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해외로 망명을 하는 거예요. 국내에서는 만들 기회가 봉쇄돼 있기 때문에요. 어쩌면 ‘창작 망명’인 거죠.”

‘내일도 꼭, 엉클 조’(Here Comes Uncle Joe)를 만든 최우영 독립 PD가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을’(계약서상 독립PD)이 직접 영상을 만들어도 ‘갑’(계약서상 방송사)에게 저작권이 돌아가는 한국 방송사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내일도 꼭, 엉클 조’는 최우영 PD가 KBS 프로그램을 연출할 당시 만난 인물을 다시 촬영해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미국 PBS네트워크를 타고 미국 전역에 방송됐으며 중국 국제 골든 판다 어워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했다. KBS를 거쳐 기획한 콘텐츠이지만 제작비의 60%는 해외 방송사를 통해 받았다.

▲ 뉴스타파-'목격자들'
▲ 뉴스타파-'목격자들'에서 인터뷰하는 최우영 PD.
왜 한국 방송사에서 만들었던 작품을, 같은 PD가 다시 촬영하며 해외 방송사와 공동제작을 했을까? 한국 방송의 경우 독립PD가 작품을 만들었어도 저작권은 방송사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건강한 방송생태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독립PD들은 방송사와의 불공정 거래 사례 가운데, 영상 저작권이 방송사에 귀속되는 것을 대표적 문제로 꼽았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제작한 한경수 독립PD는 해외 방송사의 경우, 영상물의 저작권을 PD가 갖는 것이 당연한 문화라고 설명했다. “유럽과 일본 등의 방송사와 몇 차례 계약했으나, 저작권을 방송사가 갖는 경우는 없었다. 2003년 이전 영국 BBC가 방송사에 저작권을 귀속하는 계약을 맺기는 했으나 현재까지 그런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PD연합회와 한국독립PD협회가 공동주최한 '건강한 방송생태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PD연합회와 한국독립PD협회가 공동주최한 '건강한 방송생태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또한 한 PD는 “독립PD로 일한지 20년이 돼가지만 제작비는 20년 전과 비슷하다”며 제작비 책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제작을 시작해도 계약서를 쓰지 않아 제작도중 편성이 취소될 때 제작비나 인건비를 받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BBC의 경우 계약이 결정된 순간 계약서를 작성하며, 표준 제작비를 책정해 ‘제작비 후려치기’를 하지 않는다.

한경수 PD는 “유럽의 한 방송사의 경우 제작비의 50%를 사전에 주는 경우까지 있었다”며 “일본의 경우, 원본 영상보다 방송 시간이 짧거나 길 경우 재편집에 필요한 비용과 숙소까지 제공했다”고 말했다. 한 PD는 “유럽에 가서 한국 방송사와 계약하는 순간, PD가 저작권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전했다.

독립PD들에게 저작권이 돌아가면 콘텐츠의 재가공이나 판매도 더 활발해질 수 있다. 2009년 박봉남 독립PD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봉남 독립PD는 2008년 제작한 KBS 대기획 ‘인간의 땅’ 5부작 중 한 편인 ‘철 까마귀의 날들’을 재가공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다행히 그 당시 KBS와 계약에서 ‘영상을 재가공할 수 있는 권리는 을에게 있다’고 명시한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박봉남 PD의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가장 권위 있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방송사에서는 원본 영상의 저작권 자체가 방송사에 귀속된다. 한경수 PD는 “한국 방송사의 저작권 문제 때문에 결국 독립PD들은 해외로 나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라며 “현재도 한국 독립제작사에 새로운 인력이 전혀 없는 상황이고, 초과 노동 문제 및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독립제작사들이 망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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