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 실형이 선고됐다. 친자본성향의 언론사들은 삼성그룹 입장을 대변하면서 한국경제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2008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특검, 그리고 최근 삼성전자 주가를 봤을 때 ‘경영 공백에 따른 국민 경제위기’는 실체가 불분명하다.

‘삼성맨’에 빙의한 언론

먼저 26일 상당수 언론은 삼성그룹을 대변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중앙일보는 “선고 전까지 삼성 안팎에서는 무죄 선고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며 “글로벌 산업현장에서 격전을 벌이는 세계 최고 기업 총수에 대한 단죄는 증거에 의해 엄격하게 판단돼야 한다는 게 삼성맨들의 바람”이라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같은 날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어도 서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을 대고 욕심을 냈겠는가’라는 이 부회장의 호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날 판결을 지켜본 삼성 관계자들도 이 대목을 가장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서울경제는 “오후 한때 기온이 30도까지 치솟으면서 뜨겁게 달궈졌던 서울중앙지방법원 일대는 이 부회장에 대한 징역 5년 선고로 한순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며 “삼성 관계자들은 청천벽력의 소식에 다리가 풀려버린 듯한 모습이었다”고 보도했다.

▲ 서울경제 1면 기사
▲ 서울경제 1면 기사

“투자 올스톱되고 일자리 영향 줄 것” 위기 조장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이 부회장의 공백이 삼성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비즈는 “재계에서는 ‘오너 부재’ 삼성이 대규모 투자, 인수합병 등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실제 삼성전자는 2015년 3건, 지난해 6건의 주요 인수합병이 있었지만 올해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는 “올해 삼성전자의 투자규모가 30조원 이상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이 기존에 세워둔 계획이거나 반도체사업 구조상 고정으로 들어가는 자금이라는 게 삼성의 현실”이라며 “차세대 시장주도권을 잡기 위한 투자는 올스톱된 상황”이라고 26일 보도했다.

이 같은 상황이 국가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는 보도도 많았다. 머니투데이는 선고 전 “법원에 달린 한국경제 운명”이라는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국내 대기업의 경영시스템을 생각할 때 비약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자동차산업에 균열이 가는 시점에 반도체까지 무너지면 국가경제 전체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총수 부재 기간 동안 기업의 투자 추이. 사진="재벌총수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 연구
▲ 총수 부재 기간 동안 기업의 투자 추이. 사진="재벌총수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 연구

2005년~2014년 연구결과 살펴보니

그러나 이 같은 보도는 실제 사례와 연구 결과 모두에서 반박 가능하다. 먼저 넥스트소사이어티재단연구팀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확정판결을 받은 총수(두산그룹 박용성, 한화그룹 김승연, 현대차그룹 정몽구, 삼성그룹 이건희, 태광그룹 이호진)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살펴보자.

2015년 8월 발표한 해당 연구에 따르면 재벌 총수가 부재하는 상황에서도 전체 계열사의 투자는 물론이고 핵심계열사의 평균 투자금액도 증가했다. 연구진은 “기업의 투자계획은 장기적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재벌 총수가 부재인 상황에서도 원활히 지출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고용 역시 다소 증가하는 추이를 보였다. 다만 그 증가폭은 최종선고 이후 기간에 더욱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정치적 관점에서 정부의 재벌총수 사면으로 총수들의 답례성 고용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론된다”고 해석했다.

나아가 해당 연구에 따르면 총수 부재기간 동안 오히려 주가는 상승했다. 연구대상이 된 기업들의 시가총액 변화를 보면 기소시점 7.1조원이던 시가총액은 최종선고 당시 7.6조원으로 상승했고 선고 이후 8.2조원으로 증가했다. 총수 구속이 투명한 경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머니투데이 5면 기사
▲ 머니투데이 5면 기사

이재용 기소부터 구속까지, 삼성주가는 올랐다

삼성 상황 역시 해당 연구와 크게 엇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총수 공백으로 모든 결정이 '올스톱'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과한 해석”이라며 “삼성전자와 그룹 계열사들은 이미 안정적인 전문경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그간 권오현 부회장이 이 부회장 자리를 대신했다.

기업의 미래가치를 반영하는 주가 역시 상승세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 2월17일 189만원대였던 삼성전자 주가는 8월25일 기준 235만원을 기록했다. 전날 주가에 비하면 소폭 하락했지만 이 부회장 기소부터 현재까지 무려 23% 가량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이 부회장에 대한 유죄 판결이 삼성전자의 용등급(AA-·안정적)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80억달러 규모의 하만 인수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이제 언론의 호들갑도 멈출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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