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면서 탄핵된 대통령 박근혜씨의 도움을 기대하고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28일 박씨와 최순실씨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주거나 약속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는 25일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공소사실과 관련해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 위반, 국회 위증 등 5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결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사건은 삼성 임원들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최종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에 대한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의 뇌물을 지급한 사건”이라며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신문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 서울신문 1면 기사
▲ 서울신문 1면 기사

1. 중앙일보, 1면부터 “결정적 물증없이 정경유착 단정”

먼저 제목이다. 26일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는 모두 이 부회장 관련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대다수 신문이 건조하게 ‘징역 5년’을 제목으로 뽑은 가운데 중앙일보의 제목이 눈에 띈다. 오늘 아침 발행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이재용 부회장 관련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경향신문 <이재용 징역 5년 ‘정치권력·자본권력 부도덕한 밀착’>

국민일보 <이재용 부회장 징역 5년 선고>

동아일보 <이재용 징역 5년>

서울신문 <‘박근혜에 뇌물’ 이재용 징역 5년>

세계일보 <‘박근혜 뇌물’ 이재용 징역 5년>

조선일보 <이재용 징역 5년, 5개 혐의 모두 유죄>

중앙일보 <결정적 물증없이 ‘정경유착’ 단정>

한겨레 <법원 ‘정치·자본, 부도덕한 밀착’ 이재용 징역 5년>

한국일보 <이재용 뇌물죄, 징역 5년 실형>

경제지의 경우 ‘징역 5년’과 더불어 삼성그룹, 나아가 재계의 입장을 담은 제목을 뽑았다. 특히 머니투데이와 서울경제의 제목이 눈에 띈다. 다음은 주요 경제지의 이 부회장 관련 1면 기사 제목이다.

매일경제 <이재용 징역 5년, 삼성 총수 첫 실형>

머니투데이 <이재용 1심 징역 5년, ‘기업한 죄’ 충격 빠진 재계>

서울경제 <이재용 징역 5년 ‘뉴 삼성’ 꿈, 결국 길 잃다>

파이낸셜뉴스 <이재용 징역 5년, 삼성 시계제로>

한국경제 <이재용 징역 5년, 삼성 ‘망연자실’>

▲ 한겨레 8월26일자 사설
▲ 한겨레 8월26일자 사설

2. 경향, 한겨레 사설에서 “사필귀정”

신문들의 논조는 사설에서 극명하게 대비됐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를 ‘사법정의’로 칭하며 “삼성그룹 임원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필귀정”이라며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정경유착에 사법부가 최초로 철퇴를 가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언거부, 입 맞추기 등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법원의 노력을 방해했다며 ”반성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강압과 협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시종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모든 책임은 부하들에게 떠넘겼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추악한 정경유착 근절의 전환점 되길”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패한 정경유착 병폐에 법적 단죄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다소 미흡한 대목이 없지 않으나 적폐청산을 요구해온 1600만 촛불시민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 사필귀정의 판결”로 평가했다.

[동아일보] [사설] 이재용 1심 실형… ‘수동적 뇌물공여’ 법리 논란 소지_오피니언 27면_20170826.jpg
동아일보 8월26일자 사설

3. 박근혜는 이미 버린카드, 이재용 살리기 나선 보수언론

보수성향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의 수동성을 강조했다. 박근혜씨와 최순실씨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 사건이 전형적인 뇌물 사건이라면 (재판부의) 표현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업 쪽이 수동적으로 끌려간 사건에 자본권력이란 말은 어색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서로 마음속으로 청탁을 주고 받았는지는 이들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이 이심전심 청탁을 주고 받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일 수도 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재판부 논리대로라면 이 부회장은 승마 지원을 강요한 대통령 요구를 거절했어야 유죄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그랬다면 이 부회장은 ‘경제정책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으로부터 보복을 당했을 것이다. 이런 처지의 사람에게 5년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법적 정의인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1면 기사
▲ 중앙일보 1면 기사

4. 중앙일보, 여전히 ‘삼성 家’?

‘범 삼성가’로 분류되는 중앙일보는 ‘뉴스분석’ 기사를 내보내며 재판부를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에서 “재판부는 유죄증거로 '정경유착'을 내세웠지만 이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은 끝내 없었다”며 “또 기업이 권력의 강압적 요구를 거스르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형사재판에선 범죄 사실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묵시적 청탁이 이에 해당되는지 의문이다. 합리적인 의심을 넘는 정도로 피고인의 유죄가 입증되지 못할 때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5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가장 낮은 수준의 형량을 선고한 것은 법리와 정치·사회 분위기 사이에서 확실한 물증 없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재판부의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법리보다는 여론에 따라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로 읽힌다.

▲ 매일경제 5면 기사
▲ 매일경제 5면 기사

5. 삼성 입장으로 한 면 채운 매일경제

경제지의 경우 종합일간지에 비해 삼성그룹과 재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기사 비율이 높았다. 매일경제는 “허탈, 충격의 삼성…변호인단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재계 ‘양형 너무 심해…우리 경제에 큰 악재’”, “경영공백 장기화 vs 큰 영향 없을 것” 이라는 기사로 5면 한면을 채웠다.

머니투데이는 1면 기사에서부터 재계의 우려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머니투데이는 “재계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라며 “진심으로 안타깝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기업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국가브랜드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등 재계입장을 반영한 기사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이번 판결을 ‘정치 선고’로 칭하며 “이미 정치권과 여론재판으로 중형을 선고한 마당에 재판부에 독립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였는지 모른다”며 “무죄추정 원칙, 증거재판주의 등 사법의 기본원칙이 설 자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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