대강 사업을 찬성 발언을 박 기자에게 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박 기자는 이런 발언의 의도가 보도통제였고, 이를 지키지 않아 자신이 마이크를 뺏겼다고 판단하고 있다. 윤 회장은 “박부장에게 믿고 내 생각을 얘기해야 되겠다 생각했다”며 “리포트를 봤는데 보를 쌓으면 수질이 망가진다, 좀 더 따져보고, 나한테 보고해주고”라고 4대강 취재를 보고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반 년 뒤 박 기자는 논설위원실로 발령났다. 

박 기자는 SBS본부와 인터뷰에서 “2009년 12월말 인사에서 동기들과 달리 부국장 승진도 누락됐다”며 “2010년 1월 인사팀 실무책임자에게 경위를 묻자 ‘상위 직급으로 갈수록 충성도가 중요하다. 처신문제다. 회사정책을 이해하고 사장·본부장 운영 방침에 잘 따라주고, 전문기자는 회사가 인사방침으로 부여한 것일 뿐, 자격증이 아니다. 회사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 2010년 1월 논설위원실로 발령난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는 발령 이후에도 4대강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2013년 8월12일자 박 기자 칼럼화면 갈무리.
▲ 2010년 1월 논설위원실로 발령난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는 발령 이후에도 4대강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2013년 8월12일자 박 기자 칼럼화면 갈무리.

SBS본부는 “대주주가 보도담당 임원이나 책임 간부도 아닌 특정 분야의 취재기자를 직접 호출해 압박한 것 자체로 보도준칙과 편성규약, 나아가 방송법 위반”이라며 “2009년은 SBS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채 1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SBS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방송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대주주의 약속을 믿었지만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주주는 정부비판보도를 통제하는 방송개입을 서슴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회장이 박 기자와 면담한 것을 단순히 정부눈치보기용으로만 볼 수는 없다. SBS본부는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건설업체들의 관급공사 수주 내역을 확보했는데 해당 자료에 따르면 윤 회장이 박 기자와 만난 4개월 뒤인 지난 2009년 10월, 낙동강 22공구 달성-고령 지구를 시작으로 모두 5곳에서 태영건설이 4대강 관련 공사를 수주했다. 공사금액은 1000억 원을 넘는 수준이었다. 또한 태영건설은 4대강 연계 공사인 농업용 둑 높이기 공사 수주과정에서 한화건설과 입찰 가격을 475억 원으로 담합한 게 적발돼 지난해 1월 태영건설 임원이 벌금 700만원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SBS본부는 “결국 박 기자 등에 대한 대주주의 압력과 보복 인사조치는 태영의 4대강 사업 수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SBS의 비판보도 기능을 마비시키려 취해진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며 “태영건설의 사적이익을 위해 방송의 공적 책임과 언론의 사명을 뒤로하고 국민의 자산인 전파가 대주주의 사유물로 전락한 대표적인 방송사유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비판했다.

SBS본부는 지난 5월부터 지난 9년간 벌어진 방송독립성과 소유·경영분리 원칙을 무너뜨린 방송사유화 사례들을 수집해왔다. SBS본부는 “사특위 출범의 첫 번째 이유는 반성”이라며 “저널리즘이 강력한 경쟁력을 이루는 SBS로 재건하기 위해 사특위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박 기자 사례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사례들을 소개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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