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산란계 농가를 취재하던 중 경기도 내 일부 농가들이 닭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를 사용했고, 이를 친환경 약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산란계 농가들이 정부에 효력 있는 친환경 닭 진드기 방제 약품 개발을 요구한다는 기사를 작성했다. 하지만 정부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정확히 1년 뒤, 국내산 계란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를 보는 산란계 농가들의 심정은 복잡했다. 산란계 농가들은 그동안 살충제 살포 문제를 인식하고 정부와 국회에 해결 방안을 꾸준히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들은 안전하지 못한 계란을 생산한 부도덕한 집단이 됐기 때문이다. 또 이를 무시했던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이 불거질까 봐 산란계 농가에 더 큰 압박을 가했고, 농가들은 죄인인 까닭에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언론에선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동물복지 농장이다. 밀집형 케이지 사육이 닭 진드기 문제를 일으켰지만, 닭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키우는 동물복지 사육은 닭 진드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부도 동물복지 사육으로 전환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현행 전체 사육 대비 8% 수준의 동물복지 인증을 3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산란계 농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학적 근거가 빈약할뿐더러 동물복지 사육으로 전환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란계 농가들은 동물복지 인증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지금의 밀집 사육이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가들이 섣불리 동물복지 사육으로 전환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동물복지 사육 시 지금보다 계란 가격이 3배가량 높아지는데 소비자들의 지불 용의가 불확실하고, 제과나 제빵의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내산 계란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계란 수입량이 증가하면 자급률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환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농가들의 반응이다.
농가들의 가장 큰 불만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여론에 휩쓸려 실효성 없고 단발적인 정책만 내놓는 정부의 행태다. 어느 산란계 농가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문제의 핵심인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닭 진드기를 제거할 방안 마련은 빼놓고 부차적인 요소에만 집중하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번 계란 살충제 검출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또다시 문제 해결의 시기를 놓쳐 국민의 먹거리 안정성은 물론 산란계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부디 이번 정부에서는 골든타임이 의미 없는 단어가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