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명이 넘는 MBC 기자·PD·아나운서들이 김장겸 MBC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제작을 중단한 가운데, MBC 편성국 PD 26명도 28일 오전 5시부로 제작·업무를 중단한다. 

편성국 업무 중단은 MBC 방송 송출과 직결되는 사안이라 차질이 불가피하다. MBC 편성국 PD들은 25일 성명을 통해 제작 중단을 선언하며 편성 부문에서의 불공정성 실태를 폭로했다. “그동안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방송 공정성이 훼손됐고 정권에 구애하는 편성 기조가 강화돼 왔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MBC 뉴스 특보와 기념식 중계 편성 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참석 여부였다. 보도 가치나 현안의 중요성보다 VIP 심기 경호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비판이다. 

▲ 김장겸 MBC 사장(왼쪽)과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왼쪽)과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사진=이치열 기자
이를 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개발 시기를 미화해 박근혜 정권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평가받는 “광복 70주년 특집 ‘대한민국‘” 다큐 3부작은 비판적 논의 없이 편성됐다. 반면 탄핵 정국에서 타사 방송사들이 촛불집회를 특보 편성할 때 MBC는 정규 편성을 고수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경기 침체와 사회 활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정부와 보수 언론 주장에 맞춰 지상파 가운데 가장 먼저 정규 방송을 편성한 것이 MBC라는 것.

MBC 편성국 PD들은 “이런 과정 속에서 편성 행위가 채널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과 방송 공정성에 관한 논의는 생략됐다”며 “편성국원들은 정보에서 소외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업무지시를 따라야만 했다”고 술회했다.

이들은 ‘김장겸 체제’에서 비롯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편성국 PD들은 “김 사장과 부역자들의 패악이 극에 달했다”며 “일상적으로 방송심의규정을 짓밟고 무시하던 그들이 뻔뻔하게도 심의규정을 들먹이며 ‘PD수첩’ 제작을 가로막는 행태에 우리는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유능한 인력들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고 비제작부서에 유배 보내 회사를 자멸로 유도하는 그들의 자해 행위에 우리는 경악한다”며 “이에 편성국원들은 분연히 일어나 제작·업무 거부로 맞선 제작 PD, 보도·카메라기자, 아나운서 동료들의 저항에 적극 지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MBC 편성 PD들은 “총파업 투표가 진행 중인 엄중한 시기에 편성국이 사상 초유의 업무 거부에 돌입하는 것은 방송과 편성을 사유화한 김 사장과 일당들에게 던지는 최후의 경고”라고 덧붙였다. 

한편, MBC는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를 겨냥해 25일 “언론노조 MBC 본부는 전면 파업에 돌입하면서 공영방송이자 지상파인 MBC 방송 자체를 중단시킬 무서운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며 “방송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필수 요원마저 방송 현장에서 파업 현장으로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다. 역대 파업 사례에서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과 시청자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하고 소중한 방송 책무가 언론노조 MBC 본부 파업으로 중단된다면 그 누가 납득하겠느냐”며 “MBC 존립을 망가뜨리겠다는 획책은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아래는 MBC 편성 PD 26명의 성명 전문이다.

인내의 시간은 끝났다-편성국원들의 제작/업무거부를 선언하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김장겸 사장과 부역자들의 패악이 극에 달했다. 일상적으로 방송심의규정을 짓밟고 무시하던 그들이 뻔뻔하게도 심의규정을 들먹이며 ‘PD수첩’의 제작을 가로막는 행태에 우리는 분노한다.

유능한 인력들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고 비제작부서에 유배 보내 회사를 자멸로 유도하는 그들의 자해행위에 우리는 경악한다. 이에 편성국원들은 분연히 일어나 제작·업무거부로 맞선 제작 PD, 보도·카메라기자, 아나운서 동료들의 저항에 적극 지지를 보낸다.

그동안 편성 부문은 채널 이미지와 콘텐츠 경쟁력 전반을 관리해온 책임감과 방송사고, 정파 없이 시청자들에게 차질 없는 방송을 제공한다는 직업적 소명으로 지금껏 각자의 자리를 지켜왔다.

또한 저들은 임기 동안 실컷 분탕질을 치다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 뒷수습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기에 지금 우리가 실무현장을 떠나면 회사가 향후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황폐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제 떨치고 일어나 모든 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재건의 기반이 될 채널 브랜드는 참담하게 망가져버렸고, 보도, 시사 부문의 공정성을 상실한 공영방송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린다한들 제작자들의 노력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그간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정권에 구애하는 편성 기조가 강화돼 왔다. 지난 몇 년간 각종 뉴스 특보와 기념식 중계 편성 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VIP’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참석 여부였다. 보도 가치나 현안의 중요성, 시청자와의 약속인 정규 편성을 결방하는 부담도 무시됐다.

박정희 경제개발 시기를 미화하며 박근혜 정권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 “광복 70주년 특집 ‘대한민국’” 다큐 3부작은 비판적 논의 없이 편성된 반면, 탄핵 정국 시에는 주요 방송사가 국민의 자발적 촛불집회를 특보 편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사만 정규 편성을 고수하였고, 세월호 참사 이후 경기 침체와 사회 활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정부와 보수 언론의 주장에 맞춰 지상파 중 가장 먼저 정규 방송을 강행했다.

특히 연간 캠페인 ‘기본과 원칙, MBC가 함께 합니다’ 시리즈는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 오보에 대한 언론으로서의 반성 없이 시청자에게 ‘기본과 원칙’을 운운한 위선적 작태였다. 이처럼 하나하나의 건으로 보면 눈에 잘 띄지 않고 이면에 숨긴 목적을 눈치 채기 어렵지만 이미 드러난 보도, 시사 부문의 공정성 훼손과 연관지어보면 저들 경영진의 ‘빅픽쳐’가 편성 전반을 통해 실현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편성 행위가 채널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과 방송의 공정성에 관한 논의는 생략됐으며 편성국원들은 정보에서 소외되고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업무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그리고 경영진은 PD, 아나운서들을 장기간 주조 MD로 복무하도록 해 본연의 업무에서 노골적으로 배제시켰다. 방송의 끝단을 책임져온 MD 업무를 징계의 수단으로, 주조정실을 징벌을 위한 ‘수용소’로 변질시킨 것이다.

그렇다. 이제 임계점을 지나도 한참 지났다. 이에 8월 28일 오전 5시를 기해 편성국원 모두 제작/업무 거부할 것을 선언한다. 총파업 투표가 진행 중인 엄중한 시기에 편성국이 사상초유의 업무 거부에 돌입하는 것은, 방송과 편성을 사유화한 김장겸 사장과 일당들에게 던지는 최후의 경고이다.

다만 이번 선언에 참여한 TV편성부원 일부는 방송 파행만큼은 막기 위해 업무 거부의 행동을 총파업 돌입 시점까지만 유보한다. 하지만 현재의 ‘뉴스데스크’와 같은 추악한 방송물이 아무 지장 없이 전파를 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밖에 없는 역겨운 상황을 계속해서 참아낼 강력한 비위(脾胃)가 우리에게는 없다. 더 이상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고 떠나라.

편성의 제작/업무거부가 파업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우리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인내심의 마지막 실이 끊어지는 시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현 사태의 주범 김장겸 사장이 떠나는 그날까지 동료들과 함께 행동하며 싸울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승리해 우리는 보도, 시사·교양, 드라마, 예능, 라디오 전 분야에 걸쳐 떳떳하고 자랑스러웠던 ‘공영방송 MBC’의 위상을 되찾을 것이다.

또한 공정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위·아래가 자유롭게 토론하던 조직 문화를 복원하고 모든 구성원이 자주적인 주인 의식으로 하나가 됐던 ‘좋은 친구 MBC’로 되돌아 갈 것이다.

2017년 8월 25일 편성국 PD 일동

김성진 김신완 김재영 김종우 김지하 김창일 김태현 남유정 문형찬 박선영 박선희 송지웅 윤혜진 이규화 이대용 이우람 이지현 임동현 조능희 조은솔 최상열 최창규 최현종 현유석 홍석우 황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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