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기존에 발의된 법안과 다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는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관련 논의는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은 세계일보의 25일 보도에서 시작됐다. 세계일보는 지난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 참석한 인사의 말을 빌려 문재인 대통령이 “이 법안이 통과 된다면 어느 쪽으로도 비토(거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사장으로 선임되지 않겠느냐. 온건한 인사가 선임되겠지만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무소속 의원 162명은 지난해 △공영방송 사장 선임방식에 야당 이사 일부의 동의를 받게 해 사실상 여야 합의를 필요로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여야 이사 비율 조정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등이 골자인 방송 관련 4개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 법안 중 ‘특별다수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 연합뉴스

야당은 반발하고 나섰다. 강효상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권이 결국 방송자유라는 가면을 벗고, 방송장악이라는 민낯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과기방통위 간사) 역시 성명을 내고 “여당이 되니 입장이 바뀐 것인가?”라며 “해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는 해당 발언은 ‘토의’의 일부였을 뿐 대통령이 관련한 ‘지시’를 내린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당시 현장은 ‘토의’방식으로 진행이 됐고 대통령이 모범을 보이는 차원에서 직접 하나의 의견을 말했던 것”이라며 “업무 지시를 내렸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수현 대변인은 “현장에는 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들도 있었다”면서 “실제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했다면 야당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등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겠나”라고 밝혔다. 현장에 야당 방통위원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해명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렸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대통령의 발언이기 때문에 무게감을 갖는 건 사실이다. 법안 제정 당시부터 특별다수제의 한계가 지적되어 온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 공영방송 사옥.
▲ 공영방송 사옥.

국회 과기방통위 여당 간사인 신경민 의원은 25일 오후 민주당 워크숍에서 “궁극적으로 영국의 BBC나 독일의 ARD 같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 더 논의를 해보겠다”면서 “(대통령의 발언과 민주당의 정책이) 방송 장악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신경민 의원은 “법안 제정 당시 가장 급했던 사안은 김재철 사장 같은 최하급의 사람이 공영방송의 수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재철 방지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며 특별다수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 역시 25일 페이스북에 “여야 모두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자들을 양산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야당이 공영방송 사장 임명을 방해하는 걸 합법적으로 용인하는 법”이라며 “당연히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마 기자는 국민대리인단에 의한 사장선출방식을 검토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비정치권 이사 수십명이 사장을 선임하는 독일 ZDF 모델이나 국민대리인단 방식의 개정이 이뤄진다면 한국당의 주장과 달리 언론장악으로 규정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이 오랜 논의를 거쳐 합의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집권 후 새 법안 논의에 대한 여당 안팎의 갑론을박은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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